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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 05시 35분 등록
출발하는 토요일 아침에 좀더 일찍 일어났다. 마음 편지를 쓰다보니, 이번주가 내 차례가 아니었다. 다행히 나의 장례식에 대해 쓰려해서 자연스레 유언장의 토대로 마련할 수 있었다. 압구정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연구원 홈커밍데이여서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모든 분들 앞에서 유언장을 읽겠다는 생각을 하니 좀 쑥쓰럽기도 하고, 내가 못나보일까 걱정도 되었다. 새벽에 유언장을 쓸때는 죽고나서가 별로 걱정되지 않아서 밝게 작성했는데, 다른 동기들의 것을 물어보니 그렇게 써서는 안될 것 같아 조금 내용을 추가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멀미가 났다. 

며칠 전부터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숙연해졌다. 살날이 며칠 안남았는데 회사에서 무언가 해내보려고 애를 쓰는 자신에게 연민도 느꼈다. 그러던지 말던지 상황은 점점더 나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만약 정말 진짜 장례식이 다가온다면 회사를 사표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철없던 이십대 초반에 느꼈던 상처와 좌절이 기억났다. 그때 나는 지리산 단식원에 들어가 살면서 약 25일동안 단식을 했었다. 끼니와 미련과 욕심을 끊어내고나니 내 안에는 단 한가지의 욕망만 남았었다. 아주 멋진 글을 쓰리라. 어떤 실패가 찾아와도 절대로 생을 포기하지 않는 숯불 같은 집념으로 글을 써내려 가리라. 그것이  내가 단식을 하면서 만났던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변형시키겠다는 맹세로 나는 그 다음달에 뉴질랜드 여행을 가서 번지점프를 뛰어내렸다. 이것이 일종의 나의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과업들이 나를 가로막아 나는 꾸준히 글쓰기를 하지는 못했다. 다만 열심히 살았다. 

그러고 6년, 다시 나는 나의 장례식에 참여하러 가는 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아찔하게 높은 번지점프대 위에 섰다. 발 밑으로는 숨막힐 듯 멀게 보이는 시내가 흐른다. 이번에는 강릉 바닷가에서 뛰어내릴 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장례식에 가는 길은 즐겁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중간에 한 숲에 들렀는데, 아직도 2월처럼 두터운 눈에 덮여 있었다. 잘생긴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걸을 때마다 눈이 녹으면서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나는 겨울이 가시고 그 자리를 봄이 점령하는 순간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공기가 맑아 정신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함께 출발한 연구원들과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가 단체 점프 샷을 찍었다. 열명중 네명정도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다. 약간 아쉬웠다. 

한 시간 정도 걷고 오니 배가 고팠다. 우리는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예전에 아빠와 왔었던 부일식당이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반가웠다. 

강릉으로 가는 버스 내내 우리는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마이크를 에코로 바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시간은 금방갔다. 

도착해서 보니 숙소가 아주 훌륭했다. 옥계에 있는 여성 수련원이었는데, 방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화장실이 세면대를 중심으로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에는 월풀 욕조가 있었다. 도착하고 나자 장례식이 부담이 되었는지 손발이 차가웠다. 긴장한 모양이다. 방에서 잠깐 쉬다가 교육장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여기서 피울님과 에움길 님을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과자며 술을 정돈하고, 초와 향을 피웠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빛을 막고, 문도 모두 닫았다. 

첫 타자가 많이 울어야 사람들이 보다 진솔하게 장례식에 임한다고 하길래 선두를 자진했다. 태어날때부터 우는 건 자신 있었다. 유언장을 들고 촛불들이 종종이 켜진 장례식 자리에 앉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무척 이상했다. 벌써 반쯤은 저승에 속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니면 나는 검은 리본이 달린 영정 사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유언장을 읽어내려가는데 뭐하고 살았냐, 후회되잖아, 조금만 양해를 구하면 좋지 않았냐. 너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변사람들을 왜 설득하지 못했던 거냐 하고 나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유언장에 감정이 북받쳤다. 술술 읽히는 부분이 있고 눈물에 막혀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 아빠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잘 넘어가지 않았다. 

