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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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집으로 달려간다
세상살이가 좀더 드라마틱하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고 보다 안정적이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당연 예외도 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는 알지 못하기에 두렵고 이미 지나온 세계는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하니, 그리하여 늘 불행한 집에 사는 이들이 있다. 불행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취직과 이직과 결혼과 출산과 건강과 돈다발이라는 테두리로 몰아도 그런대로 맞는듯하다. 그래서 불운한 청춘들은 달려간다. 불행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 불행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달려간다. 점(占)집으로.
갑자기 선배 언니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던 곳이 신호등 없는 건널목이었는지 빨간 신호등일 때였는지 가물하다. 하지만, 뭔가 발걸음이 멈칫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가 독신주의도 아니고 결혼제도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으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해야겠다니? 하고 싶다가 아니라? 그 말이 연애는 그만하고란 말이 생략된 것도 아니기에 내 입을 튀어나간 말은 “왜요?”, 그녀의 대답은 “아이가 낳고 싶어서”
사회통념상 결혼적령기를 벗어난다는 데 대한 불안때문이라는 말보다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 말이다. 더 늦으면 안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출산이 생물학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한다. 대상자도 없는 결혼 결심을 축하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하던 그 순간 이어진 말이 걸작이다. 그러니까 어쩜 내가 발걸음을 멈칫 했던 때는 이 말이 나오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기가 여자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창작품이라고 생각해.”
저런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기억났는데 그것은 불운을 점치기 위해 찾아간 까페의 역술가였다. 사주풀이를 내세운 까페에서 일필휘지의 한문을 섞어 가며 이야기하는 역술가는 이런 해석을 했다. 사주에 자식운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는. 그렇다면 이것은 결혼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라고. 그러자 우리의 예리한 지적질이 이어졌다. 아이는 결혼유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일단락되는 중에 역술가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식운을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한곳이 생각났다. 변경연이다. 구본형 선생님은 연구원 선발 공고에서 연구원과정 졸업 조건을 한권의 책 출간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성연구원의 경우 아이를 낳는 경우 저술 기간을 1년 유예한다고 했다. 역시, 그녀의 말과 닮은 구석이 있다.
나의 불운찾기의 핵심은 아이였는가 작품이었는가 오래도록 생각해 본다. 그날의 사주까페를 찾아간 불운클럽의 회원들이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결혼운이 나의 질문이 되었을까. 확실히 그것이 나의 첫 질문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그 질문이 주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과 이직을 중점으로 물었던 것도 같고 사주를 펼치자마자 직장 중심으로 먼저 역술가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알 수 없는 미래지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기록한 나의 사주에는 ‘자식운’이 있다. 그 역술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렇다. 그리고 그는 아리송하게 자식운은 ‘자식’이 아니라 ‘작품’이란 말을 덧붙였다. 작품이란 의미는 뭘까. 우리의 너무나 직설적인 언급 때문에 나온 말이었을까. 그냥 사주풀이 해석에 달린 매뉴얼 중의 한 문장이었을까. 그때 나는 예술가를 바란다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이렇게 칼럼을 위해 매주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짜내면서, 그리고 지난 한주 열정과 기질을 읽으면서 창조라는 단어가, 창작이란 단어가 주위를 맴돌았다.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기억들이 메피스토펠레스가 내게 내미는 계약의 징후가 아닐까. 메피스토텔레스가 나와 파우스트적 거래를 하고 싶어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거래로 삼으려고 하는 것인가. 나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아 가겠다고 하는 것일까. 점점 클로즈업되는 글귀, 자식운.
소리를 몰고 오는 구름의 움직임. 점조직처럼 점점 몸집을 불린 구름은 더 거칠고 강한 폭우를 내릴 수 있는 구름덩어리들에게로 달려간다. 아니, 구름덩어리에 흡착되고 있는 건가. 비가 내린다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낮게 깔린 작은 구름에 시선이 간다. 제 발로 찾아간 것인지 휩쓸려 간 것인지 안쓰러움과 아찔함이 일게 되는 구름의 움직임.
…… 메피스토펠레스에게로 달려가는 파우스트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늘을 뒤덮은 검은색. 슈베르트가 일찍이 만들어놓은 마왕 영접용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어둠 속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한다. 싸인하는 것은 내 몫이다. 싸인하기 전까지 협상은 유효하다. 아폰론이 소원을 들어준다 할 때 생각없이 내뱉어 천년을 후회하는 시빌라가 되어서는 안된다. 벌벌 떨지 않으면, 주눅들지 않으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가만, 협의할 내용을 정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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