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닝덱
- 조회 수 2169
- 댓글 수 7
- 추천 수 0
오늘도 바쁜 아침이다.
새벽 4시 경 일어나 약간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게 2012년 봄이었으니 벌써 8년 정도가 지났다. 사실 요즘은 '글을 말하다'라고 이야기해도 좋을 법하지만, 나는 '말'로 글을 쓰는 능력이 그리 익숙하지 않아, 아직은 타이핑으로 글을 쓰는걸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은 노트에도 적고 있으니, 말로 글을 쓰는 아들녀석이 나를 구세대라고 타박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건 아니다.
시간은 어느덧 아침 7시. 아이가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한다. 원래를 홈스쿨링을 시키려했던 나이지만, 그래도 사회와 다른 아이들과 멀어지면 안된다는 아이엄마의 의견때문에 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우리 때와는 달리 홈스쿨링이 그리 어색한 방법도 아닌데, 왜 그리도 싫어하는지......'
많이 나아졌다고는 그래도 아이들의 창의성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고 결국엔 죽이는 것 같아, 공교육에 대한 나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안방마님의 의견을 따르는 수 밖에...... 흠, 사실 요즘 그녀에게 '안방마님'이라는 별칭은 맞지 않다. 오히여 내가 '안방마님'에 가깝다.
나는 아이에게 밥을 차려줬다. 음악을 듣고 싶어서 BB에게 말했다.
"BB, Gun's & Roses의 'Patience' 좀 틀어봐...... 아무 소리도 안나니까, 허전하다."
BB가 노래를 들려준다. 아이는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노래는 언제적 노래냐며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BB는 " 이 노래는 1988년 노래입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레OO'라는 광고 BGM 으로 사용돼 꽤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라고 기계스럽게 대답한다.
"BB, 너한테 물어본거 아냐!" 아이가 성을 낸다.
'ㅋㅋㅋ'
BB, 우리집에 있는 스마트로봇이다. 녀석은 청소도 해주고, 정보도 알려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때에 따라서는 심심해하는 나와 대화도 해주는 고마운 놈이다. 몸체가 차갑다는 것과 전기세가 꽤 나간다는 것, 그리고 구입을 위해선 약 1000만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초기투입자본이 필요하다는 점만 빼면 나름 괜찮은 녀석이다. 기본적인 대화수준에 그치긴 하지만 홀로 있는 나와 대화도 해주니까...... 어차피 아이와 애엄마가 나가고나면 쓸쓸히(?!)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하는 팔자니까 말이다.
아, 아이엄마도 출근준비로 바쁘다. 그녀는 2년 전부터 '대화컨설턴트'로 문화센터, 직장인들의 모임 등 몇몇 off-line 활동을 하고 있고,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수강생들을 모집해서 활동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 고졸이란 최종학력에 힘겨워하던 그녀였지만 '대화컨설턴트'란 직업을 얻으며 활발히 그리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이다.
