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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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짓기 역사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학교 티브이에 종종 나오곤 했다. 방송조회 시간에 시상을 했었는데 글짓기 상이나 수학경시대회 상, 임명장, 모범상 등을 받기 위해 출연하곤 했다. 6학년 때는 초등학교에서 최고 학년이기 때문에 상을 타면 방송실로 많이 불려갔다. 나의 기억을 신뢰할 수 있다면, 나는 글짓기 상을 많이 받았다. 그 시절에는 ‘나의 주장 발표 대회’라는 것도 있었는데, 나는 학교에서 1등 상을 타고 구 대회에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구 대회에서는 입상이라는 성적을 거뒀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의 글짓기 역사를 돌아보고 싶어서이다.
딸이 둘 있는 집안에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적 어머니와 언니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았다. 학교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내야 하면 언니와 어머니가 손을 걷어 붙이고 나의 모자이크 작품에 열을 올려줬다. 물론 나도 거들어서 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와 언니의 도움으로 전시회에 내 작품을 낼 수 있었다. 작품을 내고 나면 자랑스러웠고, 그 작품을 오래 간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 자주 있는 글짓기 대회에서는 나는 언니의 작품을 많이 베껴갔다. 그럼 거의 백발백중 글짓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글짓기 역사는 그렇게 시작했다. 언니의 글짓기에는 어머니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 어머니의 글솜씨는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어머니는 우리들의 글짓기 숙제를 도와주시면서 초등학생의 실력이면서, 주제에 맞게 , 조리 있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전략을 짜시고 초고를 쓰게 하신 후 퇴고를 해주신 것 같다. 초고는 언니가 쓰고 퇴고는 어머니가 하셨으며 난 주제에 맞는 글을 골라 베껴가곤 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되니 글짓기 대회는 줄어 들었고, 베낄 언니의 글도 없어졌다. 상을 타게 하고 싶은 어머니의 열성도 줄어들었던 것 같다. 글짓기 상보다 더 중요한 학교 성적이 우리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언니와 나는 학업에 열중했고, 우등상을 타기 위해 매진했다. 그렇게 글짓기는 나와 멀어졌고, 수학과 과학 공부를 좋아했던 나는 국어를 어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생이 됐다. ‘국어와 작문’이라는 필수 교양 과목을 들었다. A4용지 8장 분량의 소논문을 썼다. 그 글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주제가 뭐였는지, 내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기억이 안난다. 기억나는 것은 내가 그 숙제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 했고, 언니는 내게 했던 말이다.
“너는 대학생이 됐는데, 글을 이렇게 쓰면 어떻게? 기,승,전,결도 없고, 주제도 잘 드러나지 않고, 문장 구조도 엉망이잖아.”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언니는 4학년이었으며 나는 이과적 성향이 짙고, 언니는 문과성향이 짙으며, 나는 생각이 별로 없고, 언니는 생각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그 글을 볼 수 없지만 아마 그때 내가 쓴 소노문은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국어와 작문’ 뿐만 아니라 전공 과목(교육학)을 공부하면서도 시험 때마다 나의 의견을 적는 것은 내게 힘든 일 이었다. 수학교육학을 복수전공하면서부터는 수학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 주된 공부였기 때문에 글짓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증명을 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보다 쉽게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학 선생이 되니 내가 지어야 할 글은 새로운 학교 갔을 때, 학교 문집에 실릴 짧은 인사말 정도였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 대학 졸업후 내게 있어 가장 힘들었던 글짓기는 입사원서를 포한되어 있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었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며칠 동안 끙끙댔고, 글쓰기의 어려움에 좌절하며 써내려갔다.
