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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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산책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한적한 시골길이나 숲길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삶의 대부분을 조용한 전원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산책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진 것은 10여 년쯤 된 것 같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시기에 저절로 발길이 산과 숲으로 향했다. 집 앞에 아담한 저수지가 있다. 그 저수지를 둘러싼 길은 흙으로 다져진 산책로다. 2km 남짓 된다. 길 가엔 벗 나무, 버드나무, 메타세콰이어 나무 등이 늘어서 있다. 논과 밭, 배나무 과수원, 그리고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벼가 벌써 허리까지 자랐다. 논두렁에 일정한 간격으로 콩이 심어져 있고 그 위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밭에는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파, 호박 등이 심어져 있다. 야산에는 소나무, 상수리 나무, 아카시아 나무 등이 울창하다.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오는 솔 향기가 은은하다. 5월이면 아카시아 향에 흠뻑 취한다.
계절 따라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향기가 다르다. 요즘 같은 아침에는 싱그럽고 달콤한 풀 향기가 난다. 저녁에는 나무의 깊은 향이 배어 나온다. 논과 밭의 비릿하고 습기 가득 머금은 흙 냄새도 좋다. 깎아 놓은 잔디에선 건초 향내가 난다. 나무와 풀은 썩어가는 냄새도 향기롭다. 살아있어도 역겨운 구린내를 풍기는 사람이 있으나 식물은 한결 같다. 이른 아침에 들리는 청아한 새소리는 단잠을 깨운다. 저녁이면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비 오는 날엔 개구리, 맹꽁이 녀석들이 요란하게 떠든다. 한 녀석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녀석들이 덩달아 따라 운다. 어떨 때는 서럽게 울고 어떨 때는 즐겁게 수다를 떤다. 요즘 저수지에 볼거리가 하나 생겼다. 청둥오리 가족들이다. 갓 태어난 새끼들이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 중 한 녀석이 뒤에 처진다. 무슨 호기심이 많은지 여기저기 한 눈을 판다. 저러다 엄마 잃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기우다. 엄마는 뒤처진 녀석도 잘도 챙긴다. 미물도 자식 위하는 마음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산책을 하면서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던 과거의 나와 방랑하는 현재의 나를 만난다. 때로는 시간을 수 천년 전, 수 백 년 전으로 되돌려 이 땅에 잠깐 머물다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거기엔 영웅 호걸들도 있고 내 조상들과 같이 이름없는 민초들도 있다. 분명, 내가 보는 저 하늘과 내가 밟고 있는 땅을, 그 들 또한 보고 밟으며, 어디론가 갈 길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들은 다 들 어디로 갔던 가. 우리가 사는 허공의 대기나 대지에 보이지 않는 형체로 존재하고 있을 듯 하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서쪽으로 지는 저녁노을을 보고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본다. 어느덧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정화된다. 입가엔 나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흐른다. 내 작은 행복이다.
생각해보니 행복을 너무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돈, 사랑, 우정 등. 언젠가는 떠나고 변하는 것들을 부여잡아야 모래처럼 빠져 나가고 말 것을 알면서도. 산책에서 보고 느끼는 나무와 풀, 새,바람 등 은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다. 산책이 주는 행복 말고 또 다른 행복을 주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살아오면서 전쟁이나 분쟁의 소용돌이에 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지구상에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전쟁과 분쟁이 없던 때는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전쟁보다 더 큰 죄악이 있을까?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몇 사람의 야욕과 오판으로 파괴와 살상이 일어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2500여 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침략과 정벌만이 최고의 선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달변에 권모술수에 능한 유세객들은 제후에 빌붙어 합종 연횡이라는 계책을 써서 제후의 환심을 샀다. 어제의 적이 오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이 되는 세상. 전쟁에 승리하고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유세가들이 내뱉는 한마디와 여기에 더해 병법가들의 전략과 전술 하나하나에 그 나라와 백성의 운명의 결정 되었다. 유세가의 혀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군주도 한심스럽다.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 힘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볼 뿐이다. 거기엔 죽음, 이별, 좌절, 고통, 굶주림, 강간, 폭력, 불행, 슬픔, 분노,절망 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몽골과의 항쟁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합병, 한국전쟁 등 전 국토와 백성은 유린과 능욕을 당했다. 2013년 7월 현재, 언제 깨질지 모르는 휴전협정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 평화의 시기에 살아가는 나는 행운아다. 내 삶을 어느 누구도 결정할 수 없고, 내 운명이 어느 누구의 손에 놀아나게 내버려 둘수 없다.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이 자유가 좋다.
또 한가지, 나는 모함과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된 적이 거의 없다. 말인 즉, 외모와 지능이 세간의이목을 받을 만큼 뛰어나지도 영민하지도 않다. 당연히 ‘끼’도 없이 평범하다. 평범한 사람은 질투와 모함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다. 외모가 출중하거나 재능이 뛰어나면 주변 인물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다. 출세하면 부와 명예가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사심 없이 성심을 다해 자신의 분야에 충실하고 자신의 속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안타까운 것은 성실하게 자신의 힘으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또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사악한 모리배들한테 억울하게 죽음을 맞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는 불운을 겪었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외모대로, 재능대로 그것을 발산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멋진 일이다. 거기에 맞게 부도 얻고 명예도 얻고 또 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교만함이 극에 달해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위에는 남을 시샘하여 근거도 없이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소인배들이 있다. 그런 소인배의 말에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 말을 믿는 귀가 얇은 한심한 조직의 장, 일국의 수장도 있다. 이래저래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지 여기저기서 냄새가 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다행스럽다. 이런 저런 구시렁구시렁 하는 얘기를 듣지 않아서 말이다. 이 또한 내 작은 행복이다.
'나무와 풀은 썩어가는 냄새도 향기롭다. 살아있어도 역겨운 구린내를 풍기는 사람이 있으나 식물은 한결 같다. '
=> 공감, 공감, 또 공감! ( 이 부분은 너무 좋아요~ ㅜ.ㅡ )
오프 수업 때, 형님의 글을 '딱딱하다, 딱 떨어진다'라고 말씀 드렸는데,
지금 읽어보니 일단 문장이 짧은 것 같고, 문장의 대부분이 '~다'로 끝나네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나 생각해 봅니다.
전, 글 쓸때 왠지모를 여운이 있는게 좋은데, 형님 글은 딱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여운이 아쉬웠 거든요.
주제는 확실하지만, 여운이 없는게 아쉽다.... (이 글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글이 여운이 있을 필요는 없지요 ^^:: )
그저 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