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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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여자의 발로 책읽기
40에 숲으로 가자
책 날개에 적힌 저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안미경, 함인희, 공선옥, 강완숙, 유정원, 김혜윤 공저라니 저자가 많기도 하다. 답동성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책이다. 수녀님이 파는 서점에서 사왔다. 공원과 성당을 좋아해서 종종 간다. 특히 저녁 노을 내릴 즈음 미사 시간 파이프오르간 연주자가 연습용 곡을 연주할 때 가면 좋다. 색촛불 하나 밝히고 와서 앉아 들으면 시름이 다 버려진다. 성당 앞에 있는 자모원에 갈 일이 자주 있었던 겨울, 나는 그 답동성당 유치원에 다녔던 이와 소개팅을 했었다. 이게 또 웃긴게 그가 직장 앞에서 택시를 탔고 그 택시 기사가 "좋은 사람 있는데 만나 볼거냐?" 물었고 그가 "네" 대답을 했단다. 그 '좋은 사람'이 바로 나다. 택시 운전하던 이는 엄마의 누구의 누구인데 잊어먹었다. 사진을 찍는 이였지.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렸는데 목소리에 비음이 많이 섞였던 거하고 진한 커피를 좋아하던 게 기억난다. 잘 살고 있기를, 소설 속에 사는 주인공처럼 안부를 부친다.
안미경씨는 가톨릭대와 서강대에서 10년간 결혼준비특강을 해왔고 한국에니어그램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해 왔다. 저서는 <성경이야기>, <다시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있다. 함인희씨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이고 <여자들에게 고함> <한국사회의 세대와 문화변동>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공선옥씨는 1991년에 창작과비평지에 <씨앗불>로 등단한 소설가이다. 강완숙씨는 서울대에서 아동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이다. 유정원씨는 가톨릭여성신학회원으로 생태여성학에 관심이 있고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 공부중이고, 김혜윤씨는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소속의 수녀님이고 가톨릭대학교와 로마교황청립 성서대학원, 우르바노 대학(박사)에서 수학했고 현재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다.
성당 아래의 가톨릭서점에서 파는 바오로딸 출판사의 책인만큼 저자 간에는 ‘가톨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후반에 이르는 6명의 저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했다. 책을 읽기로는 세 사람은 결혼을 했고, 한 사람(공선옥씨)은 모르겠고, 두 사람은 독신으로 추측한다. 독신인 두 사람은 외국유학을 했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은 그냥 교수, 한 사람은 수녀이면서 교수다. 공선옥씨의 글은 자기 삶이 아니라 소설 형태이고 김혜윤씨의 글에는 성경에서 본 중년의 의미가 담겨있고 나머지 글에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 삶에 찾아온 중년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들의 평균학력이 박사급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많이 배우고, 종교적인 성향이 있는 여자들의 중년기 이야기라고 자리를 매겨둔다.
1. 홀로 그리고 함께 걸어가는 삶 - 가족 안에서 나를 찾아가기 (안미경)
중년 여성이 부부 사이에서 사랑과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역할중심으로 유지되는 것, 자신에 대해 무가치감을 느끼는 것을 두 가지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가모와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교환하는 진실한 소통이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기억력이 감퇴되고 군살이 붙는 신체적인 쇠퇴와 함께 여성성이 위협받는 시기인 중년기, 자궁 적제수술을 받은 후에 여성성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 저자는 '아줌마'는 중성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 씩씩함 역시 내 것과 네 것이 구별되지 않은 가족을 위해 전투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종교전통 안에서 키워졌기 때문에 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결혼을 한 부부로서도 성적욕구는 부정적으로 여겨졌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훨씬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가장 큰 중점을 두었던 엄마의 역할이 필요 없어져서 빈둥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중년기의 위기를 어떻게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저자는 우선 자신의 어려움을 남, 특히 배우자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저항을 말한다. 그동안 해 왔던 아내, 어머니, 며느리의 역할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생활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 해오던 역할, 남에게 보여주던 얼굴(에고=거짓자아) 놓기를 두려워하는 것, 또 가면을 놓아버렸을 때 자신의 어떤 얼굴이 있는지를 모르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면벗기(거짓 에고 버리기) 작업은 자신이 부서지는 아픔을 동반한다. 그녀의 가면벗기는 주로 종교활동을 통해서 왔나보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묵상하다 자신의 인색한 마음을 들여다 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이 쌓았던 벽이 친밀감을 방해했던 것을 알고 한계와 약점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남과 자신에게 편안해 진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가족들을 보면서 자신의 역할이 없어진 것에 대해 상실감을 느낄 때 피정의 집으로 간다. 동굴에 들어간 것 같은 어둠에 대해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완벽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충만함을 느껴보려 한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녀는 외로운 두 사람, 부부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은 신의 영역으로 보고 고독한 침묵 속에서의 기도만이 방법이라고 한다. 종교가 없는 이들은 어쩌라는 걸까?
