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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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제도나 규정이 없으면 무법천지가 될까요?
출근과 퇴근은 제멋대로고, 조직적인 성과를 내는 일에는 모두가 무관심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판을 칠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후합니다. 책임이 전제되지 않은 자율은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버금가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율은 양날의 칼이 되어 조직의 목숨을 겨누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회사에는 함께 일하기 위한 기준이나 규정이 있습니다. 출근은 9시, 퇴근은 6시, 하루 1시간 휴게시간, 하루 8시간을 근무한다라는 일상적인 기준도 있고,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라는 상벌 기준이 있기도 합니다. 나아가
매년 목표를 주고, 평가를 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보상을 정하는 인사제도가 있고, 조직 안에서 계급의 높고 낮음을 정해서 질서를 유지하려는 직급제도도 있습니다.
아무튼 직장에서의 일상은 제도나 규정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실정법(實定法)이라는 보편적이고 경험적인 룰에 의해서
어느 정도 지배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여집니다.
정기적으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인사제도를 설명하곤 합니다. 그 때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나 합니다.
"인사제도는 ( )이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제가 제시한
정답은 "지도" 였습니다.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인사제도를 잘 들여다 보세요, 그리고 그 제도가
담고 있는 목적,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잘 이해해서 따라가면 조직의 사다리를 빨리 오를 수 있습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정답일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회사는 기준, 규정, 제도라는 그물을 촘촘하게 얽어서 구성원들을 일하게 합니다. 그들을
자극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어딘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물을 치는 인사쟁이의 기우(杞憂)일까요?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겠습니다만 걱정은 현실입니다. 기준이나 규정으로는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힘이
부칩니다. 규정은 최소한의 가이드일 뿐이지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무엇을
못하게 하거나 꼭 해야 할 일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설득 되지 않습니다.
직원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도나 규정을 걷어치울
수 있을까요?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동기부여되는 자가발전기처럼 직원들이
일하면 좋겠지만, 사람은 둘 이상이 모여서 조직을 만들면 '상대성'이라는 강력한 자기력(磁氣力)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교하게 됩니다. 혼자서 일할 때 생기지
않는 비교의 저울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니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엉성한 듯하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고는 숨거나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세상이 정해놓은 법은
빠져 나갈 수 있으나 하늘의 법은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기업에서 천망(天網)과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규정이나 제도로
촘촘하게 그물을 만들고, 리더를 두어서 구성원들을 관리한다고 해도 직원들은 더 잘게 그들의 열정을 쪼개서
빠져 나갑니다. 관리나 통제의 틈 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닙니다. 엉성하고
또 엉성하더라도 직원들의 열정과 참여를 담아내는 '하늘그물'이
있다면 조직이나 구성원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직원들에 의한 천망(天網)
그런 천망(天網)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동료들의
눈입니다. 회사의 눈이나 상사의 눈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동료들의 눈이 천망(天網)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Peer Pressure(동료압력)라 할 수 있습니다. 제도에 의해서 제어하는 것보다 문화로서 통제하는 일입니다.
Peer Pressure에 의한 평가-보상
제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직원들은 매달 열 명의 동료를 칭찬합니다. 그냥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근거(evidence)를 가지고 칭찬해야
합니다. 특별한 성과를 냈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도왔거나, 함께 일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칭찬합니다.
비난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칭찬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칭찬을 잘 하려면 회사의 일과 동료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유를 기록하려면
잘 살피고 이해해야 가능합니다.
더불어 나는 동료들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평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동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공헌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상사로부터 하달되는 일방통행의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조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제시해야 합니다. 조직의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섬처럼 존재해서는 의미 있는 목표나 성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척하고,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어슬렁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두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조직 전체의 직관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서 일하고,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상사는 폴리스(police)가 아닌 멘토로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직의 Peer Pressure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야 합니다.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압력을 버티며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칭찬을 모으면 평가가 됩니다. 동료들의 정성이 담긴 피드백이 내가 거둔 일년의 성과가 됩니다.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나는 나의 강점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들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통해서 지혜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런 지혜의 누적은 조직의 힘이 강해지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은 지혜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땅의 첫 번째 신탁이었으니까요.
앞서 말씀 드린 칭찬을 종합한 것을 <공헌보드>라고 부르겠습니다. 공헌보드는 100% 공개됨이 원칙입니다. 그 공헌보드의 1년간의 누적이 곧 평가입니다. 웬만한 규모의 조직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 일부터 꼴찌까지 정할 수 있습니다.
보상은 좀더 자세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결과에 따라서 보상도 차등할 수 있을 것입니다.
Peer Pressure를 이용한 조직운영은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출발점입니다. 민주적 조직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성과와 무관한 정치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칭찬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직원은 분발해야 합니다. 조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일해야 합니다. 상사에게만 만족을 주는 일로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은 상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Peer Pressure와 본인의 자기주도성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영자와 리더는 한 명 한 명 무엇을 하는지,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눈을 거둬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손을 들어 가리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저곳으로
가자” 나머지는 구성원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두 사람 앞에
하나의 엿가락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사람이 자르고, 나머지 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회사가 정하는 것은
가치, 방향 그리고 Peer Pressure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돌보는 일입니다. 나머지 일을 선택하고, 실행하고
그래서 누가 잘했고 못했고,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해서 보상을 더 받아야 할지는 직원들 스스로가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