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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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람의 인육을 먹고 생존한 3명의 선원들의 이야기로, 몇년전 우리나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강의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야기이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미뇨넷 호는 희망봉에서 2000km 떨어진 곳에서 조난을 당한다. 다행히 승무원 4명은 구명보트로 탈출을 한다. 선장이였던 더들리, 1등 항해사 스티븐슨, 선원 브룩스, 그리고 잡일을 하던 17세 소년 리처드 파커가 그들이다. 구명보트에 탔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순무 통조림 2통뿐. 망망대해인 그 곳에는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다. 19일째 되는날 선장 더들리는 제비뽑기로 한명을 죽이자고 제안한다. 제비뽑기는 무산되었고, 이틑날 허기를 참을 수 없었던 더들리는 주머니칼로 파커를 죽인다. 파커를 죽인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파커가 바닷물을 마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나흘간 세 남자는 파커의 피와 살을 먹었고, 마침내 구조되었다"
이 사건은 실화로 실제 재판이 벌어졌으며, 인육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당시에도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였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센델은 '공리주의'를 설명하고, 하버드 학생들은 이에대해 찬반 토론을 벌인다. 센델은 끊임없이 묻는다. 한명을 죽여서 세명이 사는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결과가 어찌되었건 살인은 잘못된 것인가?
우선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살아남은 세명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 살아남은 자들의 처자식들에 대한 동정여론이 있었으며, 실제 사형판결이 있었지만 여왕의 파면권으로 6개월 징역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이 처했던 상황의 특수성과 결과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한마디로 '살인은 나쁘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다'라는 결론인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재판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 첫번째는 가장 힘없고 어렸던 파커가 희생자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 강압과 외압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억울할 뿐이다. 둘째는 살인자였던 더들리의 일기 내용이였다. 더들리는 구조되던 날, 다음과 같은 일기를 작성했다. '24일째, 우리가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드디어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아마 구조가 늦었다면 더들리는 다른 아침밥을 찾았으리라. 참으로 뻔뻔한 인간이다.
19세기에 일어났던 이 흥미로우면서도 끔찍한 사건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몇백년 전의 이 사건이 묘하게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그림. 익숙하지 않은가?
18세기 철학자였던 제레미 밴덤의 초장기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슬로건이였다. 결과가 다수의 행복으로 끝난다면 그건 ‘좋은일’이였던 것이다. 더들리 사건에서처럼 살인이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한명이 희생해서 세명이 살았다면 그건 좋은 일인 것이다. 실제로 밴덤은 거지들을 한곳에 격리하자고 주장하였는데, 그게 거지에게나 일반 시민에게나 좋은 일이라는 것이였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이런 비슷한 그림은 우리나라 파업을 대하는 시민들의 이중성에서도 가끔 보인다. 시민들은 파업이 다수의 행복에 반한다고 경멸한다.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의 형태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출의 큰 타격을 입고, 경제적 손실이 얼마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혹시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걸까? 그들의 임금과 시간을 희생시켜 다수의 행복과 국가의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평균 19년된 기관사 평균 임금이 6천만이 조금 넘는 것을 가지고 귀족노조라고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수를 탄압하고, 국가의 경쟁력이 다수의 행복이 되는 식의 공리주의에 대해 이제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곳에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그 모습이 강압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다면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다수의 행복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행복은 수치화할 수 없을 뿐더러, 수많은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비판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원성을 인정하고 도덕성과 정의에 입각한 행동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의 이익,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맞지만 그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에 갇혀서 남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자.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도 말자.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각 개인, 소수의 사람들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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