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 조회 수 215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사무실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길입니다. 6번 국도를 따라 가다 눈에 뛴 찻집에 들어갔습니다. 마음속에 목적지가 있기는 했습니다. 가는 도중 길가에 있던 팻말에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문고리에 걸어둔 연락처만 바람에 달랑거립니다. 전화를 걸어 봅니다. 저는 왜 전화를 걸었을까요. 시동을 걸고 들어온 길을 다시 나가기 싫었을 겁니다. 건너편의 남자는 저음의 힘이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 잠시 기다리면 맛있는 차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기다릴 명분을 그 분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변을 서성거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움직이는 것이 귀챦았던 것 맞습니다.
낯선 곳에서 자동차 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를 잤을까요? 따뜻한 햇살에 눈을 뜨니 잠겨있던 찻집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주인장이 돌아왔다는 말이지요. 주위를 둘러 봅니다. 훤칠한 키에 체격이 좋은 남자 어른이 보입니다. 상투를 튼 머리에 하얀 수염을 하고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전화 속 남자를 상상하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나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젊은 남자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또래의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전화 받으신 분 맞으세요?" 저의 물음에 "전화 하신 분 맞지요?"하신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보건식품처방사’라는 공부를 되고 공부 중에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효소를 담았습니다. 효소는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주재료와 설탕 그리고 숨쉬는 항아리입니다. 숨쉬는 항아리가 관건입니다. 좋은 항아리를 구하기 위해 문경으로 갔습니다. 전통방식의 참숯가마에서 구워낸 것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암에 좋다는 겨우살이와 총명탕의 재료로도 쓰이고 치매에 좋은 석창포, 아토피와 관절에 좋다는 쇠비름을 담았지요. 효소가 제대로 숙성이 되기까지 삼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겨우살이는 잘 보관하다가 지난 여름 유난히 더웠던 탓인지 곰팡이가 나 버렸습니다. 석창포는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갑자기 단지가 비어버리는 사고가 났구요. 쇠비름은 관절이 좋지 않다는 친구생각이 나서 단지를 열어 한 병을 주었습니다.
효소를 담는 저를 보고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빠름이 미덕이고, 정보가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저의 일터입니다.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말하지요. 인풋과 아웃풋을 생각하는 논리 말입니다. 수익이 생기지 않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세계입니다. 넘치는 정보 속에 아주 가끔 제 눈길을 잡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그 사람의 마지막 감"
메일 제목입니다. 지나치기에는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왠지 끌림이 있습니다. 한번 돌아보게 만듭니다. 43세에 구례에 들어가 60세인 올해 세상을 뜬 농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영광에서 운수업을 하고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을 하던 이 였다고 합니다. 귀농은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이런 경우 여자들의 무기는 이혼이지요. 무기가 통하지 않으면 몇 해를 버티다 마지못해 따라가는 곳이 농촌이라는 현실입니다. 은행나무에 꽂혀 구례에 들어왔다가 감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초기 7-8년은 낙엽병으로 수확할 게 없었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탑푸르트’입니다. 탑푸르트는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사과, 배, 포도, 감귤, 복숭아, 단감을 크기, 당도, 색도, 안정성 등 최고품질 기준에 도달한 과실을 경작하는 농부를 뜻합니다. 한 마디로 감 농사 잘 짓는, 최상품의 감을 키우고 판매하는 농부에게만 부여하는 라이센스이지요. 그는 처음부터 농사에 탁월한 선수였을까요?
농부는 답답하면 뒷산에 올라 울곤 했다고 부인은 말합니다. 도시에서 귀농하여 정착하고 탑푸르트가 되기까지 그 사람의 땀과 눈물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게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 아니고는 누구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그 농부의 감이 수확기에 들었다고 합니다. 7000평의 농장에 농부의 마지막 감이 익어갑니다. 농부는 가고 감은 이제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역 공동체 일을 보는 분이 ‘그 사람의 마지막 감’을 팔기 위해 손발을 걷어 붙힌 모양입니다. 저는 김광주라는 농부를 모릅니다. 오늘 처음 접한 농부이지만 그 분이 살다간 삶에는 존경을 표합니다. 주인이 좋아하던 은행나무가 유난히 많은 감농장입니다. 아마 지금쯤 농부는 노란 은행잎과 붉은 감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매년 6월이면 매실효소를 담습니다. 올해부터는 감식초도 담아볼 생각입니다. 마트에 가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식초를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매실효소도 살수 있지요. 깨끗한 시설에서 과학적으로 만들어낸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좀 다른 듯 합니다. 이제 내 손으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만들어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요. 경제논리와는 거리가 먼 결정인 것을 알지만 내 손으로 재료를 닦고 항아리에 담아서 세월을 보낸 식초는 마트에서 사먹는 식초와는 다를 겁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처음 담아보는 식초를 ‘그 사람의 마지막 감’으로 말입니다. 30kg쯤이면 될까요? 실패한 겨우살이 항아리도 있고 사라진 석창포 항아리도 비었으니 말입니다. 초여름에는 매실, 늦가을에는 감식초를 담는 삶. 느림의 미학을 아는 삶이라는 작품으로 말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772 | #23. 내 삶의 혁신 [3] | 땟쑤나무 | 2013.11.11 | 1890 |
3771 | #26. 지금 새마을 운동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4] | 쭌영 | 2013.11.10 | 1987 |
3770 | 키드니 2 | 레몬 | 2013.11.09 | 2323 |
3769 | [2-21] 아리아드네의 DIY | 콩두 | 2013.11.07 | 2388 |
» | #13_느리게 산다는 것 | 서연 | 2013.11.05 | 2157 |
3767 | [No.7-1] 들려줄게, 너를 위한 최고의 밥상이야- 9기 서은경 [4] | 서은경 | 2013.11.04 | 2246 |
3766 | No27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 [1] | 오미경 | 2013.11.04 | 2125 |
3765 |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무엇이 나를 일어나게 하는가? [2] | 라비나비 | 2013.11.04 | 1900 |
3764 | 파주 헤이리에 다녀왔습니다 [3] | 유형선 | 2013.11.04 | 2206 |
3763 | #22. 표준인재 '안이다' [2] | 땟쑤나무 | 2013.11.04 | 1967 |
3762 | 일, 몰입, 그리고 놀이 [5] | 제이와이 | 2013.11.04 | 2382 |
3761 | #25. 몰입 [1] | 쭌영 | 2013.11.03 | 1917 |
3760 | Climbing - 남자가 눈물을 흘릴 때 [2] | 書元 | 2013.11.03 | 3215 |
3759 | 내 삶의 세가지 경험 (10월수업) [1] | 최재용 | 2013.10.30 | 2321 |
3758 | [10월오프수업]-중요한 경험 해석과 가치관 그리고 꿈꾸기 | 오미경 | 2013.10.29 | 2033 |
3757 | #12_오늘 나의 선택은 [1] | 서연 | 2013.10.29 | 2012 |
3756 | [10월 오프수업] 나를 만들어온 경험과 미래의 꿈 | 라비나비 | 2013.10.29 | 2313 |
3755 | 키드니 1 [3] | 레몬 | 2013.10.29 | 2361 |
3754 | [No.6-4] 나의 중요한 경험과 해석, 미래 꿈꾸기 - 9기 서은경 [1] | 서은경 | 2013.10.29 | 2591 |
3753 |
10월 수업 (9기 유형선) ![]() | 유형선 | 2013.10.28 | 2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