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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일 08시 40분 등록

 

 

개똥아 산아,

 

문경사과축제가 끝났다. 3주간 부스 23번에서 장사를 하던 외할머니도 철수했다. 11월 첫날부터 부사를 따들인단다.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사과가 얼어버리거든. 오늘 엄마와 아빠는 물론 외삼촌네 식구들도 고향집으로 내려갈거란다. 짬짬이 여러 가지 가을 걷이를 하셨다. 몸살이 날 지경이라는데 쉬지를 못하신다. 나는 가을걷이에 뭐뭐가 있는 지 잘 모른다. 농사를 제외시켜주셨거든. 자식들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길 원하셨지. 나도 지난 주에 한 번 장사하러 갔다 왔어. 근데 나는 장사에 영 소질이 없었어. 깍으려 들면 화가 나더라. 농산물 가격을 후려친다 싶으면 주먹쓰는 기둥서방처럼 어깨를 부풀려 어슬렁거렸어. 안동숙모는 3주 주말 내내 갔단다. 숙모는 훌륭한 판매자야. 이번 주에는 나는 내려 가지 않았어. 가족세우기 웍샆에 갔단다. 오늘 편지에선 가족세우기 웍샆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웍샆에 갈 때 주제, 이슈를 맘 속으로 정했단다. 떨려서 말 못할까봐 질문을 시물레이션했지. “저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올 한 해 동안 인공수정 1, 시험관 3번을 해서 모두 실패했어요. 반복착상 실패에 대한 생물학적 원인은 병원에서 검사를 해서 규명했어요. 혹시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면 알아서 대처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명의 도구로 쓰이는데 힘이 부족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여성적인 힘, 자궁의 힘을 증장시킬 수 있는 가에 관심이 있어요.”

 

이번 웍샾은 트레이닝 참가자들만의 것이었어. 엄마도 1년 반 과정의 트레이닝을 받고 있단다. 가족세우기 치유사가 되려고 하냐고? 글쎄다. 현재는 내 숙제를 다루는데 훌륭한 도구라 생각이 되어 따라가고 있단다. 복직을 하게 되면 특수학교로 돌아가게 되겠지. 자신의 스토리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장애학생들과, 남다른 고통을 가진 가족을 이해하는데 이걸 사용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네. 일단 나는 우리 개똥이와 산이가 오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치우고 싶어. 마흔 넘어 꾸린 우리집을 안온하게 가꾸고 싶다. 정말로 내 가족을 굳건히 세우길 원해.  

 

다행스럽게도 내 세션을 다루었어. 이번 웍샾의 주제는 부부관계였어. 간절히 손을 들어서 이틀 연속 어택했지. 채택되었을 때 감사합니다인사를 하면서 내담자의 자리로 가 앉았단다. 나는 아빠와 나의 남녀관계를 다루고 싶었어. 남편과 나의 대리인이 선택되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관에 따라 그들의 손을 잡고 한 사람씩 세웠단다. 남편은 장의 중심에서 아내의 뒷 모습을 보고 있고, 아내는 남편을 등진 채 가장자리를 향해 하늘을 보는 눈으로 걸어가고 있었어.  

 

대리인 인터뷰를 했어. 감정과 몸의 느낌을 물었지. 아내는 남편의 존재는 느껴지지만 더 큰 관심은 장 밖에 있다고 했어. 호흡이 잘 안되고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에 통증이 있다고 했어. 남편은 관심이 오로지 아내에게 가 있고, 아내가 사랑스럽고 걱정되고, 자기를 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거야. 아내는 뒷걸음질을 쳐서 남편 쪽으로 몇 걸음 왔어. 뒤로 넘어지려 했어. 남편이 뒤를 받쳐주었어. 그래도 서 있기가 힘이 든 아내는 아내는 땅에 엎드렸어. 편하지 않은 자세였어. 한 손은 마비된 듯 뒤로 하고 한 손은 앞으로 뻗었어. 왜 밖을 보던 아내가 뒷걸음질을 쳤을까? 뒤에 서 있는 남편의 사랑을 느끼고 생명과 행복의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어. 가족세우기에서 먼 허공을 바라보는 눈, 또는 장 밖으로 가는 걸음은 죽음또는 죽음의 영역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간다고 읽어.

