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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23시 18분 등록

잠자리에 누웠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뭐했지?”

정신없이 바빴는데 내가 뭘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할 일을 하고 책도 좀 읽었어. 그러고보니 내가 이번 주 할 일을 했던가? 꼭지글 하나는 쓰기로 했는데 이번 주에는 뭘 쓰고 있었더라? , 그러고 보니 서류 내일까지 해 놓으라고 하셨는데. 서류에 필요한 게 뭐가 있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라도 편안했으면 좋겠는데 내 머릿속에는 체크할 일 가득입니다. 오늘 못한 일을 내일로 미루며 내일의 전쟁을 치르려 눈을 감습니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참여했던 프로그램의 수료식이 있었고, 새로이 취직을 했고,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지요. 한껏 욕심나는 책 읽기도 놓을 수 없었고, 유창한 네이티브가 되기 위한 영어듣기도 포기할 수 없었지요. 다음 번 여행에는 한 마디라도 해 보고 싶으니까요. 어젠 2시 쯤 잤으니 5시간 쯤 잔 것 같고, 그제도 그 정도 인 것 같은데. 이건 뭐 고3이 따로 없네요. 더 이상 다이어트 되지 않는 시간 앞에서 내 발만 동동 굴러집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서울에 갑니다. 이렇게 저녁 약속이라도 하니 간만에 여유로워지는 것 같네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잠시 졸아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은 아주 바쁜 사람이랍니다. 함께 하기로 한 많은 사람들이 일정이 맞지 않았지만 다시 맞추기에 쉽지 않을 것 같아 강행했던 일이지요. 소규모 자리가 되어 편안한 대화가 오고갑니다. 그에게 물어봅니다.

바쁘시다던데, 그래서 애인 만날 시간이나 있으세요?”

그거까지 해서 바쁜 거예요.”

어버버버버. 순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와 내가 다른 시계 위에 올려진 느낌이었거든요.

나는 시간을 쫓아 달리는데 그는 시간을 거느리고 걷는 듯 했달까요? 내가 바보가 된 듯 했어요.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시간은 소중한 가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하루에는 단 24시간 만이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아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쓸모없는 일을 줄이고 유용한 일로 채워야 합니다. 빈 시간이란 나태한 시간입니다. 책의 활자라도 눈에 넣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은 걸으며 들어야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몸을 놀리지 못하는 시간은 낭비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배웠습니다. 죽으면 편안히 쉴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 살아 있는 몸은 언제나 움직여야 한다고, 그러기에 바쁘다는 것에 대한 나의 기준은 어길 수 없는 기한이 있는 일들이 가득 차 있는 일상이었습니다. 누군가와의 약속. 그러기 위한 이동. 언제까지 해야 하는 일. 어느 새 아침마다 내리던 핸드드립 커피가 발을 동동 굴러가며 물을 들이붓는 사태가 일어나 버렸군요. 커피향을 느끼기 보다 아침에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버렸나 봅니다.

 

구본형 선생님은 말합니다.

시간 관리는 만일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면, 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번 사람은 더 시간이 없다. 하루를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분해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그 사람은 하나의 약속에서 다른 약속으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기는 시간에 쫓긴다. 시간의 부족은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성공적인 시간 관리의 결과다.

 

할 일이 많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간을 분배하는 일입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이 일을 하고, 저기부터 쪼오기 까지는 저 일을 하고. 일에서 일로 옮겨가는 마음의 동선은 없습니다. 시간과 시간은 정확한 금이 되어 갈라집니다. 어느 새 나는 시간을 조종하는 마술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시계위를 달리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아이가 늦게 자면 머릿속이 복잡해 집니다. 넌 여덟시 전에 잠들어야 해. 나는 그때부터 할 일이 있다구.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하루는 어느 일 하나 나에게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그저 하긴 했다는 결과만을 남겨둡니다.

 

도시바의 회장이었던 고 도코 도시오. 그의 검소한 생활과 경영 철학외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30분 정도 멍하게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합니다. 일에 쫓기는 것을 막고, 다른 아이디어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지요. 회장님은 시간이 많아서 그리해도 된다구요? 아니오. 그는 직급대로 높은 이가 먼저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믿는 사람이어서 언제나 630분이면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임원은 사원의 열배는 일해야 한다는 것의 그의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열배는 아니더라도 다섯배는, 백번 양보해도 두배 정도는 바쁜 사람이어야 하지요. 그의 멍한 30분이 부러워집니다.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배웠습니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시간이라 했지요. 바쁘게 시간을 쪼갰습니다. 그 결과 나는 증발했습니다. 내가 해낸 일 어디에도 나의 흔적이 없습니다. 기한에 맞춰 일을 하고, 시간에 맞춰 책을 읽었지요. 간혹 약속이 펑크나는 날이면 옳다구나 하며 뭐든지 끼워 넣었습니다. 나만이 남는 시간은 잠든 시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으로 일상은 바쁘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만에 고요함 속에서 운전을 합니다.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긴장감에 음악도 틀지 못했지요. 2년이 지난 후 익숙해진 지금은 들리는 것이 없으면 지루해서 운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운전을 합니다. 앞차가 서면 나도 서고, 가면 나도 갑니다. 차의 엔진 소리도 들립니다. 신호 대기 시간 창문을 열면 나무들의 이제 막 올라오는 새 잎의 냄새도 납니다. 40분간 익숙한 길을 달려갑니다. 편안합니다.

 

시간은 소중한 자원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는 더욱 더 소중한 자원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 속에도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여러 약속과 일 속에 사라져가는 나를 단단히 붙잡기 위해서라도. 내가 나를 보지 못할 때 바쁜 하루는 공허해집니다.

