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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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 3개를 선택하여 간단히 묘사하세요
오펜하이머)
지긋지긋한 나치, 파시즘, 그리고
전쟁, 2차 세계 대전은 이제 사망자가 5천에 이르고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미국이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폭탄을 개발하는 것. 맨허튼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계획에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장으로 있던 오펜하이머가 총 책임자가 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수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몇년의 연구 하였고, 1945년
마침내 폭탄을 개발한다. 핵실험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폭탄을 완성하고 나서 성취감과 함게 후회와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치는 항복을 선언했다. 할
수 없이 미국은 이 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시마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은 종료된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전쟁이 끝났지만 바로 소련과의 냉전체제가 시작된다. 소련 역시 이미 핵무기 개발이 완료된 시점. 이제 두 나라는 더
강한 무기가 필요했다. 미국은 원자폭탄보다 1000배 파괴력이
센 수소폭탄 개발에 들어간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국민적
영웅,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다. 이미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였다. 과학자로써의 그의 양심이 그를 막고 있는 것이다. 메카시의 반공이념이 광풍을 일던 1950년, 결국 오펜하이머는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게된다. 그는 모든 보직과
기밀자료의 접근 권한을 박탈당하는 치욕을 당하지만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소폭탄은 악마의 물건, 대량학살 무기일 뿐이였다.
닐 암스트롱)
이번에도 소련이 앞섰다. 최초의 유인우주선부터 최초의 우주인 유영까지,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특히 우주과학 분야에서 한발씩 소련에 뒤쳐진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바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이다. NASA와 백악관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 프로젝트명은 아폴로 프로젝트였다. 세금
낭비라는 비판 여론도 있지만, 인간을 달에 보낸다는 상징성은 미국의 큰 자부심이 될 것이다.
닐 암스트롱은 18호까지 계획되었던 아폴로 우주선의 11번째 우주선 선장이였다. 하나하나 미션이 완수되면서 점점 달 착륙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가 우주선을 타기로
한 날 마침내 달 표면에 착륙하는 미션을 부여 받은 것이였다. 달은 생각보다 황량하다. 별은 보이지 않고, 대지는 말라버린 사막같다. 온통 희색빛의 흙과 돌만 있을 뿐 어디에도 생명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착륙선이 달에 도착하고 그는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인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
스티브잡스)
2007년 캘리포니아 MWC.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IT제품을 발표한다. 그의 특유의 언변으로
제품 발표회는 락스타 콘서트를 방불케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익히 소문으로만 듣던 iPhone에 대한 소개 부분에서 사람들의 호응은 폭팔하였다. 몇주를
연습했다던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말그대로 완벽했고, 그리고 그가 내놓은
iPhone이라는 제품 역시 완벽했다.
잡스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만든
iPhone이라는 제품은 괴물 그 자체였다. 새로운
UI, 새로운 개념, 새로운 방법론. 모든 것이
기존의 것들과 달랐다.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이건 개선이 아니였다. Evolution. 혁명이였다. 이제
앞으로 핸드폰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피쳐폰은 사라질 것이며, 기존
스마트폰이라고 나왔던 수많은 제품들 역시 도태될 것이다. iPhone이 바꾸어갈 세상을 생각하니 스스로가
너무도 자랑스럽다.
2.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왜 그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는 그 이유를 해석하세요. 잡다하게
풀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동인 하나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해 주세요.