밑줄을 그으며 읽은 부분이다.
위기라는 한자말은 위험하다는 것과 기회를 합쳐놓은 것이고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고 주위 사람들한테도 진정한 만남을 가져보라는 신호가 중년기 위기다.(63)
지금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 역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도록 한 적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느낌을 주고 받기보담은 기를 쓰고 상대방을 위해 일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사랑은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고 만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보여주고 서로 만나는 것이다. (59)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부족한 면, 나약한 면, 부드러운 면, 쑥스럽고 창피한 면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61)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내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이지, 그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62)
지금도 나는 화를 낼 때 화가 난 그 사건보다 화를 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가 정말 화가 나서 따질듯이 말을 하게되면 눈물부터 나와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질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슬픔으로 표현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분노로 표현한다. 외롭고 속상하고 부끄럽고 두렵고 좌절해도 걸핏하면 화를 낸다. (62)
2. 참 나를 찾아가는 여행 - 중년여성의 자아정체감 (함인희)
그녀의 중년은 안경을 쓰고도 글자가 흐릿해지는 노안으로 찾아왔다. 마흔 살에 엄마가 돌아가신 허전함을 7살 연하의 청각장애인과 결혼해 잘 살고 있는 여동생 가족의 모습에서 받는 위로로 채우다 마흔 둘에 <여자들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쓴다. 책을 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글을 쓰는 것은 세상과 소통,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첫 책을 인용한 부분이 눈에 자주 띈다. 그녀에게는 첫 책이 자기를 구원했겠구나. 얼마간은, 어느 만큼은.
인생주기는 배움의 단계로 1차 성장이 일어나는 10대, 20대의 퍼스트 에이지, 일과 가정을 이루는 생산과 출산으로 생산성을 발휘하고 가정, 직장,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세컨드 에이지, 40대 이후의 30년, 인생의 2차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추구해가는 써드 에이지, 포스 에이지는 노화단계로 성공적인 나이듦을 실현해가는 10년간의 단계다. 인생후반기의 2차성장은 인생 전반기의 1차성장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창조적 에너지에 더해 매사 균형을 잡을 것을 요구한다. 일과 여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 성찰과 실행, 개인 자유와 관계... (84)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부분에 하루에 한 시간정도 시간을 내어 보라
그런데 역시 마음에 남는 것은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다.
꽃다운 20대로 돌아갈거냐고 묻는다면 무수히 널린 선택지 앞에서 장및빛 전망과 우울과 좌절의 끊임없는 갈림길로 인해 갈등하던 그 시절로는 절대 사절이다. 30대는 포기의 시절이었다. 운명적 만남의 가능성을 포기했고, 전업주부의 안락함을 포기했고, 편하고 쉬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혹을 포기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삶에 가지치기가 이루어지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방향감각도 생겨났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배짱도 자리잡았다.(88)
써드 에이지의 첫 10년을 보내며 많이 편안해 하는 자신을 본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 꽃은 꽃대로 황홀하고 신록은 신록대로 경이로운 나이라 맘 내키면 여행을 떠날 수 있고 기꺼이 동행하는 이가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30대 교수는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가르치려 애쓰지만 40대 교수는 아는 것만 가르치고 50대 교수는 알아들을 것만 가르친다’고 한다. 그는 20대 학생들에게 ‘교실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의 삶을 소통하는 현장’이라고 말하는 여유도 생긴다. 역마살이 많다며 ‘스스로 상황을 선택하기 보담 상황이 당신을 선택하도록 하라’는 충고대로 여행을 다니고 극장을 찾는다.