 

진행자는 아내 주위에는 수 많은 죽음이 있다고 했어. 직관적으로 그 사람들을 눕혔어. 아내의 아버지의 대리인을 포함해 4명이었어. 그들은 누워 있는 자세가 펀하지 않았어. 어떤 이들은 몸이 뒤틀리고 있었고 호흡을 힘들어했어. 독일사람인 진행자가 말했어. “저 이들은 독일의 경험에서 보면 유태인 학살 피해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편안한 죽음이 아니었고 어딘가에 모여진 채 집단적으로 죽은 것 같다.” 나는 그게 무언지 알고 있었어. 한국전쟁의 보도연맹사건일거야. 너희 둘에게 이야기 했다시피 엄마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너희에겐 외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돌아가셨거든.

 

5명이 들어와 눕자 나의 대리인은 앉은 채 몸을 앞뒤로 흔들었어. 슬픔에 가득 찬 모습이었어. 진행자는 그녀가 곡을 하고 있다고 했어.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연루된 많은 이들을 위해 곡을 한다고 했어. 진행자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아내의 아버지 옆에 눕게 했어. 그러자 장에 변화가 일어났어. 아까까지 서서 아내를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땅에 누워버린 거였어. 그는 아내가 죽음 쪽으로 가는 걸 원치 않았어. 아내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든 죽음 쪽으로 가면 남편조차 죽음의 영향 아래 들어간다는 말이었어. 남편은 사랑의 이름으로 아내를 따르고 있었어. 남편더러 아내의 이름을 부르게 했어. 자신을 부르는 남편의 소리를 듣자 손을 아내는 꼼지락거렸어. 아내도 남편 쪽으로 움직이고 싶어하는 거야. 아내 대리인에게 느낌을 물었어.

누우니까 몸은 좀 편한데 여기가 내 자리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손이 계속 꼼지락거려져요. 그런데 일어날 힘은 없어요.”

아내는 남편에게 가고 싶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훨씬 크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건 할아버지가 비극적 죽음을 겪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여 죽음쪽으로 향하고 그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딸이 따른다는 거지. 여기까지가 첫번째 장이었다. 아내와 남편의 남녀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건 두 사람의 이전 남녀관계가 아니라 아내가 원가족의 상처에 얽매여있어서 그들의 남녀관계에 에너지를 거의 쓰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었어.   

 

두번째 장에서는 아까 누워있던 분들 다섯 명이 모두 세워졌어. 대리인이 아니라 내가 남편 대리인과 함께 그분들 앞에 세워졌어. 아버지 대리인이 제일 왼쪽에 세워졌어. 나는 오른쪽의 여자분 앞에 정면으로 섰어. 대신에 남편이 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어. 맨 처음에는 남편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어디가 내가 편한지 내 자리를 찾았어. 남편의 오른쪽에 설 때는 익숙하긴 했지만 왼쪽에 설 때가 훨씬 안정감이 있었어. 그건 내가 그의 아내 자리에 있을 때 더 힘을 받는다는 거였어. 그는 나를 현재와 생명 쪽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앵커였어. 남편은 그 일에 관련이 없고 오로지 아내의 과제인데 아내에게 힘을 주기 위해 옆에 서 있을 뿐이라 했어.

 

남편의 손을 꽉 쥐고 느끼면서 나는 돌아가신 분들 앞에 섰어. 진행자가 말했어.  

이 분과 이 분의 고통을 모두 보면서 두 사람이 허리를 굽혀 절을 드립니다. 절을 하면서 속으로 저는 당신이 편안하시길 빕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하세요. 그 기원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싶으면 일어서세요.”

나는 그렇게 했어. 우리가 허리를 세우면 진행자는 앞에 서서 절을 받은 이의 느낌을 물었어.

고맙네요. 누군지 모르지만 많이 고마워요.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진행자는 고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에게 말하게 했어. 그 말을 듣자 나는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안도의 숨이 쉬어졌어. 차례차례 다음 분에게 그렇게 했어. 그분들은 고통받는 모습으로 서 있었어. 어떤 이는 손이 뒤틀려 있거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어. 절을 할 때마다 앞에 선 사람의 느낌을 물었어. 편안하다고 했어. 그들은 한결같이 고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어.

 

드디어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의 외할아버지의 대리인 앞에 섰어. 그때 그는 이미 고통으로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방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몸을 뒤틀고 있었어.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배속에서 극심한 통증이 올라왔고 통곡이 터져나왔어. 왼손에 주먹을 쥐었어. 오른손의 남편이 느껴지냐고 진행자가 반복해서 말했어. 그는 내 옆에서 내 손을 꽉 쥐고 오로지 나만을 향해 근심인지 사랑인지 구분할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진행자는 나에게 말했어.

