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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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가 넘치는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대결을 종종 지켜볼 때가 있다. 반짝거리는 원석같은 후보들을 뽑아 토너먼트로 참가자들을 대결시킨다. 모두 최선을 다하지만 경쟁이 그렇듯, 결국 누군가는 짐을 싸서 집으로 간다. 더러 울기도 한다. 탈락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잠시 상상에 잠겨본다. 저 사람의 저 순간은 어떨까?
짐이 담긴 가방을 끌며 그는 한 때 꿈꾸었던 1위의 영광이 영영 멀어졌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방송에서 약속했던 모든 특전은 사라지고, 보잘 것 없는 원래의 그만 남는다. 그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실제로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개인은 자신이 그저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미션도 없고, 얼굴을 비춰주는 카메라도 없다. 주변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가슴 한 켠이 가을처럼 차다. 쓸쓸하다. 익숙했던 외로움이 낯설다. 춤꾼이든, 가수 지망생이든 예비 모델이든 요리사든 마찬가지이다. 가끔 결과에 동의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도대체 누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가장 준비된 자? 운이 제일 좋은 자? 잘 생긴 자? 남자? 혹은 여자? 거기에 법칙은 없다. 그러나 거기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댄싱 9이라는 것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댄서들을 모아 팀을 구성해 환상적인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블루팀, 레드팀으로 나뉘어 서로 대결을 하는데 지는 팀은 기존에 뽑아놓은 댄서들 중에 한 명씩 탈락시킨다. 그런데 어쩐지 여기 나오는 참가자들은 다른 오디션 프로들과 다르다. 슈스케에는 기타를 매고 참가했더라도, 슈스케에서 고배를 마시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말하자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니까, 나도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춤은 진입장벽이 높다. 누군가 춤을 잘 추고 싶다고 전문적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진로의 기로에서 ‘춤과 관련된 전공’정도는 선택할 정도로 인생을 건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댄싱 9에서 결과가 어떻든, 그 다음 날이면 연습실로 갈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철학자가 된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제대로 된 방향을 탐색할 수 있다. 노자는 실패하고 절망했을 때 보이는 길잡이 별이다. 애쓰지 마라. 너는 너의 길을 가게 되리니.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너였던 거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너는 네가 생긴 대로 살게 될 것이다. 한번의 승패가 무슨 상관인가. 같이 시작한 사람이 먼저 결과물을 내는 것이 질투할 일인가. 다만 스스로 성실하게 한결 같아라.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를 찾음이고, 고요를 찾음은 제 명을 사는 것이다. 제명을 사는 것은 언제나 한결같음이다. 한결 같음을 아는 것을 통찰이라고 한다.” (도덕경, 16장)
나는 학창시절 조급한 학생이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쓸데 없이 흘려 보내는 시간들이 모여 결국 아무 일에도 써먹을 수 없는 한심한 인간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지금까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큼직큼직한 사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그것은 봄볕을 쬐며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았던 벚꽃이나, 수업을 땡땡이 치고 마셨던 낮술 한 잔이거나, 취미가 같은 친구와 밤새 나눴던 소소한 이야기 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그러니 나는 나의 박자에 맞춰 온몸에 힘을 빼고 춤을 추겠다. 우주적 에너지가 나를 리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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