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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6. 공부가 나 자신을 바꾸었는가? 오미경
“사람들은 늘 자신의 성격에 대해 무지하다.
사람은 자기를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 칼융
년 말에 회사를 같이 운영하는 분과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다.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 앉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김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오선생이 주말동안 과제수행 하느라 회사에는 눈도 못 돌리고 아쉬운 점이 많았으나,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는 법, 한해 동안 오선생이 많이 성장했음이 느껴지네요.“
새해가 밝아 그 말을 되씹어 보았다. ‘만약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벌떡증이 가끔 일어난다.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나 자신을 가끔 잃어버린다.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끔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그도 잠시 접어두고 월요일에 과제 제출하고 뒤돌아서면, 다음 과제를 하기 위한 책의 서문이라도 읽어야 했다. 농부가 새벽부터 농사일을 해야 해서 우울증에 걸릴 시간이 없듯이, 나또한 연구원 과제하느라 늘 허덕이기에 잡념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청마(靑馬)띠가 시작되는 한해, 쉬는 며칠동안 내 삶을 파노라마처럼 필름을 되돌려본다. 순간 어느 지점에서 필름이 멈췄다. 지난 어느 시점에서 했던 말이 얼굴을 빠알갛게 만든다. 예를 들면, “세상사는 법을 잘 몰라서, 세상에 대해 너무 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좌충우돌하고 있어...”
얼마나 황당한 무지의 발언이었던가? 이런 종류의 말은 마치 ‘공부하는 법을 몰라 공부를 못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세상사는 법을 모르면 공부하고 관찰해서 사는 법을 배우고 적응을 해야지. 모른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들이 띄엄띄엄 떠올랐다.
‘왜 내가 세상사는 법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던가?’ 공부는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바로 사회에 안정된 직업에 안착을 못했다는 의미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온 청춘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쳤던 학교공부가 바로 직업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에 대한 나의 세상살이에 대한 무지였다.
그래서 늘 자전거 바퀴를 돌려야 했다. 바퀴 돌리기를 멈추는 순간 바로 땅바닥에 넘어져서 쓰러지는 운명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달콤한 시간이 바람처럼 휙~하니 3여년이 지난 이후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당시 잡은 것이 영어원서도 폼 나게 읽어보고 어느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영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공부가 지금까지 나를 살렸다.
영어로 된 원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다보면 몰랐던 지식들을 알게 된다. 역사 , 문화, 특히 세상은 다양하고 내가 모르는 재밌는 일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여자 비서를 고용했는데 30여년을 한결 같이 상냥하고 지친 기색없이 일을 했다. 그 여비서는 퇴임할 즈음 사장과 식사를 하는데 똑같이 생긴 여비서 두명이 나타났다. 여비서는 쌍둥이 였다. 즉 쌍둥이 자매가 하루 걸러 교대로 일을 했왔다.
부부에 관해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의 취향이 맞는 것이 없었다. TV보는데 남편은 스포츠를 아내는 멜로 드라마를, 음악을 듣는데 있어 남편은 락을, 아내는 클래식을, 잠을 자는데 있어서도 남편은 코를 골고, 남편의 코골이에 아내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남편은 매사가 시끌벅적이고 아내는 조용한 타입이었다. 두 사람은 합의점을 찾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집 한 채를 따로 얻었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은 이웃사촌인 부부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개가 주인을 위해서 시장을 보고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도 있었다. 북미에 사는 어떤 인디언 부족들이 나무를 쓰러뜨리는 이야기도 기억난다. 인디언이 나무 맨 꼭대기에 올라 끝통을 자르고 가운데 홈을 판다. 그리고 매일 올라가서 나무통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보면, 나무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스스로 쓰러지게 만든다.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내가 직접 그 지역을 방문하지 않고서도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열린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글들을 읽어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세상과 주위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땅위에 발을 딛고 살면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웃으면서 농담하는 주위 친구들이 가끔 말하는 안드로메다나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었다.
남들이 사는 것과 같이 똑같이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땅 위에서 살 길을 찾아보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면 되었다.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보통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개념을 자신만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보낸 나만의 우물에서 서른의 고민을 거쳐 마흔을 넘어 서고 있었다.
작년 성탄절 즈음에 시집의 조카가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웨딩드레스 입은 조카를 보면서, 나의 기억은 저 멀리 어느 시점에서 멈춰섰다. ‘어머나, 내가 엊그제 결혼한 거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던가’ 내가 결혼할 때 이러한 모습을 상상이나 했던가. 그렇다면 나의 20년 후는 어떠할 것인가 내일 일도 모르면서 20년 후를 상상한다면 우습겠지만, 만약에 살아있다면 나의 20년 후는 어떠할까?
