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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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은 계획된 비즈니스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해외 출장 여정과 장소에 따라 여행과는 달라지는 업무와 여행의 사이를 오가는 긴장감 있는 줄다리기이다. 여행을 하고픈 설레는 마음과 업무를 해야 하는 긴장감과 때로는 목표를 갖고 떠난 중압감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출장 중에는 행선지가 명확하게 보고되어야 하고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 또한, 음식도 현지식을 즐길 수는 있으나 가급적이면 잘 알려진 음식 위주로 먹기를 권한다. 현지식을 잘못 먹어서 탈이 날 경우 출장 중 업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출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 회사원들은 현지식보다는 현지에 있는 한국식당 이용을 선호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중국식이나 서양음식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 업무상으로 해외 출장을 오면 즐긴다는 개념은 없고 단지 업무를 잘 완료하고 무사히 회사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해외 출장의 기회가 많은 부서도 있고 거의 없는 부서도 있다. 나의 경우는 매년 몇 회의 해외 출장 기회가 있다. 고정된 일은 아니나 사업 전개에 따라 영업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같이 출장을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므로 고객과 기술협의를 할 때는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 중의 업무도 고객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하거나,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소개하거나, 구매하는 제품의 사양을 협의하여 결정하는 등의 업무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출장 업무는 늘 긴장감을 갖게 하고 협상이 잘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복귀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사업에 대한 부담을 갖고 돌아오게 된다.
해외 출장이 우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금번 미얀마 양곤 출장이 그러하다. 출장 사유야 어찌 되었던 미얀마에 오게 되었다. 우리에게 아웅산 폭파 사건 이래로 버어마로 알려졌던 미얀마라는 국가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개인적으로 여행을 올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많기 때문에 여행지로 굳이 미얀마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출장이 아니었다면 미얀마를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장 중 이틀 간의 미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저녁을 먹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늘 출장을 오면 짧은 일정으로 인해 여행 기분을 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닌 나로서는 마지막 기회인 샘이다. 그래서 인지 저녁 먹을 장소를 약간 먼 곳으로 정하고 걸어가기로 하였다. 그 길은 호텔에서 추천해준 아침 조깅코스였기에 약간의 기대를 갖고 일행과 같이 걸어갔던 것이다. 어쩌면 출장 중 업무를 마무리한 후 약간의 현지 체험을 겸한 것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생태공원을 끼고 있어 귀뚜라미와 비슷하지만 좀 다른 소리를 내는 엄청난 수의 벌레들 울음 소리가 들렸고 거리에는 사람도 없고 주택도 없는 길이었다. 바닥에는 웅덩이가 간간이 있었고 식당까지는 멀어 보였다. 다른 나라의 낯선 도시의 길을 걷다 보면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곤 한다. 알지 못하는 길이기에 어떠한 믿음의 근거도 없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곳 양곤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 있고 사람들이 순하다고 들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더운 날씨에 길을 재촉했다.
식당에 다다르기 전, 우연히 멀리 황금빛 탑을 보게 되었다. 이 곳이 불교 국가라 불탑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밤에 보는 황금빛 찬란한 불탑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와 저곳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우선 일행들과 호숫가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걷다가 나는 불탑이 생각이 나서 일행을 설득했다. 왠지 이 곳 양곤에 왔는데 저곳을 안보고 가면 안될 것 같다고 말이다. 8시가 넘은 시간이라 약간 망설이는 듯하였다. 이미 문을 닫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6시쯤 문을 닫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제안으로 택시를 타고 곧 그 불탑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곳에서는 불탑이 보이지 않았다. 입장료를 받는 곳과 엘리베이터가 있을 뿐이었다. 아직 사람들은 드나들고 있었다.
8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는데 우리 일행을 불러 세우며 신발과 양말을 벋으라고 한다. 이런 관광지는 처음이다. 우리는 맨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불탑이 있는 곳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구멍이 난 격자 무늬의 깔개가 있는데 밟을 때마다 발바닥을 자극했다. 작은 터널 같은 길을 지나 불탑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해 모두 서서 탑을 바라보고만 있게 되었다. 미얀마라는 후진국에 와서 사업해보겠다고 좀 잘사는 나라 사람 티를 내며 오갔는데 이 불탑이 주는 경외감이란 일순간 나를 아주 작게 만들어 버렸다.
그 불탑은 쉐다곤 파고다라는 곳이었다. 그 불탑은 기원전 600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불탑으로 꼭대기에는 76캐럿짜리를 포함해서 총 435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아래로는 금박으로 입힌 100m크기의 거대한 불탑이었다. 그 불탑 주위에는 크고 작은 수 백 개의 불상이 있는데 그 곳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생의 집착을 버릴 수 있을 듯한 신비로운 곳이었다.
아 이곳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멀리 보이던 탑만을 쫓아 이곳에 왔지만 이 곳은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탑 주위의 많은 건물들 안에 앉거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앉아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였다. 불상에 물을 뿌리는 이, 향을 피우는 이, 촛불을 밝히고 어떤 이는 금박을 사서 부처에 직접 붙이기도 하였다. 어린이, 청소년, 중장년, 노년 할 것 없이 이 곳 양곤에 사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들어와서 기도하고 돌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이 너무나 편안히 앉아 있기에 누가 불승인지 누가 일반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불경을 읊으며 늦은 밤 시간에 불심을 불러내고 있었다.
둘레가 426m인 불탑을 두 바퀴 돌고 마음에 드는 불상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다시 걷다가 불탑 앞에 털썩 앉아 무심히 시선을 사람들에게 향하고 보니 마치 부처가 된 듯도 하고 불승이 된 듯도 한 것이 참으로 신비한 마음을 안겨 주었다. 나올 때는 바닥깔개에 난 구멍으로 인해 발바닥이 아팠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니 걸을 때마다 걷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듯이 말이다.
출장은 참으로 짧게 느껴지고 늘 아쉬움을 남긴다. 이유는 출장 간 나라에 대해 제대로 느낄 시간이 없이 잡혀진 일정에 맞춰 업무를 하고 바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출장도 약간의 여유를 주어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이 번 양곤 출장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호텔에 머물다 돌아올 수도 있었던 일정이었지만, 3Km를 걸어서 식당을 찾아가 저녁을 먹고 멀리 보이던 불탑을 찾아가 뜻하지 않은 미얀마의 보물을 발견하였다. 약간의 일탈과 여유가 만들어준 좋은 시간이었다.
출장이라고 업무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현지인도 만나보고 현지 문화도 체험하라고 한다. 하지만 애써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없으면 이도 만만치 않다. 또한, 비행일정과 업무로 인해 긴장한 상태에서 여유를 부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낯설고 불편한 곳에 가면 더더욱 마음 먹기가 어렵다. 하지만,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보면 어딜 가나 그 장소만이 주는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보물을 가져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향후 현지와 관계된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도 차이점을 보여 준다. 그 보물을 알아보고 간직한 사람은 더 진심으로 그 사업을 대하고 그 사업에 정성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해외 출장은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업무의 연장일 뿐이다.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먼나라에 가야하고 시차적응도 못한 채 업무를 하고 보고서를 쓰거나 미팅 준비에 밤을 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긴장이 극에 달하고 출장이 끝날 즈음 녹초가 되어 겨우 맥주 한잔 마시며 숨돌리기 바쁘다. 처음 해외 출장을 갈 때의 그 설렘을 다시 생각해보자. 시간을 조금이라도 내어서 현지 사정을 알아보고 거리를 걸어보자. 지금 출장 중이라면 호텔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보자. 그럼 생각지도 못한 여행의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건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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