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비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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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여왕의 교실’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착한 사람에겐 끝내 복이찾아온다”는 즉, 사필귀정, 권선징악이 현실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이들에게 냉정하게 알려주고자 하는 선생님과 그 선생님에게 맞서 대항하며 정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믿고 그것을 증명하려는 아이와의 힘겨운 사투를 다룬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정의’란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역시나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이며,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인가?
나 역시, 40여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간직하고 싶고 고수하고 싶은 가치는 진정성 즉, 진실된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진실은 통한다, 고로 진실하게 살자!”라는 모토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나의 삶의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었다. 내가 40년 가까이를 옳다고 믿어온 나의 가치관이 나의 착각(?) 아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현실의 불편한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조건 진실하다 솔직하다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과 상황적 판단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하여 당장의 수모를 감수했던 ‘한신’과 같은 현명한 처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진정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과연, 진정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궁형에 처하는 굴욕을 겪게 되더라도 또, 임금에게 직언하여 사약까지 받게 되더라도 소신 있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가? 하지만, 역사를 보면 그것은 결코 옳지도 또 현명한 자세도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에는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고, 상황에 적합한 ‘상황적’ 판단이 고려되어야 한다.
무조건 자신의 의지와 뜻만을 믿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은 때로는 신념 있고, 용기 있는 행동일 수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은 힘을 길러야 하며, 그 힘이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줄, 내 쓰임을 알아줄 사람에게 우선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나 혼자 나의 옳음을 부르짖는다 하여도 들어줄 귀가 없고 공감해줄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우선 상대방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방을 살피고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보고 그 사람에게 맞는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군주이건, 상사이건, 친구이건, 아니면 배우자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읽어내고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교활한 책략가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지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타이밍을 고려하되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가치관일 것이다. 그 가치관이 어떤 이에게는 ‘소신’, 어떤 이에게는 ‘정의’ 어떤 이에게는 ‘신념’ 나에게는 ‘진정성’이다. 그러한 가치관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한 나의 불꽃은 흔들릴지언정 꺼지지 않으리라. 내가 나 자신으로써 세상에 인정받게 되는 그 날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등불을 꺼내어 세상을 환히 비출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는 내 안의 그 불꽃은 스스로 잘 타오를 수 있도록 잘 보살피되 내면에 감추어 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