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리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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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5년 정도 되었을까?
상가에서 물건을 사고 장미아파트,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성빈이, 아들의 손을 잡고 가면서 아들과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어마나. 나 좀 보게 아들이랑 가면서 어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갈 수가 있노?
난 아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 나를 보며 한심함이 느껴졌다.
길거리를 오가다보면 끊임없이 어린 아들, 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엄마들을 보게 된다.
“ 나무, 저건 나무야. 이제 곧 봄이 오려나 보다 조그만 잎들이 보이지?
꼭 우리 성현이 같네.. 참 이쁘다 그치? 잎은 초록색. 성현아 초록색 해봐.“
끊임없이 아들과 재잘거린다. 마치 엄마 참새와 아들 참새를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의지를 발동해야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랬다. 난 어린 시절 스피치 파트너가 딱히 없었던 것을 발견한 날이었다.
난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을 때 몇 년 간 국어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상현이’ 내가 만난 아이 중에 가장 스마트한 아이였다.
하나를 알려 주면 셋,넷을 이해하는 기특한 학생이었다. 상현이랑은 같은 교회를 다녔다.
어느 주일 낮 점심을 교회에서 먹고 있는데 상현이가 성빈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그날 오뎅국이 나왔었다.
상현 - 성빈아 너 이 오뎅이 어디서 열리는줄 아니?
성빈 – 물끄러미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형아를 바라본다.
상현 – 그거 나무에서 열리는거야,
성빈 - 형아, 정말이야? 오뎅이 나무에서 열린다고?
주변 집사님들 – 떼끼 이녀석아, 가르쳐 줄려면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성빈아 형아 말 믿지 마라. 와하하하하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저 녀석 창의력이 대단하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번은 상현이와 에버랜드를 간 적이 있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그 옆엔 내가 앉고 뒷 자리엔 우리 아이들과 상현이, 교회아이들이 같이 갔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그 녀석은 성빈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는 데리고 가는 동안 내내, 1분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난 그래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어보았다.
상현아, 넌 누가 너를 데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더냐?
아...저요? 아버지께서 저를 무릎에 앉혀 놓으시고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아! 그랬구나, 상현이의 스피치 파트너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우리 아들은 다행히 내가 스피치 파트너가 되어주지 않았음에도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이번에 심리학과를 지원하고 로스쿨을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성빈인 중학교 2학년 도덕 시간에 논쟁을 벌이며 자신이 논쟁에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아무튼 엄마가 좋은 스피치 파트너가 아니었지만 타고난 DNA에 아빠랑 종종 대화했건 것이 밑거름이 된 것일까?
남편은 종종 성빈에게 이렇게 물으며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너 어디서 왔느냐?”
그럼 성빈인 웃으며 “전, 장계에서 왔슈.” ( 장계는 남편이 농장을 하던 시골 지명이다.)
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나에게 어릴 적 스피치 파트너가 없었던 것에 비해 우리 아들은 잠시 동안이라도
행복한 스피치 파트너가 있었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건설사 경쟁 피티를 하다보면 십여명의 사람들이 한 팀이 된다.
그런데 트레이닝을 시키다 보면 꼭 어떤 그룹에서던지 한 두명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을 최초로 배우는 곳은 '가정' 이다.
특히 엄마 아빠를 통해 우린 처음 말을 떼기 시작한다.
복서들이 스파링 파트너가 있어야 실력이 늘듯이 우리 어린 시절에 스피치 파트너가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말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환경이 바로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가 아닐까 싶다.
내 자녀들이 말을 잘 하고 자신감이 있기를 바라려면?
잘 들어주고, 얼쑤 박자와 장단을 맞춰주는 부모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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