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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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에게
J, 나 이상한 세계에 갔다왔어. 지하철에서 나서니 앞에 건물 전체가 번쩍번쩍한 게 있고, 그 옆에는 중세의 어디에선가 가져온 듯한 건물이 있었어. 청담동.
연말에 벼룩시장 컨셉으로 작은 전시회가 있어서 갔는데, 만나기로 한 분은 어디에 갔다오신다며 주변 갤러리를 둘러보고 있으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가까운 갤러리에 가서 그림구경했어. 그림 구경하는 데 분위기가 묘하더라. 난 좀 그림을 천천히 보는 편이라 가방을 두고 보려고 하는데, 가방을 놔두는 것부터 눈치를 봐야했어. 그러다가 금새 괜찮아져서 그림 둘러보고, 2층에도 전시가 있는 것 같아 거기도 올라가서 봤지. 세상에 책에서나 인터넷에서 보던 사람의 작품이 걸려있지 뭐냐. 쭉 둘러보다가 3층에도 그림이 보이길래 계단을 오르다가..... 핀잔들었어. '사무공간이어서 들어오면 안돼요.'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러 오셨다가 시간이 나셔서 들어오셨다길래 들어와 보시라고 한 건데, 여기까지 오시면 어떡해요. 2층은 VIP만 보는 전시거든요."
그래서 다시 아래로 와서 팜플렛 하나 사가지고 나왔지. 다른 갤러리를 갈 수 없더라. 나 좀 고민 좀 했다. 내가 만나기로 한 분이 전시회에 사람 초대하는거니까 먹을 걸 좀 싸오면 좋겠다고 해서 오다가 딸기를 샀거든. 그런데, 그게 걸리더라. 딸기를 싸온 봉지가 껌정 비닐봉지. 이쪽 동네는 그걸 들고 들어갈 갤러리가 아닌 것 같아서, 잠시 동안 고민했어. 청담미술제 기간이라서 다른 갤러리들도 전시를 했거든. 딸기를 버리고 다른 갤러리로 그림 구경을 계속 다닐까, 아님 그냥 커피숍가서 글을 쓸까 하고 말이야. 아주 잠깐 동안 딸기를 산 것을 후회했어. 난 more than food 가 안 되네.
작은 전시회는 호응이 별로 없어서 흐지부지 되었는데,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고, 그보다 더 이상한 것 그 뒤에도 일어났어.
연말 벼룩시장 컨셉 작은 전시회를 주최하신 갤러리 대표님이 케이 옥션에 문닫기 전에 전시보러 가지고 하시데. 따라 나섰지. 전두환 전대통령 소장작품 전시회래. 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따라갔지. 입구에 전시회 제목이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갱매'라고 있더라구. 이 전시는 경매전에 하는 프리뷰였고. 난 '전재국'이란 이름을 여기서 처음 봤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순수 대표님이 '전두환'이라고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왔지 지나가다 봤다면 난 여길 들어와 볼 생각같은 건 안했을 거야.
처음에 1층을 가득 채운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아,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들이 유명한 작가구나'했다. 그런데 지하 1층으로가니 훨씬 더 넓었고, 작품 종류도 많았어. 어떤 작가꺼는 작품이 여러개 있더라. 그런데, 그걸 한데 모아 놓지 않고, 여기저기 흝어놨더라. 같이 가신 분들이 도록을 하나 집어 주시더라. 집에 가져와서 보니 나온 작품이 모두 280점이네. 갯수도 많고 종류도 많아서, 이게 우리나라에서 전시되고 판매되는 작가들을 다 모아 놓은 것이구나 했다. 매스 미디어에서 봤던 유명 작가의 작품은 거의 다 있더라. 앤디워홀, 피카소의 애칭, 물방울 ... 김창열, 딱보면 환한 게 김환기, 개념미술... 이우환, 설악산 들꽃 그림.... 김종학, 다이아몬드는 박은 해골.....데미안 허스트, 백남준의 습작같은 작은 그림, 김점선의 행복한 코끼리, 오윤의 판화작품, 김대중 대통령의 서예, 전광영, 박수근, 팝아티스트 권기수, 땡땡이 호박을 만드는 야요이 쿠사마, 배병휴의 안개낀 솔숲, ... 문인화도 많았고, 문화재를 두는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모란 병풍도 있었어. 19세기 말이면 문화재인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이 작품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가 콜렉터가 자기 취향으로 모은게 아니구나 했다. 이게 대체 뭘까?
평소 같으면 마음에 드는 그림 한 두점을 오래도록 보는 게 전시회장에서 하는 건데, 그렇게 하기엔 이 공간은 이상했어. 아니 여기 뿐만이 아니라 지하철 통로에서 나온 거기부터가 나에겐 모두 이상한 나라야. 전시회에 초대한 갤러리 순수 대표는 내게 흰토끼이고. 이상한 나라에서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버려. 이름? 의미? 관계? 가치? 그것들이 뒤죽박죽이니까. 토끼를 따라서 이상한 곳에 가버렸어. 다음번 여행은 어떨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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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한 이미지는 제가 그린 것이 아닙니다.
*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흰토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년 초판에 삽화로 삽입된 존 테니얼이 그린 흰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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