사나흘 정도 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갔다. 무념무상이 아닌 오만망상에 사로잡혔는지.
공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는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할 것이다. 왜? 나 자신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알아가야 하니까. 죽을때까지 나를 알수만 있다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겠지. 어느 누군가 말했다. “공부는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고.
삶에 대한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깨달아가면서 나눌 것이다.
나의 궁극적인 삶은 나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며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시 자문해본다.
‘그렇다면 작년 한해 동안 했던 공부가 너를 얼마나 변화시켰느냐’
사람도 자연인지라 춘하추동과 더불어 생성과 소멸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사랑도 이런 생로병사 주기를 한단다. 남녀가 눈과 눈이 마주쳐 마음이 두근거리면서 봄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에 불이 확~~당겨지는 초록이 물씬 풍기는 여름을 맞는다. 그렇게 달아오르던 몸의 떨림도 어느새 시드는가 싶더니 이별을 하는 겨울의 순환을 거친단다. 모든 것은 순환이란다.
지난 한해 나의 삶은 어떠했던가. 12월 28일 오프수업을 끝으로 누군가 말했다. “올 한해 꽉 차게 열심히 살았던 해였다.” 어느 누구든지 열심히 산다. 하물며 백수도 바빠서 코피흘리고 과로사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열심히’란 의미가 각각에게 다르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사람은 어디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느나에 따라 변화한다.
나 혼자 공부한다고 변화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고전이나 경제 경영 신화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북리뷰 하고 컬럼을 썼다. 물론 그것도 나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책과의 만남보다도 더 큰 의미였던 만남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과의 만남이다”
물론 직업상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다. 하지만 만남이란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냥 업무상 만나는 것, 직업과 직업으로 만남, 버스나 지하철에서 잠깐 있다가 멀어지는 것 등, 그것은 만남이 아니라 스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쓰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 공부하는 것이 좋고, 책을 읽고 토의하는 가치관이 비슷한- 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지난해 변경연 연구원으로서 한 달에 한번 오프수업을 할 때마다 내 키가 한 뼘씩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비가 내리고 난 후 죽순이 쑤~욱 커지고 대나무 마디 마디가 생기는듯한 느낌이었다. 시절인연이 되지 못해 구본형 사부님과의 수업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귀한 시간들을 내어 함께 공부하고 멘토 역할을 해주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러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는 과거 어느때 보다도 밀도있게 배우면서 성장했음을.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 그 중의 하나는 자신을 변이시켜줄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나만의 우물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밖을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으면서 비로소 나의 참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누군가 말했다. “공부 안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없어. 자본이 우선인 사회는 자본이 최고야.”맞는 말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변화가 급속히 일어나는 혁명의 시대도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어떠한 지성도 접속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보편적으로 공평한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없이 자본이라는 탐욕을 향해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노동으로 해결되던 것이 모두 화폐로 교환되는 시대에 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밥만 먹고 세상을 살 수는 없잖은가. 또한 돈도 넉넉히 없으니 공부해야 이 시대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를 수련하는 것은 세상의 척도와 상관없이 내 몸에 새겨지게 하는 것. 현장을 장악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공부하지 않는 경영자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마력의 오라도 없다. 다른 사람의 눈이 중심이 아닌 내 척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올해도 삶의 밀도를 높여보자. 내 삶의 방관자가 아닌 주인으로 행세하자. 내 삶의 길 위에서 벗을 만나고 스승을 만나면서 배우는 낮은 자세로 살아가면서 내 삶의 향연을 펼쳐보자.
세상과 직접 부딪치면서 얻는 경험과 깨달음이 진정한 공부다 -니체
정말 의미있고 한구절 한구절 읽을 때 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멋진 칼럼입니다. 오로라님께서 쓰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봐야 하고, 하루하루를 그냥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면서 보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보았던 세계속에서만 살아가는데 이런 틀을 깨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참 멋진 일인 것을 알게해주었습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도 저는 2012년 11월 이전까지는 책을 거의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힘들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내가 버려야 할 것과 내 삶을 살기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한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오로라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누군가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처한 환경속에서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로지 책으로 하는 공부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정말 맞는것 같습니다. 어떤 직업을 고르고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초,중,고 대학교의 교육속에서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책은 내가 지금 당장 돈을 주고 서라도 갈 수 없는 곳에서의 경험을 제공하므로 보다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줍니다. 여기에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충실히 하고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쳐나간다면 이게 바로 삶을 살아가는 공부가 되며 이것이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좁은 길에서 길들여져서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그 틀을 깨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 칼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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