당시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영웅이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는
것과 미국의 기술을 세계에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의 인생은 순풍을 단것처럼 보였죠. 그는 대통령 핵자문 위원으로 정부일도 하였으며, 그 외에 연구활동, 강연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곧 정부로부터 수속폭탄
개발을 지시받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당시 그는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다’라는 말을 하여 대통령의 화를 돋구기도 하였는데, 그는
수소폭탄 개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알았기에, 원자폭탄보다 천배 강한 수소폭탄 개발에 난색을 표한 것입니다. 특히
극비로 구분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 영상은 그를 더욱 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그의 편이 아니였습니다. 소련은 빠른 속도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미국은 공산당의 침약에 대한 공포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은 공산당의 직접침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메카시라는 정치가가 나와서 모든 공산당을 몰아내야 한다며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였고, 그의 부인과 그의 친구들이 공산당원이라는 것 역시 그를 불리하게 하는 요인이였습니다. 노벨물리학자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그를 지지했지만 그는 결국 날개가 꺽이고 맙니다. 수소폭탄을 제조하면 안된다는 그의 목소리는 전쟁과 냉전의 광풍에 묻혀 버리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딜레마는 여기에 있습니다. 살인은 싫지만 살인무기는 만들어야
하는 상황. 당시 기술로 보았을 때 미국과 소련 혹은 다른 나라에서 언젠가 누군가는 결국 수소폭탄을
만들게 되어 있었습니다. 맨허튼 프로젝트에는 내노라하는 과학자
4500명이 모였으며, 소련은 몇만명의 정치범을 이용하여 핵무기 개발을 위한 도시를 만들었으며
인체실험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상황입니다. 한 국가가 무기 개발을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던 상황이였던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수소폭탄을 소련이 먼저 개발했을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으며, 소련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수소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맣은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인정합니다. ‘수소폭탄은 살상무기이지만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개발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제가 주목했던 점은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다른 오펜하이머의 행동이였습니다. 그는
왜 수소폭탄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소련의 첩자라는
누명까지 쓰면서까지 수소폭탄을 반대했던 이유.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답은 ‘신념’에 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오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어찌되었든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당당히 실행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카시 광풍과 핵전쟁의 위협속에서도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서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그의 모습은 ‘신념’ 그 자체입니다. 그와
그의 가족 주위로 감시자가 붙고 수많은 살해위협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꿋꿋이 자신의 생각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 점은 수소 폭탄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다른 과학자들과 다른 점이기도 했습니다.
신념은 사람을 크게 만듭니다.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가도 업적도 모두 반반으로 갈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전 그가 1950년대 수소 폭탄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를 높이 삽니다.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일이였을 것입니다.
3.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세요.
저는 ‘신념’이 없습니다. 옳다고 여기는 확고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리저리
휩쓸리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낍니다. A의 이야기도 B의 이야기도
전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관도 경제관도 그 밖의 모든 선택지에서 갈등을 합니다. 갈등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밑에 사람들이 불안해지니깐요. 마찬가지로 갈등하는 ‘나’는
‘나’를 이끌 수 없습니다.
항상 불안해 하니깐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나서도 ‘신념’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갈등이
되었던 것이죠. 또한 작가로써 성공한다는 것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영화감독을 포기했던 것 역시 비슷한… 아니 완전히 똑같은 이유였습니다. 밥벌이가 힘들기 때문이였고 성공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고난을 이겨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 스스로 되고 싶은 것에 명확한 ‘신념’이 없었기 때문이죠.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들에
그만 압도당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돌아 돌아서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신념’을 사용할 일은 없습니다. 무미건조하게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면 됩니다. 자동차의
부품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런 삶이 재밌지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글을 쓴다는 것. 공부를 하고 내 이야기를 남들과 나누는 것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자꾸 갈등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회사일도 작가가 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결론 짓지 못합니다.
오펜하이머가 소련과의 군비전쟁으로 화약고 같았던 1950년대에 수소
폭탄 개발을 하지 말자고 했던 것은 그의 ‘신념’이였습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았던 그는 비로서 확실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성공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던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나도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걸까? All-in,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 직업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 해보지만 용기없는, 아니
확고한 ‘신념’이 없는 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뚜렷한 ‘신념’을 갖지
못한채 저는 매일매일을 고민속에서 보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신념’을 갖는 것 이전에 몸을 움직이는 것. 일단 열심히 한번 해보는 것으로
말이죠. 구본형 선생님도 2년간의 글쓰기 훈련과 책읽는 훈련을
마치고, 첫 책의 반응이 좋은 후에야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책한번
써보지 않으셨던 분이 이런 결과를 냈다는 대목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제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의문이지만, 어쨋든 그의 행동 패텬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재능을
발견하고 노력의 성과물이 나오고 나서부터 ‘신념’을 갖게
되는 방법. 이것 역시 괜찮아 보입니다.
요즘, 작가가 된다는 것. 그냥
책을 한권 낸다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돈 못벌어도
좋아, 이정도 힘든일은 감수할 수 있어. 같은 마음가짐이
나올 수 있는 ‘신념’을 갖기를.. 성공을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강직한 마음을 갖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훗날 내 역사가 평범한 직장인으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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