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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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전거 매니아 김병훈을 알게 된 것은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자전거여행>이란 그의 책을 통해서였다. 한 십 년 전쯤 되었나. 한참 자전거에 재미를 붙일 무렵인데 집을 중심으로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나의 나호바리를 넓혀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전거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찻길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가 내 자전거 신조이니 농로와 흙길, 산길 등 차가 안 다니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혼자서 발굴해 내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때 만난 책이 그의 책이었다. 책의 해당 페이지를 찢어서 주머니에 꽂고 하루에 한 코스씩 섭렵했던 추억이 있다. 그의 책은 나 같은 길 초자에게는 참으로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꼼꼼히도 썼을까? 탄복했다. 그러다가 그가 자전거생활이란 잡지를 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씨구나!’하고 그 잡지 구독 신청을 했다. 어느결에 나도 그의 펜이 된 것이다. 그 잡지에서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길 지도였다. 지도가 크다 보니 접어서 부록으로 끼워져 배달되었는데 잡지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그 걸 꺼내 본 다음, 관련 기사를 참조하여 다음 라이딩 코스로 설계하곤 했다. 그 때 내가 생각한 것이 그는 어쩌면 그렇게 자신이 자전거 매니아로 즐길 뿐 아니라 그것을 책과 잡지로 엮어 만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가 부럽기도 하고 나도 그처럼 내가 발굴한 자전거 코스와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제 자전거 매니아이며 저자인 김병훈의 이야기를 취재해 볼까 한다. 그의 자전거 인생에 어떤 매혹적인 스토리가 숨어 있는지 무척 기대가 된다.
김병훈은 1966년 경남 김해 출생으로, 김병훈은 12살 때, 일찌감치 자전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온통 비포장인 길에 변속기도 없는 구식 자전거로 하루 80~90km를 거뜬하게 달렸다. 그 후 자전거와 잠시 이별하고 서울로 와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기자로 활동했다. 30대 초반, 자전거로 직장을 통근하면서 자전거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꼈다. 2002년 국내최초의 본격 자전거전문지 월간 『자전거생활』을 창간하고 4년간 편집장을 하다가 현재는 발행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최근작인 <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 외에 다수의 자전거와 여행 관련 저서가 있다.
여행과 자전거 관련 책을 다수 집필한 김병훈이 특이하게도 철학적인 주제를 흥미로운 소설로 다룬 단편집 <천사 같은 그녀>를 출간했다. 존재와 죽음, 영생, 우연, 생명 등 다양한 철학적 테마를 간결한 문체의 단편소설로 쓴 것은 그가 철학도로서 그의 사유의 깊이를 알게 해 준다. 그의 여행기에서도 범상치 않은 깊이가 느껴지는 것도 이와 서로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는 신문 기자 생활을 오래 했는데 어떻게 자전거를 만나 몰입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몰입한 정도가 아니라 국내 최초의 본격 자전거 잡지를 만들고 자전거로 생계까지 꾸리고 있으니 과연 그는 자전거에 관한 한 최고의 프로다. 2002년 초 자전거 전문 잡지를 창간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대부분 자전거로 무슨 잡지를 만든다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자전거는 값싸고 볼품없는 한물간 교통수단의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한때 몸담았던 ㈜자동차생활의 김재관 회장이 그의 열정과 미래의 비전을 보고 자전거 생활의 창간에 투자해 주었다.
“저도 자전거가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몰랐습니다 지금은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대단한 영웅으로 확신하고 두 바퀴를 알리는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하는 일이란 자전거 타는 즐거움, 자전거 여행의 기쁨을 알리는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재미있지 않으면 아무리 몸에 좋고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해도 따라 하지 않습니다.” 그가 30대에 자전거를 다시 만난 후 한 말이다. 그는 자전거가 주는 그 엄청난 재미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한 자전거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럼 자전거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자전거만큼 정직과 착함과 아름다움, 또 주위 다른 만물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기계가 또 있을까? 그의 말을 들어 본다.
자전거는 정직하다. 1790년 처음으로 자전거가 발명된 이후 다른 기계와는 거꾸로, 보다 단순하게 발전해온 거의 유일한 도구다. 그래서 진실에 좀더 가까워 졌다. 자전거와 사람의 관계도 철저히 정직에 기초한다. 자전거는 내가 페달을 돌리는 만큼만 움직인다. 노력 없이는 한치도 대꾸 하지 않는 것이 자전거다. 내리막에서 횡재했다고 쾌재를 부를지 모르지만 곧 닥쳐올 오르막은 꼭 내려온 만큼 보상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정직한 물건이 또 어디 있는가?
자동차 오토바이 컴퓨터 tv 같은 다른 기기와 비교해보면 자전거의 착함이 분명히 드러난다. 개인에게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사회에는 교통, 환경, 에너지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자전거다.
