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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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 PC ZONE
새로 전근가는 학교 정문 앞 최단거리 pc 방에 왔습니다. 금연석을 달라고 했지만, 흡연석과 문이 없군요. 전 석이 흡연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냄새는 모두 좋게 느껴지는 법, 저는 담배에 대한 혐오가 없습니다. 비흡연자인데 구수한 느낌이 듭니다. 나랑 같이 자던 증조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담배를 태웠고, 아버지는 하루 3갑을 피운 적도 있었어요. 내가 돈을 벌고 나서 사다드린 금연초를 계기로 담배를 끊으셨죠. 담배냄새는 나에게 커피 냄새랑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아아, 시칠리아 여행갔을 때 대구에서 오신 여자분이 알려주신 걸 아직 못했네요. 에스프레소 키스. 배가 고파서 '눈을 감자'를 한 봉다리 사서 오도독 거리며 있습니다. PC방 공기는 컵라면 섭취를 촉진하는 냄새. 컵라면은 탄산음료를 부를테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네요. 12시 마감 알리바이 쇼, 잔머리. 그만 해야지, 청산해야지, 개과천선해야지 하는 일이 오늘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우 정말. 으으으 진짜로.
어제 그제 주말 동안 이사를 했어요. 금요일에 발령이 났구요.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 할 일을 여여히 하면 좋겠구만,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말입니다. 내 유일한 원피스는 오늘 아침 10시까지 이사 가기 전 집의 세탁소에 있었어요.그 원피스는 입학식, 졸업식, 학부모 공개수업, 인사가는 날 마다 입어요. 단벌의 효용, 잔치집과 장례식에 함께 입을 수 있고요. 이사간 서울 집에서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왔어요. 옷을 세탁소 옷걸이 사이에서 훌러덩 갈아입고요 벗은 것은 재활용 옷통에 골인시켰습니다. 분홍색 잠바와 에스닉스타일의 바지입니다. 잊어버리고 그냥 이사간 줄 알았다는 세탁소 아줌마는 내가 그랬으면 세탁에 다림질, 단추까지 꼼꼼히 꿰맨 남의 옷들을 껴안고 먼지를 묵히고, 일한 값도 받지를 못하겠죠. 나는 잊어먹어도 그녀는 잊을 수 없는 나의 이사날. 이사는 잘냐고 그녀가 물어봅니다. 잘했습니다. 포장이사를 했어요. 남자 3명, 여자 1명이 왔어요. 포장이사고 용달이사고 이사를 제 손으로 처음 해봐요. 대략 그 방의, 그 서랍 위치로 짐이 옮겨졌어요. 알라딘의 램프에서 지니라도 불러낸 느낌이었어요. 내가 쓰던 가스렌지 밑바닥 얼룩과 내 장롱밑의 먼지 덩어리를 남 손에 치우게 해서 민망하고 미안했어요. 내 속옷 상자를 남이 다 싸서 옮긴 것도 그렇구요. 내가 거들겠다고 책들을 꼽았더니 책들만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특수학교에 발령이 났어요. 다행히 섬은 아니예요. 이번에 섬에서 3자리가 났거든요. 특수교사들은 승진할 일이 없으니까 섬점수가 필요가 없고요, 아무도 안가니까 뺑뺑이로 돌리거든요. 섬으로 발령이 날까봐 안달복달 했어요. 백령도와 영흥도. 백령도는 군사지역이고 영흥도는 안산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했지요. 바다는 아름답고, 조기도 많이 먹고, 관사에 살면서 어쩌면 바다낚시도 종종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지난주에 신혼집으로 쓸 집을 구했고요. 마흔 넘어 시작하는 새 살림살이를 조그만 집에 옮기고 왔어요. 내가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서 먼저 이사를 했어요. 오늘 아침 정신없는 와중에, 화분을 이리 놓았다, 저리 옮기고, 베란다에 있던 페이트칠 트레이를 반듯하게 놓고 나왔어요. 새 살림은 아니예요. 3년 전 독립할 때 산 지펠냉장고, 12KG 세탁기, 옷장들을 실어왔지요. 나와는 이미 구면인 살림들이예요. 독립기념품으로 장만한 것들이죠. 그러고 보니 모든 살림이 그 때 장만한 것들이네요. 네, 서울로 입성했습니다. 서울 입성기념으로 할 것들을 몇 가지 메모했습니다. 차 끊길걸 걱정않고 홍대 버스킹에 가서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 보기, 남산 산책로 노을 질 때 걷기, 공사 끝난 남산도서관에서 마감 치기, 살롱9 강좌 기웃거리기, 서울의 미술관 박물관들에 딸들을 데리고 오는 동생네 가족 재워주기...
교무실은 2층. 휠체어를 타러 다니는 긴 경사로와 계단이 같이 되어 있었어요. 인천에서 제일 큰 특수학교예요.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있어요. 아 전공과에 학교기업도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친 후 직업훈련을 받는 과정이예요. 여기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모르겠어요. 좋은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은 지역이 좁으니까 새로운 학교로 갈 때 교감, 교장 선생님이 교사를 일일이 당신이 운전해서 차로 데려다 주세요. 낯선 곳으로 떠나는 마음이 경험 많고, 연륜의 나이테를 가진 분들 앞에서 누그러집니다. 4번째 학교입니다. 같이 와주신 분들 덕분에 마음이 곧추 서지 않고 둥글고 푸근해졌습니다. 그 분은 복받으실거예요. 나도 그런 식으로 동행하는 역할을 품앗이하고 싶습니다. 아, 그렇다고 승진에 목매겠다는 건 아니예요. 나는 10년을 경영할 것들을 작년 올해 많이 시작했습니다. 그걸 가야죠. 승진을 작정해도 10년 걸린다고 하시네요. 뭐든 뜻을 세우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자면 10년을 써야하는거구나. 10년, 1만시간의 법칙은 어디에나 공평하구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여긴 여닫이가 아니네요. 문이요. 하긴 휠체어들이 간편하게 지나다니자면 여닫이는 불편하지. 세 명의 여자들이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얼굴은 하나도 기억하질 못합니다. 긴장하고 떨립니다. 아마 목구멍도 쪼그라지고, 동공도 수축되어 있을 겁니다. 한 장짜리를 형식적으로 쓰고 나왔습니다. 여기 장,감님들도 모두 이동하는 교사들을 태우고 학교로 다니고 계시다는군요. 얼굴 못 본 게 나는 괜찮은데 교감선생님한테는 미안합니다. 그게 20분 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겨우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그토록 쫄아있었던가 좀 억울해 질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쓰면 안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9월 이후에는 내가 쓸 책에 대해 써야하죠. 2월까지만 <천일 간의 자기사랑>을 쓰겠다는 허가를 받았는데, 그것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대놓고 헤매다니고 있습니다. 이건 <천일간의 자기사랑>도 아니고 신화에 대한 책 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풍경 하나하나가 내가 만들 조각보의 한 조각이길, 갈 짓자 행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다운 길의 과정이길 바랍니다. 하늘에다 하는 우격다짐 같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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