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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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똑같은 크기의 지붕과 출입문이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모든 물체들을 화려한 색깔들로 물들이고 있었다. 탐욕으로 물든 꽃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 곳에 왜 왔는지, 기억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뿌꼬는 잠시 동안 유혹의 눈빛들을 쳐다보며 상실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어느 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수첩에 적힌 전화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뿌꼬는 정면에 보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창문 안쪽에 긴 스탠드 의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분홍 빛으로 윤이 나고, 하얀 색 원피스는 네온사인에 와인 색깔로 물들었다. 숨쉬는 공기까지도 붉게 물들이며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불은 더욱 빨갛게 타 들어갔다. 음악이 멈추었다.
"여보세요"
"하얀색 아반떼 앞에 서 있는 아저씨 맞죠, 2층으로 올라오세요"
2층집 창문에서 누군가가 손짓하고 있었다. 모든 집이 단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문 가까이 다가가자 조금 전 창가에 앉아 있던 여자는 부산히 움직였다. 문이 열리자 진한 향수와 담배연기가 코 속으로 진하게 스며 들어 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일찍 오셨네요”
“아뇨, 저는 2층에 있는 여자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사장님? 올라가 보세요”
어둡고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뿌꼬는 문을 열자마자 불을 내뿜는 사람,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사람, 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난 뒤부터, 그는 고개 숙인 남자였다. 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다. 계단 위에 올라서자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넓은 침대 하나와 4인용 식탁이 보였다. 식탁 위에는 찌개냄비와 반찬이 담긴 그릇이 있었고, 바로 옆에 조그만
칼이 올려져 있었다. 시선이 칼날에 잠시 멈칫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화장으로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에 난 여러 줄의 주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뿌꼬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녀는 인사대신 찌개냄비 안에서 이물질을 끄집어 냈다. 하얀 비닐이 죽처럼 늘어져서 숟가락 위에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죠?”
“비닐인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무슨 비닐이죠?”
그녀는 식탁 위에 비닐을 내려놓고 펼쳐 보였다. 빨간색 찌개양념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있던 칼로 이리 저리 뒤적거렸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들어간
거죠?”
그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실수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온 몸이 시커멓게 타는 듯했다. 뿌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천천히 일어선 그녀는 뿌꼬에게 다가 왔다. 그녀는 그에게 일어서라고 손짓했다. 주춤거리면서 일어서자, 그녀는 뿌꼬의 가슴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는 뒤에 있던 침대에 걸친 채로 넘어졌다. 앉으려고 하자, 그녀의 무릎이 이미 그의 무릎을 누르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빨랐다.
계단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앉아 있던 여자의 얼굴이 보이더니, 뒤 이어 낯선 남자의 모습이 등장했다.
“초저녁부터 급하셨군요”
낯선 남자의 가슴에 ‘POLICE’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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