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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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불쾌지수가 오늘의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종소리가 땡땡 울립니다. 방안은 난.장.판 이군요. 누굴 뭐라 할 것도 없지요. 이건 다 내가 해 놓은 일이니까요.
바닥에 널려 있는 옷들은 춤이라도 추는 양 생동감에 넘치고, 속살을 드러낸 책들은 메모지와 한데 뒹굴고 있지요. 뽀얀 파우더를 바른 양 먼지 앉은 컴퓨터 하며, 슛을 외쳤지만 백보드를 맞고 튕겨 나온 쓰레기들이 씨익 웃고 있습니다. 정리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나조차도 한숨이 나옵니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다가 가장 가까이 잡히는 물건을 집어 듭니다. ‘이 물건의 자리가 어디였더라?’ 갑자기 솟구치는 짜증에 그대로 내려놓지요. 대청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대청소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요? 규칙 없이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치우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릴 거예요. 옷장 정리부터 먼지까지 닦아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언제 다하죠?
나는 정리와 청소의 유전자를 남들보다 적게 가지고 태어났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는 1년 중 10달을 이런 상태로 살지는 않을테죠. 기분이 좋을 땐 보물찾기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기 있는 물건들의 위치를 꿰뚫고 있다고 자신하기도 하죠. 하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물건이 나오지 않을 때, 뭔가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런 방안은 “으악”이예요. 아니면 “아아아아아악”이던가요. 학창시절에 시험 때 어지러운 방안이 눈에 띄는 것처럼, 꼭 그럴 때 눈에 띄는 법이잖아요. 어수선한 방안은.
아는 언니 집에 놀러갔습니다. 정리 쟁이 언니 집은 언제 봐도 깔끔합니다. 집어 들었던 물건도 표시 안 나게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데 언니가 탁자에 놓여있는 물건의 각을 맞추며 말합니다. “정리를 좀 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탁자위에 놓인 물건도 탁탁 소리를 내며 가지런히 모으고, 필요한 물건도 가져다 줬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제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깔끔한 집 곳곳에는 항상 정리를 하는 언니가 숨어 있습니다. 언니의 정리 스위치는 언제나 “ON”입니다.
주변에 있는 정리 잘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비슷비슷합니다. 습관처럼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별뜻 없이 테이블을 훔칩니다. 그들이 일하고 일어난 자리는 처음보다 깨끗해져 있습니다. 언제나 정리를 합니다. 정리는 어느 날 행해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과 함께하는 습관인 거지요.
나는 오늘 하루 내 손을 거쳐 간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내가 들었던 가방, 가방에 들어 있던 물건, 입었던 외투, 오늘의 빨래 감만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걸 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도 않지요. 내 방에 있는 물건은 언젠가 한 번은 나의 손을 거쳐갈 것입니다. 느리지만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주는 거지요.
이 방안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대청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명절 때나 손님이 찾아올 때 어쩔 수 없이 대청소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자 유지가 남았습니다. 유지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특히 나같이 정리의 유전자가 태생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말이예요. 유지는 그렇게도 힘겨운 일인 반면 원래재로 돌아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조금만 방심하면 방안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향해 악랄하게 웃음을 날립니다.
하루에 하나를 치웁니다. 처음 깔끔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깔끔한 공간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매일을 치우다보면 내 방식대로 정리된 깔끔한 공간이 나에게 쾌적함을 줍니다.
이 방법은 몇 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최초로 차키가 생겼을 때 나는 화장대 위에 바구니를 놓아두었습니다. 앞으로 차키를 그곳에다 보관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가져다 놓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차키는 현관 근처를 배회했어요. 들어오면서 휙 던져놓는 거지요. 나는 바구니를 현관으로 옮겼습니다. 매일 신경 써서 차키를 들고 오는 것보다 현관 바구니에 골인 시키는 쪽이 편하고 결과도 좋았지요.
정리란 물건들에 자리를 부여해 주는 일입니다. 처음에 나에게 들어온 물건들은 아직 내 공간에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까요. 이상적인 수납 모델 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나의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줍니다. 옷은 남들이 뭐래도 내가 접기 편한 방법으로 접어 나누면 되는 거고, 책의 분류도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하면 되는 거죠. 박찬욱 감독은 책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한다고 하죠. 어느 누군가는 분야별로 나눌 테고, 또 누군가는 키대로 정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들어가지 않는 쓰레기는 방을 나서는 순간 다시 넣어주면 될 테고, 뽀얀 먼지가 앉는 컴퓨터를 위해 물티슈를 하나 비치해 주었습니다. 매일매일 닦아주지는 않겠지만 먼지가 내려앉음이 눈에 띄는 날 바로 닦아줄 수 있겠지요.
나에게 편한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하루의 대청소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청소를 하면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공간이 내 몸에 맞는지는 살아보며 실험해 봐야 하는 거죠. 정리의 달인의 말을 아무리 들어보아도 결국은 내 몸에 맞게 정리하는 것이 편한 것이 우리들입니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구별해내기 쉬워집니다.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가 한 달쯤 지나면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물건들에게 물어봐야겠지요. “넌 뭐하는 물건이냐?” 그 동안 나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물건이라면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버림’이나 ‘나눔’을 해줘도 되겠지요.
나는 계절로 구분한 옷장에 항상 앞쪽으로 옷을 정리합니다. 한 계절이 지나면 뒤로 밀려 있는 옷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 옷들을 보고 나에게 묻지요. “입을 거냐?”
큰 맘 먹고 시작한 대청소를 끝내더라도 유지하기 위해 매일의 물건을 치워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깔끔함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매일 손댄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거니까요. 마음에 드는 상태에서 시작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오늘부터라도 시작하는 거죠. 깔끔하던 지저분하던 매일 하는 일은 차이가 없잖아요. 그날 내가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는 것 말이예요. 그게 깔끔한 사람들이 공간을 유지하는 노하우일테지요.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물건을 찾기 위해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자신에게 쾌적함을 선사할 수 있으며, 재고 파악이 잘 되어 있으니 같은 물건을 또 사는 일이 없겠고, 너무 오래 되어 썩어버린 물건을 버릴 일도 없겠지요. 나의 물건들을 내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예측가능성에 의한 편안함도 빼먹을 수 없는 정리의 이점이죠. 정리의 유전자가 없다고 해서 이런 이점들까지 버려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그러니 어떻게든 정리의 뿌듯함을 맛봐야겠지요.
아주 짧은 시간의 투자로, 조금의 귀찮음으로 정리쟁이들과 똑같은 습관 하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매일의 습관이 나의 몸에 베어 의식하지 않아도 행해질 때 우리는 또 한 명의 정리쟁이가 되겠지요. 간단해요. 방안에서 물건을 찾는 시간을 투자해서 몇 개의 물건에게 자리를 부여해 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늘 어떤 물건을 잡으셨나요? 당신이 부여한 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훔.. 나는 청소를 했으니 기분이 좋아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법'이랑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오늘 방을 후다닥 치워놓고 나왔지. 빨래감들은 빨래통에, 이불을 접어서 정리하고,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옷들을 옷걸이에 걸어 색색별로 정리하고.
그랬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지. 나올 때도 그렇지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을 때,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ㅋㅋㅋ.
어쨌든.. 논란이 있으니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밝혀주길 바래. 대청소와 나를 사랑하는 법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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