'대화컨설턴트',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이 생경한 직업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회사를 다니던 2010년 전후에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었다. 적어도 그 때까지 우리 사회는 대화에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족간에도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기 바빠 대화가 단절되는 징후가 있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그 뒤 '스마트tv' 다, '구글 글라스'나 '삼성글라스' 그리고 '아이와치' 같은 스마트기기가 쏟아져나오면서 문자소통과 외계어가 범람하는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말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에서도 e-mail과 문자위주로 업무를 하고, 갖가지 스마트기기들이 대화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띄워주고, 통번역해주는 등, 기기와 그들이 주는 많은 정보가 우리들의 대화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대화는 기계적이고 업무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는 대화자체를 잘 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실제 '재택근무', '초핵가족화',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대화 자체가 미숙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환경은 '대화컨설턴트'라는 직업을 낳았고, 대화컨설턴트는 커뮤니케이션 코치와 정신과의사 그리고 친구의 역할을 다양하게 해주는 신종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수강생들과 그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학교다닐 때부터 사람들을 웃음을 끌어내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던 그녀, 직장에 다닐 때도 관리자와 밑의 직원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곧 잘 했었고, 동시에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던 그녀인걸 떠올리면 이만큼 적합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학위도 없는 그녀가 대화를 하면서 돈을 번다는게 어색하긴 하지만, 꿈을 쫓는 사람을 지지하는 나로서 그녀의 활동 또한 지지하고 있다. 아주아주 적극적으로 ^^
아이는 학교로, 아내는 문화센터로 출근을 했다. 이제 나만의 시간이다. 오후에 있을 김천만감독과 있을 시나리오 검토 작업을 위해, 지금까지 써놓은 시나리오를 다시 봐야할 것 같다. 원래는 단지 글을 쓰고 싶었고, 글쓰는게 재미있었고, 그래서 즐거운 글을 쓰는 게 목적인 나였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글쓰기로 세권의 책을 쓰긴 했지만, 시나리오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큰 돈은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가 만들어진가는 것, 그리고 '전방위적 글쟁이'를 표방하는 나에게 이 작업은 이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거부할 수 없었다. 이번 시나리오작업은 나와 함께 공부를 했던 J작가가 자신이 아는 감독이 당찬 여자에 대한 인생스토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한다며 나와 연결시켜주었던 건이다. 여자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많은 사전 조사와 책을 통해, 그리고 나의 아내를 통해 얻은 적지 않은 소스들과 통찰력, 그리고 상상력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오늘이 김감독과의 두번째 만남인데 과연 그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는 만족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하면 족하고, 실망하면 수정하고 보완해가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하루하루는 실험이자 모험이고 도전의 연속이니 성공이건 실패이건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짜릿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수 많은 새끼거북이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런 거북이새끼들처럼 꿈도 도전으로 채워진 수많은 하루를 통해 나와 내 인생이 조금씩 풍성해지는 것이니..... 이를 통해 스스로가 성숙할 수 있고, 이것 자체가 즐거움이라 말한 내 스승의 인생관을 바탕으로 살고 있는 나 이니까......
김천만감독과의 미팅 후, 나의 첫번째 인터뷰집 작업을 위한 인터뷰 약속이 있다. 이번 인터뷰집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출신들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2000년대 故 구본형 스승님에 의해 만들어진 구본형변화경영 연구소는 이제 '자기경영', '변화경영'을 다루는 사설 연구소 중에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잡았다. 이는 故 구본형 선생님이 뿌린 씨앗들이 꽃을 피우고 이 사회 곳곳에 그 향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변화경영 전문가로 구본형 스승님의 뒤를 잊고 있는 홍승범 변화경영 전문가, 오랜기간의 작품활동과 수련 끝에 몇차례의 개인전을 열어 꽤나 인지도가 높아진 대한민국 대표 꿈화가 한정아 화가, 끌쓰기와 책읽기 코칭으로 많은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인기강사 한명성 코치님, 치유과 자기계발을 연계하여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어버린 의사이자 작가 문여한 작가님 등 총 15명의 변경연 출신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성공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오늘 저녁엔 그 첫번째 인터뷰이로 합정동 살롱9 에서 홍승범씨와의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다. 그는 이 책의 공저자이자 기획자, 그리고 선배이자 친구이기도하다. 그가없이는 이 프로젝트도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괜찮은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을 주제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가끔 나를 으쓱하게 만든다.
