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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2일 11시 08분 등록

사회생활의 네비게이션

2013-07-22 (7 4주차)

  초등학교 2학년 때 무렵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학교로 들어서는 입구 쪽에 동물원(?)이라고 하기엔 조금 초라한 우리에 몇 가지 가축들을 기르고 있었다. 공작, 거위, 칠면조 등등그리고, 교장실과 교무실이 있던 본관과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공부하던 별관을 사이에 두고 정원이 하나 있었는데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는 꽃밭수준이었다. 그 정원 입구 쪽에는 작은 토끼우리가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와 토끼 우리 앞에서 토끼에게 클로버 잎을 주면서 그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른 두 명이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 두 명과 함께 토끼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중 선생님 쯤으로 보이는 한 어른이 두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나! 여기 토끼가 참 많이 있네?!”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토끼가 많이 있다고? ‘내 눈에 두 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 난 그 어른에게 , 여기 토끼 두 마리 밖에 없는데요?”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하고 말았다. 순간, 그 어른의 표정이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면서 나에게 두 마리면 많은 거야!”하고 면박을 주셨다. 순간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이내 주눅이 들어 친구와 함께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서 난 계속 친구에게 묻는다. “두 마리가 많은 거야?”라고….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또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 또 함축된 의미(Connotation)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말에 꼬투리를 잡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말이 다르고, ‘다르다고, 단어의 의미 뿐 아니라 어감에도 매우 민감하여 언어에 있어서 대강 대강은 내게 절대 통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대학에서의 전공도 남들에게 거의 인기가 없고 또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그야말로 “Boring”할 수 있는 언어학과를 택한 것 같다. 졸업식 때 같은 과 졸업생이 전체 졸업생 중의 6명 밖에 안 되는 걸 보면 일반적으로 그리 흔치 않은 전공임은 분명하다.

나의 말꼬리를 잡고 또 Context를 잘 이해 못하는 성향은 사회생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고, 주로 나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왔다. 담당 임원이 새로 부임하여 처음 갖는 티타임 자리에서 이러저러한 담소를 나누고 난 뒤 질문 없냐는 말에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이 후 주변 선배들에게 정신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 상사의 질문 없냐?”는 말은 , 잘할 수 있지?!”라는 뜻이고 상사가 원하는 반응은 정말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언어적 이해의 문제가 종국에는 관계의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성 관계에서도 나는 상대방이 네가 좋아. 나랑 사귀자라고 정색을 하고 직접 얘기하지 않는 이상 “식사나 차 한잔 하자는 말을 나에 대한 호감도를 나타내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회사생활에서는 정말 상사의 지시를 액면 그대로만 받아 들이고 해석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바람에 꾸지람을 듣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나 그 사람이 사용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상처를 받거나 오해하여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의심하거나 거리를 두기도 한다.

사기 열전을 읽으며 내내 떠올랐던 생각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마치 흑백 논리처럼 옳음아니면, “틀림으로만 사물을 또 사안을 판단하고 분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배경과 성향 또 경험을 갖고 살아온 정말이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 기준에서는 너무도 명확하고 확실한 것도 상대방 기준에서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도 있고, 내 기준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만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수용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넘어지는 연습을 하지 않고는 자전거를 배울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이제까지 세상과 부딪히며 겪었던 어려움과 외로움은 아마도 세상과 더욱 잘 소통하기 위한 과정이고 연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적 맥락을 읽지 못해 겪었던 어려움을 통해 얻은 교훈을 앞으로 나와 같이 Context에 대한 해독능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약자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마치, 유도의 낙법과 같이 넘어지더라도 좀 더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그들이 앞서 만나게 될 장애물과 주의사항에 대해 미리 예고하고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이 되고 싶다.  이곳은 사고 다발지역입니다. 안전 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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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13:04:39 *.50.65.2

진희가 한국적 상황인

둥그뭉그스레한 분위기를 부딪치면서 배우는 수밖에. ㅎㅎㅎ


세상은 자신이 가지는 프레임으로 해석을 하지.

각자의 프레임이 다르니 

같은 상황에 일어난 일도 모두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잖아.

그래서 가끔은 만나서 소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오늘 만나서 소통을 하는 시간이 있으니, 

그때 의견교환해보자. 

진희야.

"두마리가 많아?" 재밌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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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05:49:32 *.35.252.86

앞으로도

참... 많이 깨지고 성숙해야 겠다는 생각

우리의 '소통의 시간' 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언니,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 고마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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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19:20:56 *.244.220.253

본인의 경험이 묻어나있네요... '상황적 판단의 중요성!'

모두 이런 경험들 많을 듯~ 암튼 네비게이션 버전이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길 바랍니다. msn037.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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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05:57:12 *.35.252.86

방문해주셔서 반갑습니다~선배님!

 

네비게이션 빨리 제 때 제 때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데...

제가 원래 살~짝 기계치인데다가 귀차니스트라서 ㅋ

 

시야를 넓히려면 나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가능한 듯...

