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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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광화문에서 회식이 있었다. 하늘에서는 조금씩 비가 내렸다. 광화문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라이브 카페에 들렀다. 그곳에는 대학교 때 즐겨 들었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노래도 따라 불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였다. 슬픈 눈빛이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써 다른 곳으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윤도현 밴드의 ‘너를 보내고’가 흘러나왔다.
“구름낀 하늘은 왠지 니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창문들 마저도 닫지 못하고 하루 종일 서성이며 있었지"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술 잔을 비우고 노래하는 가수를 보려 하는데, 누군가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보던 여자였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검지 손가락을 내 가슴으로 향하며 말했다.
“저와 춤을 추자는 말씀이세요?”
“네, 나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두 손을 잡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하지만 낯설고 어색했다. 서로의 몸짓은 무거웠고, 마음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화문 가로수길이 보였다. 봄꽃들이 슬픈 춤을 추며 떨어지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어디선가 “브라보!, 브라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마지막 곡이 이어졌다. 이상은의 ‘언젠가는’이었다. 조금씩 리듬에 몸을 맡겼다. 낯선 느낌들은 익숙한 리듬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순간 그녀와 나는 춤으로 하나가 되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나의 두목은 춤을 추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춤추고 싶은 마음을 열어주었다. 순간을 즐기고 표현하는 마음. 복잡한 운명의 미궁에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그 날,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브라보!’라고 외치는 두목의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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