가장 소중한 것은 영혼의 동반자라고 한다. 그녀의 소울 메이트는 나이가 열다섯은 많은 선생님인가 보다. 누구든 어떤가? 그런 이가 있는 그녀가 부자같으다. 중년은 이제 이런 동반자를 가족 공동체 안에서만 찾는 걸 그만 둘 수 있는 나이이리라. 그리고 유언을 정리하려고 한다고 했다.
3. 40에 숲으로 가자 - 40대의 성 (공선옥)
가난한 여성의 삶을 솔직하고 신랄하고 발랄하게 쓰고 싶었다는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서 미싱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 스무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해서 다섯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여성농민 봉금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경리 일의 남자들 희롱이 싫어서 버스 안내원 5년을 하다가 아버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이 필요해 퇴직한 후 결혼, 두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의 문제로 이혼한 후 십 년 요구르트 아줌마 해숙이,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과 머리는 정상인,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채 출근하는 서른다섯살 숙희의 이야기를 한다. 쉽지 않지만 현실적인 그녀들의 인생을 읽자니 일일연속극 볼 때보담은 힘이 더 든다. 밑줄 그은 글귀들이다.
병숙은 봉금이가 시골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해주는 것만 좋아했지 봉금이가 간헐적으로 내비치곤 했던 시골생활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100) 그것은 일반적인 도시사람들의 행태이기도 했다. 시골 사람들은 언제나 도시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어야하고 잘해주어야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주는 것을 자신도 당연히 여겼던 것은 아닌가? 자신도 어쩌면 봉금을 친구요, 같은 나이의 여성이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마치 부모처럼 여겼던 것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봉금이 제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병숙은 봉금과 사는 이야기만 했지 동성 친구들이 나눌 법한 여성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또한 남편도 없이 다섯 아이를 거느리고 살아야 할 아이 엄마는 여성이어서는 안된다는 세상 사람들의 모성신화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서였는지도 모른다(106)
옛날처럼 병이 나면 가만히 집에 누워있다가 죽음을 맞아도 되는 시대가 아니어서 아무리 노환이라도 봉금부부는 시대에 맞는 자식노릇 하느라고 시할머니, 시부모 모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작게는 일 년, 많게는 삼년을 병수발을 들어야했다(101)
해숙은 누가 이혼해서 애들 키우고 사는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냥 당연히 힘들지요 웃으며 대답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얄궂은 질문으로 잊고 살려고 했던 아픔을 환기시킨다. 그래도 그런 질문은 약과에 속한다. 함께 사는 부부한테는 절대로 묻지 않는 질문, 사별한 사람들한테는 차마 묻지못할 말을 이혼한 사람, 특히 이혼한 여성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으로서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14)
그때부터였을 것이다....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정성들여 쓰다듬어 주었다. ...늙으면 얼마나 편해, 여자라서 신경쓸 일도 없고...해숙은 구멍난 속옷을 버리고 과감하게 새 속옷을 사 입었다. 그동안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화장은 왜 해 하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50되면 후회할까봐 화장도 하게 되었다...그렇게 제 얼굴을 제가 만지고 있는 것이 기분좋았다.(117)
숙희는 남자를 사랑했으므로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숙희가 한 여성임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본능이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포함해 세상사람들은 숙희가 성인이 아니라 어린아이 취급했다. 생리도 하고 멋진 남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화장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123)
나는 우리 사회가 여성찬가, 모성찬가를 부를 때는 딱 한가지 상황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남성성에 복속해 들어갈 때와 모성이 희생과 헌신의 영역에만 머무를 때, 여성이 여성성 특유의 힘으로 남성성의 영역으로 생각되던 부분에 진입해 들어가면 그 여서의 여성성은 그 때부터 사회로부터 질시와 배척과 모멸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126)