부모의 고통을 보면서 복수를 다짐하거나 내가 대신하겠다, 나는 당신을 구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죄책감 역시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는 회피수단이예요. 그의 고통을 그대로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그대로 느끼세요. 그게 훨씬 어렵고 필요한 일입니다. 딸이 아버지를 향해 저는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요. 제가 할께요.”라고 하는 건 아버지를 대신하겠다는 거고, 그건 불가능한 시도이고, 고통을 2배로 늘이는 일입니다라고 말이야.

 

나는 한참을 토하듯이 울었어. 아버지 뒤에 할아버지 대리인이 세워졌어. 그 역시 고통 받고 있었어. 호흡을 힘들어했어. 나는 남편 손을 꽉 쥐고 나를 지켜보고 함께 하는 그의 사랑을 느꼈어. 그리고 둘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분들의 고통을 보면서 절을 했어. ‘당신이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속으로 비는데 눈물이 수직으로 떨어졌어. 여전히 아버지 대리인은 바닥에 누워서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내 온 몸이 떨려왔어. 그 절이 길었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겁니다.” 진행자는 말했어. 나는 서 있는 내 명의 대리인, 누워있는 아버지, 그를 다정히 지켜보는 할아버지가 왼쪽에 보이는 지점에서 남편을 향해 섰어. 진행자는 내가 남편을 향해 자기야, 저를 꽉 잡아주세요.”라고 말하게 했어. 나는 그렇게 했어. 그 말이 쉽지가 않았단다. 나는 분노로 쥐고 있던 왼손을 내밀어 그의 옷을 움켜쥐었고, 다음에는 그와 깊이 포옹했어. 그가 다정히 나를 안아 주었어. 마음이 안심되었어. 당분간은 그 자리에 있는 게 좋겠다고 했어.

 

진행자가 말했어. “아기를 초대하려면 내게 있는 생명 에너지가 늘여야 해요. 죽음이 아니라 삶, 생명과 행복 쪽에 있어야 해요. 아버지가 아니라 남편 쪽에 있어야 해요. 지금은 생명의 에너지가 거의 없어요. 죽음의 에너지가 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진행자는 내가 복수를 다짐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어. 내 눈은 사무라이 같은데 오로지 남편을 향해 여자로 설 때 표정이 부드러워진다고 했어.  

 

개똥아, 산아, 회는 싱싱할 때 쳐야 한다고 하지,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은 때라서 펄펄 뛰는 리포트를 너희에게 보낸다. 오늘 아침에 절을 하면서 나는 어제의 장면에 들어가 울었단다. 새삼 안정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그가 고맙고 기뻤어. ‘사랑은 나에게 얼마나 서툴고 낯선 단어인지. 그건 삶을 선택하는 큰 힘인 듯 하다. 꿈과 진실한 욕망 역시 그러하리라. 나에게는 저 사람의 사랑, 그리고 너희가 올 수 있는 생명의 수레가 되려는 엄마의 욕망이 있다. 내가 죽음 방향으로 가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연루가 되는구나. 개똥이 산이도 나를 따르겠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건 너희가 오든 안 오든 나에게 중요한 과제구나. 나는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한다.

 

가족세우기에 의하면 아기가 생기지 않는 이유, 우리가 미처 너희를 만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원가족과의 얽힘에 지나치게 묶여 있어서, 생명보다는 죽음 쪽에 관심이 많아서라고 한다. 이건 나에게만 특정한 거고 다른 이들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 어떤 이들은 가족세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굿하는 이야기라고 듣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나로서는 어떤 계기든 변화의 디딤돌로 삼고 싶은 심정이다. 대구마리아 이성구박사님을 뵙고 온 이후 나에겐 희망이 생겼단다. 그 명의와 대구 마리아의 배양기술이 우리가 개똥이와 산이를 만나는 걸 도와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의 생명의 힘을 증장시킬거란다. 명상은 지켜보는 힘을 늘이지. 저녁기도를 하고 싶어졌어. 인도의 명상스승 오쇼에 의해 개발된 동적 명상은 고요해지기 위해 활동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적합하다고 한다. 무엇이든 시작하련다.

 

개똥아, 산아 사랑한다. 진심으로 나는 너희의 엄마가 되고 싶단다. 내가 삶의 방향에 서서 햇볕을 듬뿍 받아 피어날 때 너희는 안심하고 올 수 있겠지. 그 소망과 사랑의 힘으로 나를 바꿔 나갈께. 그건 나를 가꿔나가는 일이다. 약속하마.   2014 11 1.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름다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아기가 생기지 않는 이유 하나를 알게 되었어요. 그 인연에 감사하고 기쁘고 소중합니다.

