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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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은 무얼 하는 것이 잘하는 걸까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답이다.
“청소 중입니다”
'주변정리를 한다는 말이네…사무실청소? 아니면 집 청소?'
시장은 오리무중이다. 나만 이런가?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다. 시장 거래량이 많이 줄었다. 사고파는 행위를 하는 참여자가 줄었다는 말이다. 주식매매를 업으로 하는 친구, 주식을 좋아하는 전업투자자다. 강산이 한번 이상 변하는 동안 알아온 친구이니 나의 뜬금없는 문자에 선문답 같은 답이 돌아온다.
며칠 전이다.
S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나 "죽기일보직전"
S "왜? 주식 때문에?"
나 "영업이 안되니 돈이 말라서, 돈벌이가...."
S "완전 성과급?"
나 "ok"
S "막 돌려요. ㅋ"
나 "그것도 남아야 돌리죠"
S "때로는 안 남아도 손절 해야죠. 손절 안하고 어떻게 투자를..... 하기사 그것도 상황이
어느 정도 되어야겠지만...모르는 바 아님.."
나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S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종목 상담 언제든 오케이 이니까...부담 없이 연락하시고"
펀드메니져, 전략가, 애널리스트, 브로커, 사이버전문가 안 해 본 것이 없는 친구다.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났다.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물게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하기는 뭣해도 지금까지 잘 지내는 것을 보면 그 친구의 됨됨이가 괜챦다는 반증이다.
늘 무엇인가를 팔거나 사거나 해야 하는 일. 브로커의 존재이유이다. 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요동을 친다. 차라리 요동을 치면 다행인데…병든 닭처럼 시름거리는 시장이란 영 재미가 없다. 나도 같이 맥이 빠진다. 상승장이 아닐 때는 쉬는 것이 좋은 투자이다. 상승장과 하락장은 늘 반복된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하락장에서도 매매를 해야 하고 영업은 해야 한다. 그 일의 답답함이 나의 하루를 지치게 하고 있다. “샀다 하면 빠지네” K부장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제발 한 숨 좀 쉬지 말라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한숨은 전염성이 강하단 말입니다.”
괜시리 핀잔을 준다. 오늘은 외근하기에 좋은 날이다. 말이 외근이지 맘에 맞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면 좋겠다. 고객과 영업직원으로 만나지만 그들 중에는 친구처럼 맘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관계를 뒤로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 나는 가끔 고객명단을 들여다보면서 누구에게 전화를 하면 힐링이 될까. 오늘은 그것도 그만둔다. 너무 피곤하면 잠이 오지 않고 밥맛이 없는 것처럼.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에서 전화기를 든다는 것.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쉽지 않다. 바닥난 에너지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이럴 때는 고객이자 친구가 필요하다. 일도 하고 힐링도 되는 친구.
컴퓨터 모니터를 꺼버리고 싶은 날이다. 실적집계화면은 들어가보지 않은지 삼일 째다.
그 화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달의 샐러리를 생각하게 한다. 매달 써야 하는 돈은 목록이 쭉~~ 망쳐버린 영화필름처럼 올라온다.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지?'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멈출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오를 것인가. 인생이라는 산은 늘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난 전진을 택했다." 조형산수造形山水라는 대칭으로 山 그림에 전념한지 20년이 되는 전래식 선생 인터뷰기사 첫머리이다. 살아가는 동안 선택을 강요 받는 존재. 필멸의 인간이 가지는 운명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 단순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두 번의 손절이 가져오는 병폐. 다시 게임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 때가 아님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면 쉬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쉼과 다시 시작함. 그 사이는 견딤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 잘 기다리지 못하면 살아 날 수 없는 일. 기다리면서 해야 하는 일. 그 일을 해야 한다.
“철강, 시멘트, 유화 신용 적신호” 금감원 취약업종 추가….채권銀 통해 자금흐름 면밀히 분석. 2012년 취약업종 구조조정 대상기업이 올라와 있다. 건설업체17개 조선1 해운1 반도체2 디스플레이2 기타13 여기에 2013년에는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을 추가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을 제외했다.”
"증시 매력, 경상수지가 결정한다. 현재시점에서 국가별 주식시장 투자 매력을 따진다면 미국, 한국, 동남아, 남미 순일 것이다."
"추락하는 증시, 전문가 긴급진단, 코스피 당장은 시련…버냉키 입 주목"
"증시에 혁명적 변수 될 ‘셰일가스’"
"삼성생명 자사주 매입 배경은"
"이머징 국채, 환 투자 효과 노려라."
경제신문의 타이틀 기사들이다. 나무를 보는 일과 숲을 보는 일. 둘 다 중요하다. 서는 것과 가는 것이 반복되어야 진행이 된다. 나무가 보이지 않을 때는 숲을 바라봐야 한다. 시야를 넓히고 심지는 깊이 박아야 한다.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는 일, 오늘 같이 막막한 날에 내가 할 일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정표가 보인다. 이쪽으로 가면 어디로 가구요 저쪽으로 가면 어디로 갑니다. 이 방향은 몇 킬로 남았구요 저 길은 얼마나 걸립니다. 이정표를 보면서 생각한다. 더 갈까. 여기서 멈출까. 쉬다 갈까. 내려 갈까.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다시 오지.
갈림길. 선택을 강요하는 길. 하루의 길. 길 위에 내가 있다. 오늘 나는 선택을 강요 받는다. 이렇게 살 것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를...."왜 사냐건 웃지요"하던 시인이 생각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