몇천원만 주면 금방 나오는 커피잔을 들고 뛰기 보다는 그라인더에 커피 가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핸드드립에 쪼로록 떨어지는 커피를 보며 버섯구름처럼 퍼치는 향기를 맡아보세요. 아무런 목적 없이 걸어보세요. 제 멋대로 널브러져 초점없는 시선을 보내보세요. 우리는 이런 여유를 너무 잊고 살았나 봅니다.

성취와 노력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내가 있어야 더 좋은 것이지요. 내가 남지 않은 행위는 공허할 뿐입니다.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느껴보세요.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IP *.246.7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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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4:10:54 *.143.156.74

7기 우등생 루미양!

첫 출근을 앞두고 있는 내가 명심해야 할 좋은 글인듯 하네.

'성취와 노력은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 내가 있어야 한다.'

우등생 루미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며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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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0:25:07 *.246.77.235

언니의 출근이 기대된다.

어쩌면 언니의 실험의 장이 되겠지.

일을 통해서 언니의 글이 더 힘차지고, 확신이 설 수 있을거라 기대된다.

하나씩 실험해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언니 책의 후반부가

더욱더 흥미진진해지겠지.

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꺼야.

회사에 가니까 골드 미스가 정말 많더라.

그렇지 않으면 그리 올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정말 훌륭했던 언니 이제 한결 여유로운 직장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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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6:27:33 *.114.49.161

책 읽기가 즐거우시군요. -_- 저도 얼른 책읽기가 즐거워질 만큼 길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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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0:28:48 *.246.77.235

연구원 하기 전 저는 일년에 다섯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권이 뭐예요.... 베스트셀러가 뭔지도 모르는 여자였는 걸요.

요즘은 책에서 멋진 통찰을 만나는 순간에

나도 생각했던 것들을 너무도 근사하게 내려써간 문장에 감동받습니다.

"정말 멋지다... " 라는 생각이 들고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아마 저는 말하기 위해서 읽는지도 모르겠어요.

연구원의 1년이 윤정님에게 많은 의미가 되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윤정님의 댓글에 힘을 얻는 하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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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7:03:32 *.70.30.118

핸드드립에 '쪼로록' 떨어지는 커피를 보며 '버섯향기처럼' 퍼지는 향기를 맡아보세요.

 

도대체 이런 표현은 어찌나오는거냐??? ㅋㅋㅋ.. 역시 말 잘하는 여자는 다르다며.

 

나는 지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라고 생각해 본다. 그래도 다행인건 지지난주 목요일부터 내게 주어진 재택근무의 시간이 나를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어. 참 기분 좋은 일이지. 오늘은 사부님이 추천해주신 광화문 북카페에 앉아서 일을 하기 전 워밍업중..

 

나도 시간을 거느린 사람이 되리다~~~ 다짐해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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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0:34:34 *.246.77.235

광화문 북까페... 나도 가보고 싶다며.....

주말에 함 출근해야겠구려.........

그 분이 그래 보였어. 나를 만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비우는 거야.

때론 일을 덜어내는 듯 보였지. 그게 나를 멍하게 만들었어.

시간을 빼는 이유가 그저 혼자 차 한잔 하기 위함이라면 누군가는 쓸모없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혼자 차 한잔 할 여유가 없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그건 시간이 나서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빼낼 수도 있는 거지.

근데 그런 생각을 못해 보고 있었던 거야. 얻어맞은 느낌이었어.

넌 때론 그래 보인다. 지중해바다에 몸을 띄운 네가 그런 느낌이었지.

커피숍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너도, 호텔 휴게실에서 엽서를 쓰고 있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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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7:33:11 *.151.207.149
새벽에 이글을 읽고 커피 내렸다네. 루미..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 때도 성격이 나온다지요. 뜨거운 커피는 하은이한테는 항상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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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0:38:11 *.246.77.235

우산님을 커피 내리게 만들었다니.. .이런 기쁜 일이... 꺄~~~~~~~

커피가는 소리가 편안하게 들릴 때가 있지요. 이럴 땐 확.. 다 갈아 놔 버릴까 하는 생각도..ㅋㅋㅋ

1년 수료하고, 강제성(?)이 사라진 지금 이제까지 해 왔던 버릇을 놓지 않으려

날짜를 정해서 칼럼을 올립니다. 자율이지만 나름의 규칙을 부여한 것이지요.

우산님의 댓글이 얼마나 힘이 되시는지 모르실 거예요.

정작 1년 차에는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들이 느껴지며 기운이 납니다.

우산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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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0:51:38 *.151.207.149
확 다 갈아 놓는 것은 아니아니아니되오. 글 쓰는 것과 같이 갈아 주시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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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 10:37:48 *.78.83.25

꾸~~~욱 참았답니다~ ㅋㅋㅋㅋ

매일 갈아 마시는 향을 포기할 수 있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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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 09:52:56 *.166.205.132

루미가 고3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오라버니로서 네가 잠을 그리 계속 자도 괜찮을런지, 걱정된다.

나이들면 잠으로 피로를 풀게 되더라고.

내가 교대근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ㅋ

 

당진에 오면 드립커피 가득 담아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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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 10:42:12 *.78.83.25

당진 엠티 가야하는데... 그지?

오빠가 내려주는 향이 좋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요즘 생각한게... 판에 박힌 생활은 손사래 치고 싶지만

제멋대로인 하루 보다는 몇 가지의 규칙을 가진 하루를 만들고 싶다는 것

내가 스스로 만든 규칙 말이예요.

오늘은 무엇을 하는 날이라던지 일어나는 시간에 대한 거

그런 것들이 하루의 동력이 되어 주는 느낌이 들어서요. ㅋㅋㅋ 

재경언니 자리잡으면 제일 먼저 오라버니를 움직일 듯 한 예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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