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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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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9일 06시 09분 등록

1.     역사 속의 3 장면

 

 

1)    드레퓌스 사건

 

1895 1 5일 매서운 추위 속에 프랑스 파리 한 사관학교 연병장에서는 프랑스 군 참모로 근무하고 있는 한 유대인 대위의 강등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드레퓌스, 나이 36! 독일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한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나중에 이 사건은 무죄로 밝혀졌다) 건장한 헌병들에 의해 끌려 나온 그의 모습은 잔뜩 겁먹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에게는 제복을 입는 마지막 날이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슬픔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었고 창백한 얇은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그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것은 군 내부에서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다라 장군 앞에 섰다. 장군은 말했다. “ 알프레드 드레퓌스, 귀관은 무기를 지닐 자격이 없다.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그대를 강등한다. “  명령은 신속하게 집행됐다. 처음 보는 후배 장교가 드레퓌스의 제복 과 군모에서 빛나는 대위 계급장을 우악스럽게 떼어내고 칼도 빼앗아 부러뜨렸다. 드레퓌스는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여러분, 저는 억울합니다. 죄 없는 사람이 강등당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 분노에 찬 군중들 사이에선 저런 반역자 유태인 놈 같으니, 돌로 쳐 죽여라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성을 다했던 군대에서 쫓겨나 그는 아무도 모르게 아프리카의 기아나 적도 부근 외딴섬으로 끌려갔다.

 

(프랑스 당대의 문호 에밀 졸라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건 발생 3년 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2)    1979 113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

 

늦가을의 흐린 날씨 때문인지 서울역 광장 앞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졌다. 교통은 통제되고 도로 양 옆에 늘어선 국민들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숙연한 분위기였다. 1주일 전이었다. 그 날도 아침 등교 길, 버스 안은 학생으로 만원이었다. 라디오에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학생들은 늘 그랬듯이 킥킥거리며 웃다가 욕을 하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런 어느 순간 갑자기 정규 방송이 중단되고 긴급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나운서가 비통한 음성으로 10 26일 어제 밤 대통령이 피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순 그렇게 시끄럽던 버스 안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버스가 학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의 영정을 태운 검정색 선도 차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서울역 광장 앞 도로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국화로 장식된 운구 차가 경찰 오토바이 호송을 받으며 따랐다. 순간 연도에 늘어선 많은 국민들이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콧수염을 한 시골 노인은 망연 자실 한 표정을 지었다. 흰 상복의 중년의 여인들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고 있었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꼬마는 할머니 손을 꼭 쥔 채 울고 있는 할머니를 쳐다보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눈도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운구 차 행렬은 어느새 동작동 국립묘지 방향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곧 시야에서 멀어졌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일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3)    죽음의 수용소   

 

수용소 수감자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첫째, 절망적인 현실을 잊거나 살아남기 위한 노력하는 부류였다.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하는 사람, 시를 낭송하는 사람,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썩어가는 시체 옆에서 잠시 밀린 잠을 자는 사람, 동태 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죽은 시체 앞에서 수프를 맛있게 먹는 사람, 감시자의 눈에 띄지 않고 동시에 매서운 바람을 덜 맞기 위해 대열의 중간에 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등.

 

둘째, 미래와 희망 없는 삶을 체념하는 부류가 있었다. 수감 전, 유명 작곡가였던 사람은 아침기상, 강제노동을 거부하고 쾌쾌한 냄새가 나는 막사에 틀어박혀 똥과 오줌에 절은 짚 더미 위에 누워 보냈다. 험상 궂은 간수의 경고와 협박도 아무 의미 없었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전직 은행 총재였던 사람은 과거의 화려한 삶과 명성을 그리워하다 목을 매 자살을 했다.

 

 

2.     가장 인상적인 장면과 그 이유

 

대학 1학년 때 심리학을 수강할 때, 당시 교수님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호기심에 서점에 가서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책은 내게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과 생사의 갈림길에 있거나 고통과 시련을 겪어도 그 자체의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감자들은 강제노동, 굶주림, 수면부족에 시달렸고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수감 전 직업, 명성, 이름 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인간의 존재는 무시 되고 사람의 목숨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오직 노동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감독관한테 잘 보이려 하고 아픈 것도 안 아픈 척 참고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모욕, 고통, 죽음에 무감각해져야 했다. 남자한테 본능적인 성적 욕구도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앞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꾸는 꿈은 빵과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적 욕구도 충족할 수 없어 꿈 속에서나마 간절히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부모의 무학과 가난에 따른 상대적 열등감, 자신감 부족, 우유부단한 성격, 그리고 삶의 목표가 없어 나를 둘러싼 상황과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시기였다. 프랭클의 수용소의 체험을 읽고 나의 열등감과 불평, 불만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야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부정적으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영원히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없고 상대적인 행복으로 생각한다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는데 외부에서 찾은 것이었다.