우리가 마음의 숲 하나를 가지고 산다면 이 세상에서 가해져 오는 어떤 난관도 능히 이겨낼 여유가 생기지 않겠는가? 마음의 숲. 그것은 봉금한테는 친구가 될 수 있겠고, 해숙한테는 새벽녘 거울앞에 앉는 시간이 될 수 있겠고, 숙희한테는 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자기 존중의 시간, 안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는, 누구의 조력도 받지 않아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 오로지 자력으로 우뚝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해내는 순간. 40대 여성이여. 우리 마음의 숲밭으로 가자. 지금은 힘들지만 마음의 숲밭 하나 지니고 산다면, 그 숲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이다. (128)
4. 중년 비로소 시작하기 - 삶의 지평 넓이기 (강완숙)
중년기는 자신과 가족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자아를 확장하고 타인과 이웃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시기이며 아마도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경험, 때로는 아프고 고단했던 경험이 우리 안에 공감과 배려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첫머리에 나오는 ‘수양엄마, 수양큰엄마, 수양이모처럼 돌보는 어른이 없는 이웃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잘하는지 관심도 가져주고 의논상대가 되어주고 아이에게 자립심을 길러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하고 혹시 나쁜 유혹이 있어도 그 길로 빠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하자, 혼자는 부담될테니 함께 해보자’는 공부방에서의 제안을 실행해서 아이의 눈을 빛나게 만들던 것이 그 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꾼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의 소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진정 소중한 것은 마음의 행랑에 보관하는 것임을, 그 마음의 행랑을 마련한 후에야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음의 행랑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젊었을 적보다 마음의 눈이 맑게 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너그럽고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면서 군더더기를 털어내고 삶의 본질을 응시할 수 있는 지혜롭고 넉넉한 시선을 가진.
5. 중년의 숲에서 길을 묻다 - 중년기 전업주부와 취업주부의 일상 (유정원)
이 이의 글에서는 헌 책방에서 만난 <제3의 성, 중년 여성 바로보기-현암사, 1999>에서 인용된 것이 자주 나온다. 그 책이 그녀에게는 몹시 반갑고 소중했나 보다. 그의 주변 어머니 세대에서는 취업주부보다 전업주부로 살았던 여성들의 자식들이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은 생활이란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사느냐를 비교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는 전업주부로 살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간제로 번역일을 하였다. 그는 어머니 세대의 중년기 이야기를 살펴보며 자기 중년기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또 주변의 두 명의 중년기 여성을 살펴본다. 이혼하고 아들을 키우며 진솔한 교사로 살고자 애쓰는 이와 가난한 남편과 결혼해서 열심히 일하며 30대를 보낸 친구이다.
성공적인 중년기 전환을 이룬 사람으로 마흔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씨와 세 아이를 낳은 전업주부로 살다 서른아홉에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여성학자 변혜란씨를 들고 있다.
그 책을 나도 서초역 중앙도서관에 가서 읽어볼까나? 그런데 정작 그녀가 인용한 책보다도 내 마음을 강하게 끈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삼복더위에 막내 아들아이가 굶은채 잠들고, 그랬다고 딸아이가 엄마에게 원망에 찬 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성에게는 바빠서 아직 중년기 전환은 오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아이들이 자라야 자기를 위한 시간이 날 것 같다. 그러니 중년기 전환은 두부 모 자르듯 35살 전후라고 볼 수 없겠다. 만약 40살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면 그 아이의 아동기 양육에 드는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뒤에야 이런 시간이 오겠구나. 평균 기대수명이 80살 정도되니, 단테가 길을 잃었던 어두운 숲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겠다.