안정감과 균형감, 그리고 원과 직선이 역설적으로 조화를 이룬 불균형의 미감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무한 매혹을 발산한다. 여기 사람이 탔을 때 자전거의 미학은 인간의 차원으로 옮아 간다. 팔 다리가 짧고 머리가 큰 ‘안티몸짱’도 그럴듯하게 갖추고 안장에 오르면 멋지다는 소리를 쉽게 듣는다.
두발로 걷는 것뿐 아니라 페달을 돌리는 동작도 그에 못지않게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이 기계는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덧 자전거도 펜이나 안경처럼 인간의 몸에 동화된 도구가 된 것이다. 극도의 단순함, 궁극의 기능성, 그리고 사람을 더욱 멋스럽게 만들어주는 화장술까지, 자전거여 너 참 아름답구나!
자전거 역시 관계의 구조 속에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가 찾은 자전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관계의 요소는 길, 바람, 풍경, 그리고 사람이다. 사람이 두발로 걸어 다니는 대부분의 길은 곧 자전거길이 된다. 세상에 자전거를 거부하는 길은 없다. 그 길을 달릴 때 바람은 우리를 애무하며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바람은 자전거가 주는 감동이다. 스치는 풍경과 우리는 쉽게 혼연일체가 된다. 풍경은 내 눈과 몸 안으로 저절로 흘러 들어오며 우리를 그윽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이 기계는 사람과 하나 되기를 갈구한다. 자전거 홀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야성을 짓누르는 단순반복의 따분한 일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한 타인들과의 어쩔 수 없는 공존, 이런 것들로 야성은 시들고 잘 길든 순한 짐승으로 그는 살았다. 이제 자전거는 그의 안의 이리를 일깨워 포효하게 만들었다.
왜 자전거를 타느냐고 묻는다면? 김병훈에게 자전거는 재미와 자유의 놀이터다. 그는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과 함께 성격도 변했다.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감기를 달고 살고, 술과 과로로 인한 위장병에다 배까지 제법 나온 약골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부터 이 모든 증세가 싹 가셨다. 특히 하체가 튼튼해지니 활력이 넘치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원래 좀 우울하고 부정적인 성격이었는데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저도 놀랐습니다. 자전거가 성격까지 바꿀 줄은 몰랐거든요.”
그의 말이다. 자전거를 통해 건강과 성격까지 개조하자 그는 아예 자전거 전도사로 나섰다. 자전거를 꼭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운동을 해야 하는데 딱히 배운 게 없고 매사에 싫증을 잘 내는 사람’,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맛보고 싶은 사람’, ‘우울증이 있는 사람’, ‘관절이 약해 등산이나 조깅이 어려운 사람’ ‘성취감과 도전 욕구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 ‘우리 국토를 샅샅이 보고 싶은 사람’, ‘통근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싶은 사람’,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과 특별한 모임을 갖고 싶은 사람’ 등 끝이 없다.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이유로 우선 6가지 만은 기억하자.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환경(무공해), 교통(에너지 절감), 건강, 여가, 여행, 국가경쟁력 등을 일거에 해결하는 일석육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잡한 이론적인 설명을 떠나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즐기는 모습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성장한다. 아이는 재미 있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자전거의 이런 재미는 속도, 스릴, 그리고 기계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자유감에서 비롯된다. 저비용 고효율 레저로 자전거는 최적이다. 또한 평균 시속 20km로 여정의 과정을 샅샅이 체험하게 해준다. 그래서 최고의 여행도구가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는 치유의 효과도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를 순화시켜 정신적으로도 밝고 건강하게 해준다.
“시속 20km 남짓한 자전거의 속도는 풍경이나 사람과 교감하기에 가장 적절한 속도에요. 자전거로 강변 길을 달리면 우리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김병훈이 손꼽는 ‘최고의 자전거 여행길’은 충북 괴산에서 세종시 사이의 오천 자전거길. 오천길은 4대강 자전거길 중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새재길과 금강자전거길을 연결하는 구간으로, 100km 정도다. 이런 길을 달리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이 길의 전체를 조망하고픈 충동이 인다.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를 생각하게 된다. 지도제작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는 일명 ‘대동자전거여지도’ 제작을 시작했다. 고산자의 후예가 여기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것은 나의 꿈과도 일치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이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의 지도를 보며 나의 지도를 어떻게 차별화 시킬지 연구해 봄직하다.
“솔직히 나는 자전거를 만난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믿고 있다. 자전거가 있는 한 절망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전거 확산은 자살률 낮추고 개인 성공도 견인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김병훈의 이 말에서 그의 인생과 세계의 전부가 자전거 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자전거 철학자” 나는 김병훈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은 이렇듯 분명한 자기 철학과 용광로의 열정을 가진 사람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되는 데는 재미가 그 원천 이었음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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