 

저가 미래의 아이들과 엄마로서 약속한대로 저는 생명의 기운을 길러가도록 하겠습니다.  43살에 임신을 원하는 걸 남들이 노욕아라고 해도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건 내 피와 눈물과 몸에 진실한 진짜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변화의 가장 큰, 근본적인 에너지가 되어준다고 한 건 <의식혁명>을 쓴 데이비드 호킨스입니다. 그에 의하면 분노, 죄책감, 수치 등은 하급의 에너지이고 다른 이들의 수혈과 보급에 의해 살아가는 흡혈귀, 기생의 삶입니다. 욕망은 첫번째 변화의 단계의 의식 에너지입니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은 나의 욕망이 맞습니다. 내 욕망이 무언지를 아는 건 진실한 소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 웍샾은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알았어요. 그로 인해 내가 삶의 방향을 향하는 정도는 누워서 손을 꼼지락 거리는 정도로 미미했어요. 하지만 매우 큰 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똥이, 산이에게 편지를 1년 가까이 쓰면서 우리의 미래와 접촉한 것도  나에게 힘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내 세션을 대리인을 해준 이들과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깐 이야기를 했어요. 한 분은 나의 할아버지 역할을 했고, 한 분은 나의 대리인을 했어요. 우린 모두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한 사람은 초등교사, 저는 특수교사, 또 한 이는 고등학교 수학선생이었어요. 우리는 우리 경험을 가지고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대리인이었던 분이 말했어요. “손녀가 얽혀서 동동댈 때는 숨쉬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절을 드리고 손주사위와 안고 있을 때 편안해졌다.” 나의 대리인이었던 이가 말했어요. “진행자가 누우라 해서 아버지 옆에 눕긴 했지만 누워있는 게 안 편했어요.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게 확실하게 느껴졌어요. 남편 쪽으로 관심이 가는데 몸이 안 움직여졌어요. 힘이 딸리는 것 같았어요.”

 

내 아버지의 아픔은 보조연맹사건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 때문일 겁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러고요.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내가 삶과 행복을 선택할 때 편안하다는 거였어요. 아버지를 대신해 어찌 하려는 걸 그가 원치 않는다, 어떤 고통을 당했든 선조는 후손의 행복을 바라고 기뻐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대리인은 나에게 특별히 그 말을 더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제가 아이를 초대할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올해와 내년 뿐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걸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25살 때 나의 스승님 각해보살님은 저더러 새벽 3시 기도를 3년 하고 이분정근을 하라고 했어요. 하루 2번 정진하는 겁니다. 새벽기도는 따라서 했고, 저녁기도는 아직 못합니다. 17년 후, 마흔 넘어서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건 모두 내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었어요. 새벽기도는 인제 제 삶의 일부로 든든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저녁기도를 할 겁니다. 그것이 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되길 바랍니다. 다이나믹 명상이 성과 생명 에너지가 있는 부분을 활성화 시킨다니 그것을 해볼까 싶긴 한데요, 집에서 공부한다는 아래층 총각이 층간소음으로 매일 뛰어올라올까봐 접었네요.

 

제가 사랑, 생명 쪽으로 진화해가길 이끌어주십시오. 아무것도 안 하는 고통을 그대로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요? 과연 나는 죄책감을 놓고 새로운 구도로 진행해 갈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등불이 되어 저의 길을 인도하여 주세요.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옆에 함께 해 주세요. 저희 가족을 지켜보아 주시고 지키고 옹호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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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08:40:39 *.104.9.216
현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느끼고 사시는 선배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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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08:06:25 *.175.14.49

피울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또 갈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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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07:53:12 *.131.89.205

굿이란 거 그거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인데 우리는 그거를 우리 삶에서 치워버렸어요. 특히 우리 가족은 그러내요.기독교라는 것으로 몰아내 버렸지요. 그걸로 밀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데 말이죠. 

우리 삶에는 이성이나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부모님의 삶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않았고 격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것들이지요. 아픈 삶을 느끼기는 하지만 자식이 그걸 풀기에는 힘이 없었죠. 풀어서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활동이 우리에겐 없네요. 옛날엔 있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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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08:07:35 *.175.14.49

저도 동감이예요. 굿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굿'이 하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사라진 듯 해요. 우리 동네도 동제가 있었는데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그게 '어버이날 체육대회'가 되어 버렸어요. 씁쓸했어요.  감사합니다. 정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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