그런데 작년 내게 아주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 생겼다. SNS를 통해 짤막하게 글을 올렸다. 그 글의 주제는 주로 삶에 변화였다. 변화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는 나를 공개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사건은, 그것을 보신 한 선생님께서 내게 책을 써보라고 권유하신 것이다. 나는 나의 글짓기 역사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덥썩 그 권유를 받아들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여, 나는 책 사이즈로 160페이지 정도의 글을 썼다. 며칠 전 다시 읽어보니, 어떻게 그런 글을 썼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열정 하나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간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책 한 권 제대로 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올해는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활동과 교회 편집부에서 주일마다 1시간 정도 문장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결심과 운명은 손발이 맞았다. 연구원도 됐고, 주일마다 1시간 공부하는 편집부 부원도 되었다. 연구원 활동을 통해서는 지평이 넓어지고, 훌륭한 작가들을 만나며 공부를 할 수 있게됐다. 무엇보다 구본형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글을 통해 세상에 나의 생각과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를 얻었다. 주일에 공부하는 편집부에는 윤흥길 선생님이 계시다. 윤흥길 선생님은 대표작으로 <<장마>>를 쓰신 소설가이시다. 작년까지만 해도 편집부원들의 글로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편집부원들이 쓴 글을 가지고 문장공부도 시켜주신다.
어제는 지난주에 이어 나의 글로 공부를 했다. 벌써 4번째이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장점에 대해 칭찬도 해주시고, 잘한 점을 많이 봐주셨는데 어제는 이것저것 많이 고쳐주셨다. 그리고 내게 도움 되는 설명도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이 보신 나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고쳐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제목과 내용이 잘 맞지 않다. 제목은 너무 크고, 내용은 아주 작다고 하셨다.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깨달음들이 적다고 하셨다. 나도 늘 생각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이었는데 찝어주시니 내 마음에 더 각인됐다. 둘째, 나의 글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다. 몇 편 보지 않으셨지만 그동안 본 글들의 서론이 대부분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거나, 단도직입적으로 쓴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셋째, 예로 등장하는 이야기나 비유들이 너무 허무맹랑하거나 독자들이 읽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들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하셨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 연습할 것은 문장을 쓸 때 멋부리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연습부터 하라고 하셨다. 기본 문장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수려한 문장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멋부리려고 하면 오히려 질이 떨어지는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나는 따끔한 충고와 가르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했다. 근데 선생님께서 A4용지로 2장이 넘는 나의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서 다 다듬어 주시고, 기타 글에 관한 기본적인 가르침도 주셨다. 매주 1시간 정도 공부했었는데 어제는 1시간 30분이 넘도록 계속 공부 시간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시기 전에 다음주 부터는 글에 대한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크게 숨을 쉬었다. 선생님의 조언과 가르침이 아주 많이 감사했지만, 창피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에 약간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보고, 편집부원 중 작가(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나를 아끼시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장점만 칭찬하시고 마실텐데 기본기부터 다 가르쳐주시고,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해주시며, 조언해 주시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내심 좋으면서도, 창피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말이다. 그 밖에 함께 공부했었던 편집부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줬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나를 부러워했다.
집에와서 <<데카메론>>을 정리하면서 컬럼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보카치오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어제 배운 가르침을 적용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편집부에서 있었던 일이 내 인생에 글짓기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글을 쓸 때 어떻게 쓸지에 대해 정리하기로 하고 글을 썼다.
아침에 어머니와 대화를 했다.
“엄마, 내가 어쩌다 글을 쓰게 됐을까? 어제는 윤흥길 선생님께서 내 글을 봐주시면서 가르쳐주셨는데, 정말 깨알같이 다 설명해주셨어. 너무 많은 것을 배워서 머리가 포화상태야. 더군다나 대학생 때 읽어야 할 책들을 이제야 읽으면서 구본형 사부님한테도 배우고, 내게 상관없던 분야였는데, 올해 쓰나미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고, 배우게 되네. 삶이 완전 달라진 것 같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네. 정말 변화이자 전환이다. 네 삶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좋은 일이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배우고, 제자로서 도리도 다 하고 그러렴.”
학교 출근길 걸으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미래를 예측하려고 시간과 노력, 돈을 쓰지 말고 지금의 선택 앞에 신중하자. 지금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미래는 바뀐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그려나가자. 그러면 운명의 여신이 우리의 선택 앞에 더 좋은 길을 낼 수 있이니 말이다.’
글짓기는 내게 있어서 방송조회 때 상을 타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나의 글짓기 역사가 어떻게 쓰일지 나는 예측하지 않는다. 지금 내게 주어진 책과 과제에 몰입하는 것을 선택하고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