유언장을 다 읽고 나자 황금같은 나른함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향냄새가 점점 퍼져 방안을 가득 채웠다. 코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동기들이 차례로 나와 자신의 유언장을 읽었다. 구달님은 해학적인 맛이 있었고, 에움길님은 가는 만년필로 섬세하게 써내려간 듯 소박하고아름다웠고, 앨리스님의 유언장에서는 어머니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참치님의 글에서는 남편분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느꼈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났다. 종종님의 글에서는 속깊은 사랑이 우러났고, 녕이 님에게선 티격태격하던 사소한 일상까지 그리워지는 안타까움이, 찰나님에게서는 장녀같은 든든함과 바위속에 맺힌 빗물같은 이미지가  흘러들어왔다. 희동이 님은 선 굵은 한 남자의 일대기가 이렇게 펼쳐진다는 대하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피울님은 섬세하면서도 일침을 날리는 묘비명으로 가슴에 흘러들어왔다. 

이윽고 커튼이 걷히고 창문이 열렸다. 촛불이 꺼졌다. 그랬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부활을 축하하는 의미의 저녁식사를 먹으러 갔다. 배부르게 회와 매운탕을 먹고 바다로 나가 빨간 등대가 나오는 곳 까지 걸었다. 밤바닷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어어 멀리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 도착했을 때는 아침이면 좋겠다. 어느 아름다운 해변가로 밀려나가 따뜻하고 꽃이 좋은 동산에서 글을 짓고 노을을 보며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바다에 오면 실컷 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대신 바다가 울어주는 건지도 몰랐다.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떠있었다. 나는 같은 방을 쓴 세린 언니와 바닷가로 걸어나갔다. 햇빛에 바다는 반짝거렸고, 바람은 시원했다. 파도가 넘실거리면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와서 월풀 목조에 물을 받고 몸을 담궜다.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숙취에 머리가 무척 아팠다. 수련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교육장으로 돌아갔다. 몇가지 연구원 환영인사와 관련 사항 공지등을 전달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강릉의 한 두부 전골집을 들러 점심식사를하고 연구원 전통대로 허깅 작별인사를 했다. 종종님과 피울님은 택시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기진맥진했다. 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다음 날은 심하게 아팠다. 증상은 감기몸살 이었는데, 병을 키운 것은 '제발 하루 쉬고 싶다. 몇 달간 휴식없이 일했으니, 하루는 쉬어야겠다'는 내 지친 마음의 파업에 그래 고생했다는 공감이었다. 늦게까지 뜨뜻한 침대에 있다가 일어나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다. 조금 살만해졌는지 엄마가 교외로 나가자는 것을 그러마하고 수락했다. 봄꽃이 지천이었다. 산 구비구비 마다 벚꽃과 개나리, 푸릇한 이파리들이 가득했다. 구름처럼, 꽃폭포처럼 능선을 따라 쏟아지는 꽃파도들이 넘실댄다. 차창 밖으로 바라본 햇살은 뜨끈뜨끈하다. 아름다운 봄날이구나. 너무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여백이 별로 없었다. 사실은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병이 된 모양이다. 하루를 온전히 주어 쉬게 한다. 

화요일은 제대로 출근했다. 저번 주까지 하던 일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사에게 지적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커다란 일감이 몇 개씩 밀어닥쳤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일했다. 퇴근 지하철을 탔을 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있었다. 내일은 출근하자마자 대규모, 마라톤 회의가 있다.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자 몸이 상쾌했다. 기분은 괜찮았다. 회의에 들어갔다. 참석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불만을 말했다. 구석에 내몰려 퍽퍽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회의는 세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렇게 두시간을 얻어맞고 있었더니 내가 불쌍했던지, 회의를 시간안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건지 모두들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퇴근 전에 회의 결과로 의사결정을 받았다. 고생스러웠지만 뿌듯했다. 

목요일인 오늘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이 무척 많았다. 그래도 모두 작은 성공을 체험하게 해주는 일들이었다. 

조셈 캠벨의 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생애는 시작부터 끝까지 직선이 아니라 순환의 동그라미를 그린다고 한다. 죽음에서 다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뱀이 허물을 벗듯이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 장례식을 통해 또 한번 허물을 벗어버렸다. 더 이상은 같은 고민으로 울지 않는다. 다행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분명 괜찮을 것이다. 나의 다음 장례식은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에는 세 번 죽은 내공으로 또 좀더 나아진 내가 새로 태어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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