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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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길_구달칼럼#6 (2014.5.17)
삼국유사를 읽어가다가 딱 꽂히는 자리가 있었다. 월명사의 향가 <제 망매가>였다.
어느 이른 가잘 바람에
이에 저에 떠딜 닢다이
하단 갖에 나고 가는 곳 모다온뎌
아으, 미타찰에 가 맞보올 내
도 닦아 기드리고다
학창시절 외었던 마지막 구절이 아직도 입 속에 맴도는 것을 보면 그때도 무언가 사무치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필이 꽂힌 그 접점이 무엇이었을까? 너무 일찍 인생무상을 알아버린 조로한 청년이 참 오랫동안 허무의 바다를 헤쳐 왔나 보다. 학교를 졸업하고 선원이 되어 바다를 부유할 때 내게 가장 살갑게 다가온 것은 어둠과 침묵의 바다였다. 한창 피 끊는 나이인 20대 청춘을 바다 위에 띄울 때 나의 가장 친숙한 친구는 고독이었다. 나는 7년을 한결같이 고독했다. 동기들 중에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배를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이 시절을 통하여 내가 얻은 가장 귀한 보배는 오롯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른 것이었다. 홀로 있음으로써 수많은 책을 벗삼고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시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심취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장자의 <호접몽>에 이어 ‘헛되고 헛되도다’의 무상의 지존 솔로몬의 <전도서>까지 내게 강한 목표를 부여했다. 무상한 인생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진리를 찾는 것이 그 시절 나의 화두였다. 그런데 그 후 배를 내려서 결혼하고 바쁘게 사느라고 화두고 뭐고 잊어버리고 잘도 살았다.
그런데 문득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그 화두를 일깨워 준다.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인각사 일연 시비에서>
무상감은 내 무의식에 깊이 자리잡고 있어 기회만 닿으면 수시로 불쑥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올라 나를 점령해 버린다. 뒤돌아 보면 50년 세월이 꿈만 같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죽을 때가 되어 돌아 보면 내 인생이란 것도 일장춘몽의 범주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꿈과 생시의 차이는 과연 있는 것일까? 무상감에 젖을 때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고독한 세월을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아마도 이 마음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몸이야 때가 되면 구름이 일었다 사라지듯이 해체되어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겠지만 영혼은 물질이 아니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혼 또한 일어난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살아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나란 존재의 근원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나라에서는 마흔인가 쉰인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홀로 영적 순례의 길을 떠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중요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나란 존재도 하나의 영적 에너지가 아닐까? 우주의 근원에서 피어 오른 영적 에너지가 육체의 옷을 입고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나란 생각이다. 그 에너지가 피어 오르는 우주의 배꼽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품고 살다 보니 문득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자리가 혹 그 곳이 아닐까 궁금해 졌다.
가만 보면 사람의 삶이란 것도 생각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깨달음도 나왔고, ‘마음의 경영이 이 생의 목표다’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도 마음의 평화라고 한다. 이는 변화무쌍한 생각에 따라 출렁이는 마음 다스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면 생각을 일으키는 근본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수레의 축 같은 부동의 자리, 생각 이전의 마음자리 같은 것 말이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오히려 고요하고 평온하다. 이 중심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구도의 길일 것이다.
싯다르타가 6년 동안 고행하면서 처절한 금욕생활로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정각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러한 고행과 금욕생활을 내려놓고 온전한 쉼을 위하여 보리수 나무 아래 턱 앉는 순간에 천둥처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깨달음이 정각을 이루겠다는 고행이나 의지의 소산이 아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에 왔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정신세계의 빙산의 일각인 의식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무한한 우주 에너지의 보고에 접속하는 방식이 의식적 의지 너머의 힘을 사용해야 함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것을 난 ‘힘 빼기 전략’이라 부른다. 각종 스포츠에서 프로와 아마의 차이도 몸에 힘이 빠졌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판가름 나듯이 우리의 정신세계에도 힘이 들어가면 경직되기 마련이다. 동맥 경화된 마음으로는 소통이 안되니 저 너머의 세계에 접속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
내 인생 여정이 구도의 길임을 알았으니, 결국 내가 이승에서 행해야 할 수행의 방법은 마음에 힘 빼기로 귀착된다. 허무를 초극하는 방법도 이 길을 열심히 가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도 이제 알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구도의 한 방법이다. 마음에 힘을 빼고 간다면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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