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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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평범한 삶을 누구나 누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부모 사랑 받고 자라며, 때 되면 입학하고 졸업하고, 그리고 취직하고 결혼한 후, 적당한 때에 자식 낳고 일가를 이루는 이런 보통의 삶 말이다. 하지만 지천명을 목전에 두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이런 삶도 쉽지 않음을 알았다. 타고난 게으름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구제 불가한자를 제외하고, 재능과 소질에 맞게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사람도 어떤 경우는 불가피하게 정해진 삶의 여정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남동생은 결혼 후, 칠 년 넘도록 아이가 없었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친척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최후 수단으로 굴욕감을 느끼며 체외수정을 몇 차례 시도 끝에, 귀한 딸내미 하나를 얻었다. 그 녀석이 지금 아홀 살이 되었다. 동생이 사십 후반이니 어지간히 늦은 편이다. 훗날, 동생은 또래 부부들이 아이 손을 잡고 야외 나들이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누이한테는 ‘애물단지’가 하나 있다. 힘든 보험영업을 해가며 딸을 대학교육까지 시켜놓았건만 이 녀석이 일년 넘게 취직을 못해 집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은 벌어 쓴다고 하는데, 누이는 그것이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조카의 열정과 기질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졸업과 동시 취직은 이제는 누구나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이외에도 이혼, 정신적 또는 신체적 질병으로 평범함 삶에서 멀어진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한테 외식이나 가족여행 등은 먼 얘기다. 하루의 삶이 고달픈데 한가로이 여행이나 외식은 사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 저래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점점 힘겨워 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기를 원하는 부부의 간절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누군가는 가족이 함께 여행하거나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식사하는 것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정규직, 계약직 상관없이 취업을 갈망하는 실업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그 평범한 삶을 그리워하는 사람한테 그것은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 지도 모른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1894~1991)이 ‘평범함은 큰 죄악’ 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완벽 주의자인 그녀는 자기 밑의 무용단원을 최고의 ‘춤 꾼’으로 만들기 위해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그녀는 무용단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없이 내쳤다. 이런 그녀의 춤에 대한 열정과 지독한 연습으로 그녀는 현대 무용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현대 무용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그녀는 춤 이외의 삶에서도 평범함을 거부했다. 기질적으로 남들처럼 살 수 없었다. 독선, 이기심, 그리고 아집으로 어떠한 사안에도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혼 생활도 얼마 가지 못했다. 물론 자식도 없었다.
누구나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까?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창조성 조건의 하나로 성인이 되어서도 “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해 아이같이 끊임없는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새로운 작품 또는 이론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될 수 있지만 탐욕과 명예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평범은 큰 죄’라는 마사 그레이엄의 한마디는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인용된다. 한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열정적으로 프로답게 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더욱 많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해주는 힘이고 그 사람들이 있어야 창조적 인물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사 그레이엄은 100세 가까운 삶을 살았다. 말년에 이르러 삶의 뒤안길에 서서 문득문득 진하게 배어 나오는 외로움과 회한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레이엄이 원한 삶이니 후회는 없다고 하겠지만 어쩌면 그 말로 위안을 삼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그래도 똑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