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앨리스
  • 조회 수 190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4년 12월 8일 10시 51분 등록

3년간의 변화

10기 김정은

 

 

그것은 비즈니스라기보다는 호구지책이었다.

또한 내가 나 자신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고 성공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작업이었다.

아니타 로딕, <영적인 비즈니스> 59

 

 

직장을 그만두고아모르 파티를 선언한 이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취미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전까지는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그저 일하는 데만 썼고, 가끔 여유 시간이 생겨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 썼다. 취미를 떠 올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취미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져볼 거라며 계속 미뤄두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나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천만에, 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 또 다른 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취업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연신 또 다른 일을 찾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자격증을 두 개나 따 놓은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가뜩이나 망가진 건강을 더욱 망가뜨리겠다 싶었다. 의도적으로라도 정신적 여유를 가져보자 다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흥미를 찾아 취미를 가져보자 했던 것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선택했고 아이들을 위해그림책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책 공부를 4년째 계속 하고 있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가게 된다.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 봉사는 3년째 하고 있으며, 방학마다 그림책 작가를 모시고 독서 캠프 진행도 돕고 있다. 영어 동화책 읽어주는 것으로 소소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렇게 그림책을 선택했던 것은 사실 호구지책의 일종이었다. 내가 목디스크로 퇴사를 결정했을 당시에 남편의 회사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유럽발 금융위기로 유럽에 본사를 둔 남편의 회사에선 한국 지사 문을 닫는다 만다 말이 많았다. 결국 본사는 한국 지사를 시장에 내놓았고 회사측의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직원들의 파업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정신적인 여유를 갖긴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큰 아이가 학원 다녔던 것을 전부 그만두게 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도 유치원을 그만두었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엄마로서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이들이 학원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게 되자 아이들에게도 시간적인 여유가 찾아왔다. 엄마 아빠에게 닥친 시련으로 내 아이들이 행여 피해보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던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인근 어린이 도서관에 매일 발도장을 찍었다. 도서관에서 뒹굴며 같이 책을 보고 또 한아름 책을 빌려와 집에서도 읽었다. 읽었다기보다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우린 그렇게 책과 친구가 되어 놀았다. 그렇게 시작한 책 놀이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젠 어느 정도 학원에 보내 줄 형편이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 싫어한다.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지식을 머리 속에 쏙쏙 집어넣어주는 것 보다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책에서 찾아 알아가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 아이들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미 선행학습이 다 되어 있는 아이들 속에서 기죽을 때도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빨리빨리 가는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내 아이들을 다독인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토록 직장여성으로 살고자 했던 이유도 내 아이들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월급이라는 보상과 직급이라는 인정을 받는 기쁨을 누렸지만 정작 내 가정에서는 내 시간과 내 공간의 주인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내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를 감당해야 했고 엄마가 짜 준 스케줄에 의해 이 학원 저 학원을 옮겨 다니며 그네들 또한 스스로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지난 3년간 우리 가족은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나 자신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고 성공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작업을 해 온 것 같다. 위기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IP *.65.153.180

프로필 이미지
2014.12.08 11:24:58 *.201.146.217

삶이 도처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12.08 12:09:33 *.92.211.151

그림책 여행. 좋다 좋다  

프로필 이미지
2014.12.08 13:14:59 *.124.78.132

도서관에서 스스로하는 학습!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만해도 안 떠먹여주면, 서칭하지 않고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ㅠㅠ 결국 가족을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이라면 꼭 이런 방식만이 가족을 위한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네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32 3-29. 4차 시험관 전 화이팅 제주도여행 콩두 2014.12.21 2827
4431 3-28.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콩두 2014.12.21 2203
4430 12월 오프 수업 후기 - “진정한 예술가는 작품을 출간한다.”_찰나칼럼#34 [4] 찰나 2014.12.16 1974
4429 12월 과제+수업 후기 file 종종 2014.12.16 1990
4428 12월 오프후기 [1] 에움길~ 2014.12.16 2042
4427 #34 12월 오프 후기 및 과제_정수일 [6] 정수일 2014.12.16 2195
4426 12월 오프과제 [2] 어니언 2014.12.16 2029
4425 12월 오프 수업 과제 - 이동희 희동이 2014.12.16 2173
4424 12월 오프수업 후기_책을 향한 용틀임 [1] 녕이~ 2014.12.15 1955
4423 12월 오프수업 후기_더 멀리, 더 오래, 더 깊게 어니언 2014.12.15 2333
4422 12월 오프수업 과제 앨리스 2014.12.15 2077
4421 12월 오프수업 후기 – 책이라는 처방전 [4] 앨리스 2014.12.15 1933
4420 12월오프수업후기_구달칼럼#36 구름에달가듯이 2014.12.15 2316
4419 12월 오프수업 후기 및 과제- 저자들과 함께한 시간 [1] 왕참치 2014.12.14 2064
4418 12월수업_ 인생역전자전거전국해안일주_구달칼럼#35 file 구름에달가듯이 2014.12.10 2538
4417 Reset [2] 녕이~ 2014.12.08 1951
4416 아저씨, 힘들다. [2] 종종 2014.12.08 2117
4415 최선의 또 다른 이름 [8] 왕참치 2014.12.08 2056
» 3년간의 변화 [3] 앨리스 2014.12.08 1905
4413 천원의 행복_찰나칼럼#33 [8] 찰나 2014.12.08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