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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8일 13시 41분 등록

2013년 7월 17일 저녁 인사동

오랜만에 찾은 안국역 커피전문점. 지금 시각 저녁 7시 59분.
비 내리는 저녁, 을지로에서 종로를 지나 인사동으로...... 겨우 자릴 잡았다.

이번 주말, 1박 짧은 여행을 간다. 정말 간만의 외출이다. 꽤 오랜 장마와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나의 변경연생활 - 연구원지원부터 예상치 못한 아픔과 치유의 시간,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원 생활까지 하면, 벌써 반년 이상이 지났으니...... - 로 인해 가족들의 몸과 마음은 장마철 이불처럼 눅눅하고도 끈적끈적해져 있었다. 더욱이 8월 초엔 이런 가족들을 내팽게치고(?!) 나홀로 여행을 떠나니, 그들에 대한 미안함에 안절부절 못하는 나였다. 조금 느닷없는 주말나들이는 이런 연유로 계획됐다.

바빠졌다. 주말 하루 몽땅 투자해야하는 시간을 평일 새벽과 저녁시간을 탈탈 털어서 매워야 하니 말이다. 근처 조용한 카페로 이동해 바로 작업을 한 뒤 귀가를 해야하는 계획으로 퇴근 전부터 마음이 급했다. 드디어 퇴근시간이 되고  회사를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운동삼아하는 빨리 걷기는 꽤나 효과가 있기에 카페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한 10분 걸었을까, 복병을 만났다.

비. 투투투투 내리는 비.

아침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는 비가 안올 것 같아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오후에도 괜찮았다. 그런데, 하필 퇴근길에 비라니...
우산도 없고 시간도 없는 나인데......  잠시 잠깐 건물속으로 들어가 내리는 비를 피했다. 얼마쯤 지났을라나......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조금 더 참아볼까....'

생각해보니 시간이 아깝다. 목표한 바를 마치려면 적어도 2시간 반은 필요할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걷자!'

다시 걷기 시작한 나, 인사동을 가로 질렀다. 폭우가 아니라 보슬보슬 내리는 비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발, 두 발, 걸음을 때고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보슬비가 내 볼을 간지럽힌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순식간에 나를 덥치지만, 꽤 부드럽고 사뿐하게 내 몸과 나의 얼굴에 안착한다. 계속해서 간지럽히는 빗방울들..... '간지럽네.....'

 

그러고 보니, 비를 맞은지 꽤나 오래됐다. 언젠가부터 철저한 준비성으로 언제나 우산을 챙기는 내가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힘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출근 전에 으례 스마트폰을 확인해보고 간다.  스마트폰에서 주는 정보에 따라 우산을 준비하면 열에 아홉은 맞아떨어지니.... 비 맞을 일이 없다.
스마트폰의 날씨 정보는 편리하다. 그녀석이 알려주는대로만 따라가면 옷젖을 일이 없다. 예전처럼 '비가 올까, 안올까, 우산을 가져갈까 놔둘까,' 이런 고민은 더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를 꼭 맞지 않아야 하나? 그깟 옷 조금 젖으면 어떻길래, 그토록 아등바등 , 아니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다녔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어린시절엔 tv 에서 나오는 일기예보가 전부였다. TV 에서 비가 온다고 하면 우산을 챙겨갔고 그렇지 않으면 안 챙겨갔다. 일기예보가 지금 처럼 정확했던 것도 아니니,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았다. 같은 방향의 친구라도 있으면 우산을 같이 쓰고 갔다. 그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인생 팍팍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철저하게 주어진 정보에 맞춰 사는 '나'의 인생, 자그마한 불편함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나에게서 인간미가 없어진 건 아닐까......

언제부턴가, 계획없이 일어나는 무언가를 불편해했다. 계획없던 비에 옷이 젖는게 싫었고, 계획없던 사건으로 감당해야하는 당혹스러움과 짜증이 싫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정해진 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안좋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무얼 그리 잘 하려고, 그렇게 계획대로 살려고 했는지......


오늘 만난 예상치 못한 비는 나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을 선물했다. 보슬보슬 내려 나를 간지럽히는, 순간의 시원함을 간직한 빗방울들은 그 안에 나의 추억도 간직하고 있었다. 빗방울을 속엔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면 홀로 걷는 사내아이가 있었고, 친구의 우산에 들어가 어깨를 부딪히며 비 한 방울이라도 덜 맞으려 아등바등하는 시커먼 아이가 있었다.

혹자의 말처럼,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너무 치밀하게(또는 쪼잔하게) 계획하며, 그 계획에 맞춰 살아온 것 아닌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그리 잘 살지도 못했으면서......


비가 올듯 말듯 알쏭달쏭한 날에는 우산을 놓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비가 오면 그저 그 비를 맞으면 되는거다. 비가 많이 오면 직장 동료나 옆에 있는 친구와 같이 쓰면 되는거다. 당신이 처녀 총각이라면 지나가는 총각 처녀가 우산을 건내며

너무 계획대로 살지 말자. 너무 치밀하게 살지 말자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것 아니니, 조금은 느슨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

비오는 날......
때론 우산이 없어도 괜찮다.


p.s

지금시각 20:26
이젠 다시금 책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 ㅡ_ㅡ^

IP *.46.1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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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8 16:45:15 *.41.190.73

열심히 하시네요. 9기 과제에 날팸 과제까지...에너지가 부럽습니다.

그렇죠? 가끔은 그냥 마음가는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천성대로 사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십시오. 제대로 인사도 못했지만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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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 16:18:15 *.6.134.118

선배님  뵐  몇 번의 기회를 안타깝게 놓쳤네요. 조만간 한번 뵙겠습니다. 응원감사합니다. 날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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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8 16:49:54 *.91.142.58

땟쑤야...

 

이 글 좋... 다.

네 글을 읽으면 내 일상에 나도 잠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들어 ^^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달까.

 

그래.

조금은 느슨해지고 조금은 여유로와지자.  

물론 난 넘 느슨하고 넘 여유로운게 문제지 ㅎㅎ

 

하지만 너무나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 중에 어떤 빈틈도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

네 모습을 보며 안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냥 우리 천천히 한걸음씩 가더라고 꾸준히

때로는 주변도 돌아보며 그렇게 함께 가자!

 

P.S. 강미영 선배 왈 대수는 2주 한번 칼럼 올려도 봐주기로 했다길래

내가 "아마 그래도 대수는 일주일에 한번씩 올릴 거라"고 했더니. 역시나... ㅎㅎ

멋지다~~땟쑤! 넌 우리 9기의 자랑이야.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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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 16:21:35 *.6.134.118

흠... 노노노노노

 

9기의 자랑은  '9기'이지요.

선생님의 부재 가운데에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우리 동기들을 볼때면 제 가슴이 뿌듯....

제가 어여 정신 차려야 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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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11:22:36 *.249.254.12

대수야!

네 인상처럼

편안하고 정감넘치는 글이구나!!

우리 팸인것이 자랑스럽구나. msn03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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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 16:19:07 *.6.134.118

댓글보는데 왜 이리 형님의 선한 인상이 떠오르는지요... ^^

저도 날팸이란게 자랑스러워요.

물론~ 날팸이기 이전에 우리는 변경!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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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19:13:11 *.244.220.253

 

매주 뒷산을 오르는데... 어제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산을 걸었다오~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맞을만 합니다~ msn03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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