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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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감자
2014. 6. 29 / Rev 2
“이제 나의 낙타는 울부짖는 사자가 된 것이다. _ 존 브레드쇼”
며칠 전 감자 일곱 박스를 싣고 와서 지인들과 나눴다. 몇 년째 해오는 일이지만 피울네 감자는 언제나 인기가 좋다. 겨우 여남은 박스가 수확 될 뿐이어서 일단은 양이 적어 귀하고, 척박하게 자랐으니 그 맛이 건강하고 진하다. 어머니는 늘 손끝에서 인심이 난다고 말씀 하신다. 넉넉하게 담은 박스를 차에 싣는 내게 “야야~너무 많이 받지 마라.”
피울네 감자는 척박하게 자라지만 귀하게 자란다. 척박하다는 것은 땅과 태양과 하늘의 기운으로 경쟁자와 침략자, 그리고 혹독한 환경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잡초들이 기승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니 녀석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뿌리를 깊이 내려 양분을 빨아먹어야 한다. 그러니 이 놈들이 독해질 수밖에 없다. 귀하다는 것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기 때문이다. 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어머니의 손길은 더 바쁘다. 수시로 잡초도 뽑고 고랑도 다듬어야 한다. 때때로 무성한 줄기도 손봐줘야 할 것이다. 감자가 제 힘으로 자랄 수 있게 북돋아 주는 것이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은 정성이고 응원이다. 피울네 감자는 어머니의 정성과 응원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자란 감자는 이웃의 감자보다 수확이 늦고 씨알도 잘아 볼품이 없다. 물론 수확량도 훨씬 적다. 그러나 그 맛은 진하고 깊다. 식감과 탄력이 좋고 보존성도 탁월하다. ‘그래봐야 감자가 그렇지 얼마나 대단하겠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먹어보면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맛을 풍부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맛이 있다 없다 정도의 단순한 표현이거나 혀로 느낄 수 있는 달고, 시고, 짜고, 쓴 정도의 맛을 표현하는 것이 고작이다. 언어는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 맛에 대한 표현이 이처럼 단순하고 가난한 것은 현대인들의 식문화가 그만큼 단순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공음식과 함께 맛도 가공되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맛이 깊고 긴 여운을 가지며 다채로울 리 없다. 우리말 사전에 맛을 표현하는 어휘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맛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삶은 감자 한 알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런 이치를 어찌 다 알고 계신 것일까!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숨결과 손길이 닿는 것들은 모두 윤이 나고 다시 살아난다. 강아지도 그랬고, 닭도 그랬고, 텃밭에서 자라는 푸성귀도 그랬다. 할머니도 그랬고 네 명의 손주도 그렇고, 고향마을도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德이 관심과 정성이란 것을 알았다. 이토록 긴 세월을 품고 다듬고 가꿀 수 있는 기운을 어디서 얻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올해는 가물어서 감자 맛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수확량은 턱없이 줄었지만 그만큼 진하고 깊어진 것이니 자연은 언제나 공정하다.
우리 삶도 척박하고 궂은 날 만큼, 그 만큼 진하고 깊은 맛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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