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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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다이내믹했던
서울은 과연 내 기대를 충분히 부응했다. 모든 것을 잘해보리라고 다짐했던 나는, 어짜피 아는 사람도 없는 이 곳에서 스스로 변신을 준비했다. 먼저
좀 밝아져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세련되어지고 이기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때는 그게 쿨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학교며 기숙사며, 온통 지방학생들 뿐이였으니깐. 그리고 그 중에 유일한 서울 친구였던 말 그대로 여자인 친구가 있었다.
굵은 검정안경에 여드름, 교정한 치아와 경박스러운 목소리,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았던 패션 감각까지.. 정말이지 여자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친구였다. 뭔가 쿨하게 변신을 해보려고 했던 나에게 이 친구는 치명적인 단점이였지만, 어찌된 것인지 같은 조에다, 같은 수업 발표, 같은 동아리까지.. 우리는 운명의 끈처럼 묶이게 되었다. 치아 교정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그녀가 만만했던 나에게는 유독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역시 편했던 그녀에게 이것저것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당시 우리가 사귀지 않았던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였다. 첫번째는 그녀가
굉장히 부잣집 딸이였기 때문이였다.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이미
부모들을 통해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해본 그녀는 나를 정말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당시 그녀는 외국남자와
만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나 역시 그녀에게 도통 호감을 갖을 수
없기 때문이였다. 이야기 할때는 좋지만 그것 뿐이였다. 우리가
만난다면 여드름 커플이 될 것이라는 공포가 들었고, 당시 밀려드는 미팅 약속에 그 친구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 친구 때문에 오페라도 구경하고, 호텔 뷔폐라는
것도 처음으로 가보았다. 손도 잡았보았지만 우리는 애인은 아니야 라고 서로 생각했다. 순진하고 풋풋했던 스무살의 이야기다.
한학기쯤 마치고 그녀는 학교를 자퇴했다. 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그녀의
소식을 물어봤지만 나역시 모른다. 정말로 몰랐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번 시도 끝에 나역시 쿨하게 그녀를 잊어 버렸다. 그 사이 군대도 갔다 왔고, 약간의 방황도 했고 가끔 핸드폰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고도 미안해서 전화를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유명해지면 당시 유행했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에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핸드폰에 있는 그녀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로 나왔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고 나서다.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른 친구에게서 내 연락처를 알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쉽게 연락이 된다니 허무하면서도 한편으로 기뻤다.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에서는 이눈치 저눈치 다보고 강남의 약속장소로 가보았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거기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있었다.
풋풋했던 대학교 1학년 때처럼 그녀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은 흔하던 양악수술부터 해서 여기저기 많이 고쳤다는 이야기. 외국에서
공부한 이야기, 지금 하는 일과 남자 친구 이야기까지 쉴새없이 자기 이야기를 해댔다. 헌데 난 조금 불편했다. 세련된 외모와 복장,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녀가 변신할 동안 예전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져버린 내 스스로가 볼썽사나웠던 것도 있었다. 이제는 조금 커져버린 레벨 차이 때문에 전처럼 편하게 장난을 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 만남 이후로 몇번 더 따로 만나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즐거움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제 나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어졌다. 이뻐진 외모와 자신감
때문에 그녀 주위에는 많은 이들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년 정도 있다가 그녀는 의사와 결혼을 하였다. 대학 친구로는 유일하게 난 그 결혼식을 참석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연락을 끊었다.
가끔 술자리에서 그당시 이야기를 한번씩 하곤 한다. 그녀의 변신은
나에게 좋은 술안주 거리인 셈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의 before와 after를 생각하면 혼자서 ‘풋’하고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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