많이 만나고 많이 부딪치고 때로는 깨지기도 해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 한수 배우러 선릉으로 함 뜨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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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2 20:26:03 *.132.184.188

살다보면 분위기 파악이 안될때도 있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어요..

정말 이런 상황 너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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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05:59:22 *.35.252.86

언니~~~~!!

이렇게 자주 자주 들러줘서 넘넘 고마와요.

우리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꼭 뵈어요.

제가 몽골 여행 다녀와서 벙개치겠습니당!

 

* 근데, 주로 제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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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15:38:08 *.146.198.236

사회적 맥락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멋져요! 

그런 책을 써주세요

자신이 첫번째 수혜자이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듯이요

언어학을 전공하셨군요!

더운 여름 건강하시고요!

일하기 마쳐가니 체력 딸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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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16:55:27 *.91.142.58

ㅋㅋ 콩두 선배님!!

오프라인에서 잠깐씩 뵙고 짧게 대화나눈것 밖에 없지만

어쩐지 콩두님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같이 편안하구 가깝게 느껴져요 ㅋ

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아무래도 동갑내기라서 그런가봐요.

 

'사회적 맥락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  카피로 써먹어야겠군요 ㅋ

자~~알 되믄 작명료 드릴게염!

 

우리 언제 따로 나들이 함 가요~ 서울성곽둘레길 정도로...

늘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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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17:16:16 *.30.254.29

맞아요.

그런 상황 참 많아요.

저도 많았구요.

제가 괜히  '이태리 허당'이 아니랍니다. ㅎㅎㅎㅎㅎ

 

개그 콘서트 같은 곳에서

레알 사전...같은 코너가 있는 걸 보면

꽤 대중적인 주제가 될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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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06:04:55 *.35.252.86

선배님,

항상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이런 상황이 많으셨다구요?!

이제사 '이태리 허당'의 의미가 사~알짝 이해가 가네요 ㅋㅋ

 

전 선배님의 주옥같은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담은 자작곡 무~~지 좋아해요.

'학교', '시야, 너 참 아름답구나', '출항' 등 아이폰에 담에 놓구 종종 무한 반복해서 듣는답니다 ^^

 

작년 가을 꿈벗여행 때  제 얘기에 귀기울여주시고 또 따뜻한 조언주심에 감사드려요.

덕분에 이렇게 연구원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록 사부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성 선배님처럼 훌륭하신 선배들이 있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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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22:07:30 *.62.173.172
누나~ 이 글 보니 진짜 책 제일 잘 쓰실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서 선택하고 공부한 전공이라면 결국 그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나는 전공과 글이 딱 어울릴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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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06:08:58 *.35.252.86

진심이야? 괜히 위로해주는 거지?!

 

너야 말로 정말 이 시대에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사회에 경종을 울려줄 만한 그런 책 쓸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나와 같은  9기라는 것이 무~~지 기뻐 ^^*

상처받지 않을테니 가끔씩 쓴소리 해줘..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엔 쓰다는 거 알고있거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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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15:33:00 *.18.255.253

어떨 때는 도회지의 세련된 이미지를 받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듯한 느낌,

까칠한 돌직구를 날리는 가 싶더니  이내  마음이 여려지고 정이 많은 진희. ㅎㅎ 내가 본 진희의 모습이야.

 

조직에는 진희 같은 사람도 필요하기도 해. 너무 약싹 빠른 사람은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서 ㅎㅎ.

 

상황에 맞는 적확한 언어를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말을 할때와 침묵할 때를 구분하면 좋을 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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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19:00:13 *.152.83.4

두 마린 한 마리보다는 많지.

그런데 그 어른은 많~~~네.를 그딴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니까 어른이 문제네.

우리 구체적으로 소주 한잔 하자.

조만간...(이건 구체적이지 않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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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21:42:32 *.6.134.119

누나! 두마리는 절대적으로는 적은 숫자 맞지요?! 천만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제 극 ..... 이란 단위 까지 있으니....

하지만, 그 어른의 마음 속에 토끼란 개념이 아예 없었다거나... 살면서 한 번도 토끼를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당연 그 어른에게는 많은 숫자이겠지요. (문제는 그 어른의 표현 방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그렇데 퉁명스럽게 대답하다니... 못된 어른! ^^)

내가 맞는 것이 꼭 맞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상대방을 보는 것이 전부란 생각을, 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나와 달리,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나 다가감에 있어 전 언제나 조심스럽지요.

 

누나의 열정과 진심을  응원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의 과정, 9기들과 함께 잘 이겨낸다면, 그 안에서 누나를 찾는다면,

분명 누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괜찮은' 네비게이터가 될 수 있을꺼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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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9 14:29:12 *.58.97.124

언어학을 공부했고 또 한국문화와 미국 문화를 모두 경험한 지니.

그래서 언뜻 드는 생각이

지니 너에게 언어학에 관한 것

문화차이에 관한 것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문화는 언어를 통해서 형성되고

남녀관계, 사람들 관계도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거나 만들어지니까..

무언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올 것 같어.

 

언어학도 흥미롭고

두 문화까지 경험한 지니가 

지니의 맑고 투명한 세상 보기 필터로 써내는 글이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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