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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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태리 청년의 생일파티
오늘은 2주 전에 만난 이태리 친구 루이지의 생일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Conversation Exchange라는 웹사이트를 통해서다. 이 곳에서 만난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친구 3명과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중단되었고, 한국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도 만났지만, 한 번 만난 이후로 연락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 친구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별 기대 없이 약속을 잡았고, 마침 신촌에 살고 있다기에 '어떤 사람인지 보기나 할까?'란 생각으로 나갔다. 그리고 요즘 이탈리아어 공부에 약간 시들해져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것에도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때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2주 전 수요일. 저녁에 마침 홍대에서 약속이 있어서 1시에 루이지와 만나기로 했다. 10분 지각. 홍대입구역 9번 출구는 평일 오후라 붐비지 않았다.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그 친구는 돌 위에 걸터 앉아 핸드폰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우선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다가갔더니 마침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전부터 있는 수업을 마치고 바로 왔던 터라 배가 고프다는 친구를 데리고 맛있는 국수집에 갔다. 라면이 먹고 싶다는 그를 데리고 일부러 맛 집을 찾은 것이었는데, 주메뉴가 아닌 만두국을 선택했다. 그러나 고추 때문에 매워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그가 주로 많이 했다. 놀라웠던 것은 싱가폴에서 일을 하다가, 계약 기간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갑작스레 한국행을 결정하고 머무를 곳도, 공부할 곳도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온지 2주 됐고, 2주 후면 떠난다는 그였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얘는? 재미있는 사람일세?'라는 생각과 함께.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2시간을 예상했던 만남은 4시간을 훌쩍 넘겼다. 얘기 중간에 내가 이태리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 이탈리아 청년의 오지랖이 발동되어 이태리에 있는 그의 친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물어서 친절하게 알려 준다. 이태리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인 이야기도 많이 해 줘서, 무척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자, 한국과 니 이야기도 좀 해봐~'라고 하는데, 순간 나는 할말을 잃었다. 사실 영어가 짧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머리 속이 백지장이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다행히 약속 시간이 다가와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그와 아쉽지만 다행스러운(?) 작별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첫 만남을 가진 후 여러 번 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곧 그의 생일임을 알게 된다. 생일 전날인 어제 자기 생일 파티에 올 수 있냐는 문자를 보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에너지가 없어 고민을 했다. 다행히 많은 친구들이 올 것 같지 않고, 객지에서 맞는 생일이라 외로울 것 같아서 참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일에 그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좀 늦은 시간에 다른 친구 한 명과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거의 네이티브만큼 하기 때문에 솔직히 좀 주눅이 들었다. 짧은 영어 덕분에 그들과 만나는 순간부터 긴장이 시작됐다. 고기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셋이서 이런 저런 얘기를 그들이 하는 농담들에 웃긴 했지만 썩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케잌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를 해 주러 그들이 사는 집까지 갔을까. 집에 있었던 시간은 더욱 힘들었는데 말이다.
마을 버스가 끊겨 큰길에서 걸어오는 10여분의 시간과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벽에 기댄 채 계속 생각했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도대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들이랑 무슨 생각으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낸거냐?'고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바깥 세계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관심 없이 행동하듯 완전히 변해 버렸던 것처럼 나도 요즘 그런 상태다. 보험 영업을 할 때는 그렇게 사람 만나서 사는 얘기가 좋다고 하다가, 어느 순간에 확 변해 버렸다. 그리고 '나' 이외의 바깥 세계에 어떤 것에도 관심을 오래 혹은 깊이 기울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두 번 본 사람의 생일 축하를 해 주는 자리라니, 당연히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나는 대화의 어떤 주제도 이끌어 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내게 질문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대답할 뿐이었다. 짧은 영어라서 말을 많이 못한 것도 있지만, '영어냐 한글이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지금 나는 매일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듣는 것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당분간 새로운 사람을 만나되, 짧고 굵게 만나는 방향을 모색해 봐야겠다.
#70. 무의식 속 신념 바꾸기
'나는 행복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왜 행복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내게 던지고, 어릴 적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의 또 다른 관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교육방송에서 '가족관계 개선'을 위해 심층적인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신청을 했다. 몇 시간 뒤, 제작사에서 출연하게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하지만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동생들에게 먼저 의사를 물었더니, 동생들은 본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방송에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를 했다. 마지막 관문인 엄마가 남았다. 지난 토요일 엄마 친구 딸의 결혼식이 있었고, 그날 엄마와 함께 사진전을 보기로 했었다. 간만에 하는 엄마와의 데이트를 하는 그 날 엄마에게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남편이 없다는 것도,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도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방송까지 보여주며 엄마가 함께 하기를 몹시 바랬지만, 결국 방송 출연은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얻은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방송 출연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면서, 엄마는 내가 '니네 아빠랑 어쩜 이리 똑같니?'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는지를 알게 되었고, 나는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왜 그토록 본인의 신상을 숨기려고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먼저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린다. <비폭력 대화> 중
방송출연 신청을 하면서 나는 '나보다' 엄마가 변해야 우리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받은 내 상처가 아물기 위해 엄마의 변화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송출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래서 니가 방송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얻고 싶은 게 뭐야? 그것에 대해 우리 둘이 이야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방송에 출연할게. 그러니 그걸 정리해서 엄마에게 말로 할지, 글로 써서 줄지 정리해봐"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또 화가 났다. '엄마는 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군. 또 이런 식으로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려고 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단 엄마와 대화를 시도해야 하니, 도대체 방송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내가 변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감정표현이 서툴고,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무표정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더 많은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는 진지하게 내게 "니가 그토록 원하면, 이번에 방송출연을 통해 상담을 받지 않아서 후회하고 나중에라도 나를 비난할 것 같으면 출연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엄마는 내게 다른 조건을 하나 제시했다. 방송이 나가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 상황에 대비해 내가 경제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출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엄마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대로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엄마가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져 나는 혼자서 펑펑 울었다. 엄마가 친구 만나러 다녀오겠다는데 대답도 하지 않고, 노트북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는 문득 '내가 변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술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 벽에 붙어 있던 전지의 빈 공간을 찾아 내 마음 속 신념들을 적어 내려갔다. 가운데에는 '행복하지 않다'를 쓰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생각들을 적었다. 무한긍적적인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머리 속에는 사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까만 색 펜으로 무의식 속 생각들을 적어 두고, 빨간색 펜을 집어 적기 시작했다. '행복하지 않다'는 '행복하고 싶다'로. 가족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가족은 행복의 시작일 수 있다'로, '친구관계에서 항상 신뢰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란 생각은 '때로 다투고 오해할 수도 있다. 잘 해결하면 더 깊은 관계가 된다' 등으로 기존의 생각들을 지우고, 새롭게 하나씩 적었다.
그냥 이렇게 적어보는 것만으로 내 머리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생각들이 얼마나 바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단지 무의식 속에 있던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인정했더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알 수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으로 손을 놓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과 희망 따위는 버리고,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고 있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불을 바라보며 그 안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보살펴준 적 없었던 그 성향들을 확인하게 되면서 차츰 그 부분들이 명확해졌던 것처럼,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과 철저하게 숨겨져 있던 '나'를 인정하자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우울증과 함께 이유 없이 찾아오던 눈물, 술을 마실수록 기분이 나빠졌던 상황들의 이유를 알게된 것 같다. 나의 부분부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가슴 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들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