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이야기로 마음을 열었던 밤
몇 년 전에 전위 예술가이자 명상가인 홍신자선생님이 여는 워크숍에 참석하였다. 장소는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한옥에서 열렸다. 그곳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신자선생님을 열렬히 좋아하는 팬이 많았다. 그래도 전부다 서로가 초면이었다. 남자가 셋이고 여자가 다섯 명인 소규모 워크숍이라 마음은 편하다. 나는 홍신자선생님의 초대로 온 것이라 프로그램 내용도 모르고 참석했다.
우리들은 우선 한옥을 한 바퀴 산책했다. 날아갈듯이 잘 지어진 한옥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크지는 않지만 연못도 있고, 한켠에 대나무도 심어놓았고, 작은 정자도 있었다. 대청마루가 아주 널찍하고 좋았는데, 문을 다 열어 제치면 공연장이 되는 그런 구조였다. 한옥에서 가끔씩 판소리, 대금연주, 시낭송 등이 열린다고 했다. 한옥의 주인은 첫 눈에 보아도 인품의 향기가 느껴지는 오십대 후반의 중년 남자이다. 가을 햇살이 얼마간의 꼬리를 남겨두고 있는 저녁 무렵 우리는 금분이 칠해진 방으로 들어갔다.
1박2일로 진행되는 그 프로그램의 목표는 ‘끊임없이 억압받고 통제받는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자’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끝없이 억압받고 통제되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스스로가 잔인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묵살해 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방기(放棄)하고 해방시켜보라는 것이다.
여덟 명이 둘러앉아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하였다. 홍신자선생님께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제안을 하였다. 일종의 마음열기 순서이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먼저 이 집의 주인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 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큰 집을 짓고 사는 지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원래 부자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회사원이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밥을 굶더라도 다른 이에게 밥을 주는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마누라는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금융 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식을 뭐 사면 좋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빌려주기도 했어요. 지금 이 대지는 지인이 나에게 준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살다보니 변변찮은 사랑도 못해 봤어요.”
우리는 농담 삼아 ‘다시 해!’를 외쳤다. 이제는 시계방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른 중반의 한 여자는 무용가라고 소개했다. 외국에서 온 안무가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같이 춤을 만들고 구상하다 보니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서울 구경도 시켜주는 등 내가 좀더 적극적이었어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 안무가를 ‘내 남자’로 만들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동거하기로 결단을 내렸어요. 6개월 동안의 계약 동거가 이루어졌고,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 그 시간들을 꽁꽁 묶어두고 싶었을 정도로 전 그 남자에게 빠져 있었어요.”
아, 저런 깊은 이야기를 어떻게 공개하나 싶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런 진한 감성이 있기에 춤을 추고 예술을 하나 보다.
“ 그럭저럭 공연도 다 끝이 났어요. 안무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저는 혼자가 되었어요. 몇 달 동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지요. 안무가가 가르쳐 준 폰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여자가 ‘헬로우!’하면서 받더라구요. 아, 그땐 이후로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한 남자를 만들었고, 그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무용가의 이야기가 끝난 후 우리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충격적인 고백이라고 해야 하나?
그 다음은 40대 이혼녀가 이야기를 하였다. 인형같이 예쁘고 풀잎같이 가날픈 여자였다.
“저는 남편과 이혼을 했어요. 남편과 내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나 달라서 이혼을 결심했어요. 이혼을 하고 나서 그전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남자가 일본으로 2박3일 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그 사람이 유부남인 것도 알았지만,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왜냐하면 어쩌면 제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계속 만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별여행이라 생각하고 갔어요. 일본에서 2박 3일의 꿈결 같은 여행을 하고 저는 깨끗하게 헤어졌어요. 저는 그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아요. 인생에 그런 추억 하나쯤 없다면 얼마나 슬퍼요.”
그 여자는 얼굴만큼이나 이야기도 깔끔하게 끝내었다. 이젠 진한 사랑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아마 내 앞의 남자도 첫사랑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그다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할 이야기가 없었다. 이미 인도기행집을 통하여 발표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네팔의 치트완은 정글트래킹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호랑이가 살고 코뿔소가 사는 그런 곳이라 네 명이 트래킹하는데 가이드 네 명이 따라붙었다. 그중 한 사람은 호텔 사장인데 손님도 없고 해서 따라왔단다. 사장 람은 뒤따라오면서 맛있는 열매도 따주었다. 트래킹이 끝나고 나는 일행들과 함께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람이 오더니, 자기 호텔의 가든파티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가든파티라고 했어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때 네팔은 정전(政戰)으로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냥 호텔의 투숙객들이 둘러앉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게 놀았어요. 그날 사장 람이 크게 한턱 쓰기로 해서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지요. 람은 나를 위해 춤을 보여 주겠다면서 네팔 전통춤을 보여 주기도 했어요.”
람은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알고는 호텔에서 제일 좋은 방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때 장기 투숙객 중에 한국인 남자가 있었는데, 내가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면 바깥에서 보초 서겠다고 했어 우리를 웃겼다. 밤도 깊어가고, 나는 람의 친절과 호의를 물리치고 한국인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내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포카라 일정을 위하여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곧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에 앉아있으니, 마차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어제 본 비카슈가 사장 람을 태우고 마차를 몰고 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랐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버스가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출발을 하지 않는지..... 람은 향기가 같은 꽃을 꺾어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서 나에게 건내 주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의 얼굴은 ‘고작 그런 이야기하려고......’이런 눈빛이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이야기인데 어쩌랴. 이렇게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고 나서 우리는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프로그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