 

그 후, 시련과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프랭클이 경험한 수용소 장면을 떠 올린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루의 삶과 전투에서 살아 남아야 내일이 있는 것이 아 닐까. 동일한 운명이나 동일한 상황을 접해도 개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사랑하는 자식이나 배우자가 죽었을 때 그 충격으로 삶의 희망이 사라져 얼마 안 있어 바로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여 충격을 극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모든 시련이나 고통도 마찬가지다.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시련과 고통의 깊이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도 친구도 배우자가 대신 그 고통을 짊어 질 수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3.     미래 자신의 역사

 

몇 년 전에 <링컨의 우울증>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유전적으로 우울증 기질을 물려 받은 링컨이 특유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삶의 목표의식을 갖고 우울증을 극복해 위대함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면서 링컨의 인생에서 를 치유하는 지혜와 힘을 얻자는 내용의 책이었다.

 

생전의 아버지는 나이 70이 넘자 살아갈 낙이 없다고 하면서 식사량을 급격히 줄이더니 급기야는 술만 드시다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이었던 같다. 때때로 삶의 의욕 상실을 경험하곤 하는데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두렵다. 중년에 한번쯤 찾아오는 자연스런 현상이겠거니 하면서 그냥 무시해 버리지만 좀 신경이 쓰인다. 아마도 퇴직에 따른 나의 존재감 상실, 그리고 가족이나 사회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은연 중에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언젠가는 지금의 위치에서 물러나야 함을 피할 수 없건만 아직 마음 한구석에선 허탈함을 지울 수 없나 보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거론할 필요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거의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불굴의 용기로 위기를 극복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불의 사고나 운명으로 부모와 자식, 아내(또는 남편)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질 때의 기분은 어떤지 난 잘 모른다. 내 또래인 지인 중에 아내를 병으로 먼저 보내고 다섯 살 막내를 포함.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 자식을 줄줄이 돌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 생업 하랴, 집안 일 하랴, 어린 막내와 민감한 사춘기의 자식까지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동창의 친구는 40대 주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무엇 하나 부러울 거 없는 부유한 강남 주부로서 자식 다 대학 보내고 행복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고민을 하게 된다. 앞으로의   내 삶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사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앞으로의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한 바를 이루었을 때 그 것이 인생이 성공인지도 확신을 못하겠다. 나는 지금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 아니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남은 인생은 어떤 바램이나 목표에 집착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무엇을 이루겠다, 또는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 보다는 그리고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보다는 그것에 무관심하며 살고 싶다. 무관심하며 살아갈 때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까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학생처럼 영원한 현역처럼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며 질문하며 살아가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읽은 것을 하나하나 실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일을 체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주어지는 결과 또는 운명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고 싶은 것이 내 앞으로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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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9 16:13:14 *.94.41.89

형님, 오프수업이랑 다르데 또 글로 보니깐 좋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것은 긍정적인 성격인 거겠죠?

마지막에도 쓰셨지만 무엇보다 '실행'이 중요한 것 같어요.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어요. 이게 참 어렵습니다. 하악..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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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21:02:56 *.18.255.253

손발을 포함 몸으로 하는 것이 진짜 공부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꾸준히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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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9 18:53:11 *.7.21.2

아모르파티의 다른 버전을 읽는 듯 했습니다

빅터 프랭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저희 8기는 이 과제를 안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아름답고 분명한 전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매일 달리고 선택하는 분이니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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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21:09:14 *.18.255.253

너무 관심사가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한 발자국 도약이 필요한 시점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틀리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이 만족하면 그것이 정답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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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13:35:09 *.61.23.211
재용님 우리 같이 겨울을 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잘 다독이며 견디어 봅시다. 겨울엔 온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 틈에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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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21:13:04 *.18.255.253

이제 막 겨울이 시작인데 춥다고 하니 한 겨울 혹한에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  남의 온기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온기와 신념으로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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