2020년 4월 봄날, 나의 하루는 이처럼 시작되고 이처럼 채워져가고 있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이의 등교준비를 시켜주고 아침밥을 챙겨준다. 아내는 나로 인해 마음 편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쓰고 변경연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집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 5년전만해도 조직에 몸담아 조직인간으로 살던 내가, 지금은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며 살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구본형이라는 큰 스승님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2008년 서른 하나의 나이에 책을 통해 그를 만났다. 그는 나의 멘토였고 나는 그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5년 뒤 우여곡절 끝에 그의 마지막 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그처럼 되고 싶었고 열심히 공부했다. 나의 스승은 마흔 세살에 첫 책을 냈다. 자신이 속한 익숙한 세상과 결별을 고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각각의 즐거움으로 보았고, 자신의 하루를 즐기고자 했다. 스스로를 즐기려 했고, 가족과 즐기려 했고, 자신의 쏘시개 불꽃을 심어줄 많은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즐기려 했다. 그는 삶은 충분히 즐거웠다. 즐기도 실험하고 또 즐겼다. 그것이 성공으로 채워졌든 실패로 채워졌든 개의치 않고 즐겼다. 그로 인해 그의 세계를 깊어지고 동시에 조금씩 커졌다.
어느 덧 그 처럼 마흔세 살이 된 나.
나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다. 새벽기상을 하고 글을 썼다. 그의 정신을 기억하고 행하여려 했다. 여전히 그의 깊이를 따라갈 수는 없으나, 그와 조금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흔세 살의 나도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춤판을 벌이고 있다. 때로는 가족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무대를 준비해주기도 한다. 김감독과 서로 누가 잘하나 노려보며 춤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변경연 가족들과 함께 어울어져 포크댄스를 추기도 한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인생이 된다. 나의 인생은 꽤 즐길만해졌고, 조금씩 조금씩 풍요로워지고 있다. 마치 시처럼 살다간 나의 스승, 구본형 선생님의 삶처럼 말이다. 유난히 그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472 |
[5월 2주차] 지금 이 순간 ![]() | 라비나비 | 2013.05.13 | 2024 |
3471 | 9-2 마침내 별이 되다 (DS) [15] | 버닝덱 | 2013.05.13 | 2083 |
3470 |
5월 2주차 칼럼 -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이유 ![]() | 유형선 | 2013.05.13 | 2158 |
3469 | #2. 필살기는 진지함이다. [8] | 쭌영 | 2013.05.13 | 2053 |
3468 | 떠날수 밖에 없는 이유 - (9기 최재용) [16] | jeiwai | 2013.05.11 | 2494 |
3467 | 산 life #3_노적봉 [6] | 서연 | 2013.05.09 | 2907 |
3466 | 2-4 너는 나의 미로 | 콩두 | 2013.05.08 | 2311 |
3465 | 가까운 죽음 [12] | 한정화 | 2013.05.07 | 2421 |
3464 | 산 life #2_마이너스의 손, 마이더스의 손 [1] | 서연 | 2013.05.07 | 2616 |
3463 |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6] | 한젤리타 | 2013.05.06 | 2197 |
3462 | (No.1-1) 명리,아이러니 수용 - 9기 서은경 [13] | tampopo | 2013.05.06 | 2035 |
3461 |
[5월 1주차] 사부님과의 추억 ![]() | 라비나비 | 2013.05.06 | 2359 |
3460 |
연 날리기 (5월 1주차 칼럼, 9기 유형선) ![]() | 유형선 | 2013.05.06 | 2274 |
3459 | 나는 하루살이 [14] | 오미경 | 2013.05.06 | 2186 |
3458 | Climbing - 6. 오름에도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1] | 書元 | 2013.05.05 | 1991 |
3457 | #1. 변화의 방향 [7] | 쭌영 | 2013.05.05 | 2088 |
» | 9-1 마흔 세살, 나의 하루를 그리다(DS) [7] | 버닝덱 | 2013.05.04 | 2169 |
3455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9기 최재용) [19] | jeiwai | 2013.05.04 | 2096 |
3454 |
시칠리아 미칠리아 - 소설 전체 ![]() | 레몬 | 2013.05.01 | 2215 |
3453 | 시칠리아 미칠리아 - 몬스터 (수정) [2] | 레몬 | 2013.05.01 | 2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