6. 불혹, 거기 서 있는 당신 - 성경이 전하는 불혹의 지혜 (김혜윤)
그녀는 수녀님이다. 수도자도 중년기 위기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불온할 것일까? 빈둥지 우울증이나 여성성의 쇠퇴같은 것 말고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나는 얼른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40이라는 통념이 주는 이젠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생물학적 기준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는 일반적인 통념도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마흔이 되면 자동적으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줄 알았다. 마흔은 불혹이라는 슬로건을 아무 의심없이 철석 믿은 때문이었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온 세상이 의기투합해서 내게 인생의 쓴 맛을 보여주겠다고 결의한 뒤 정신없이 나를 흔들어놓은 듯한 ‘유혹의 도가니탕’이었다. (196)
이제보니 마흔을 불혹이라고 한 이유는 유혹이 없어지거나 인생의 구차함이 깨끗이 청산되는 시기여서가 아니었다...유혹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넘어서고 극복할 비결이 체화되는 시기가 마흔이기에 ‘불혹’이라고 하는 것이다...요즘 내가 확신하고 있는 불혹의 비결은 ‘하느님과의 절대적인 관계’이다...구약성경의 지혜문학이 말하고 있는 불혹의 비결은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그 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곧 하느님께 대한 경외‘라고 천명한다. (205)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란 내 삶의 순간순간을 모두 그분께 의탁하고 순응하겠다는 신학적인 자세다 (206)
신학적인 부분을 어느새 건성건성 읽고 있다. 이 사람에게는 일상만사를 이런 틀로 읽고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주 중요할텐데 내게는 익숙치 않고 불편하다기 보담 지루했다. 수도자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것 잘못인가 보다. 법정스님의 오두막편지 같은 책에도 개인사는 없었던가? 데카메론의 수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수도자에게 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게 낫겠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을 적어본다.
첫째, 신체적인 쇠퇴를 나는 아직 만나고 있지 않은데 그것을 만나겠다는 예상. 신체변화 중 가장 커다란 것은 폐경, 또는 완경의 소식 또는 암같은 무거운 질병의 발견이겠지만 이건 이시기 것은 아닌 듯 하다. 별 일 없다면 좀 더 뒤로 가야 할 일이다. 좀 두렵기도 하지만 애 낳겠다는 생각만 없다면 그리 괴로워할 것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생물학적 친자에 대한 집착이 덜 놓아졌다. 그래도 노안 오기 전에 책 실컷 읽고 관절 아파서 타이핑 어려워지기 전에 일도 마음껏 해야겠다. 관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엄마의 관절염이 내 미래의 모습인 듯 하여 무릎 아프기 전에 산에 실컷 다니고 마라톤 풀코스도 도전해봐야겠구나 싶다.
둘째, 결혼여부, 취업주부, 전업주부 상관없이 중년기 전환은 공평하게 중요한 과제인 듯 하다. 일과 가정에서 생산성을 이루는 것이 마흔 전까지의 발달과업이었는데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어디서 친밀함과 생산성을 달성할 것인가? 이것이 요즘 나의 의문이다. 좋은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은 함인희씨의 글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 옆에 있어주는 이들을 소중히 하며 그래도 나를 풍요롭게 하는 취미들을 누리고, 직업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나이든 독신 교수인 그녀가 이 책에서 나와 가장 상황이 비슷하다.
세째, 마음의 숲, 마음의 행랑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하루 한 시간 거짓자아가 아니라 진짜 자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있다. 천일기도나 모닝페이지. 다행이다.
네째, 요즘 들어 소설읽기를 시작하려는데 박완서씨부터 읽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구나. 마흔에 첫 소설을 쓴 여자의 멋진 소설을 읽으면서 이래저래 힘을 얻을 것 같다.
다섯째, 보통 사람들(보통 사람 속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있다! 그 생각을 지금 해 본다)이 제 손으로 쓰는 중년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블로그에 있을것 같다. 요리, 여행 사진, 시인들의 멋진 시 말고도, 남들에게 보이는데 부담이 없는 밝고 멋진 것 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쓰고 그리고 찍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소통을 전제하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내게 닿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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