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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8일 18시 54분 등록

늦게 낳아 어떻게 키우려고요?

 

개똥아 산아

 

안녕. 오늘은 새해 두 번째날이다. 나는 지금 대구 마리아병원에 있어. 허리를 다쳐 누워계신 할머니에게 보낼 곰국을 고아놓고 혼자 KTX를 탔다. 이제 차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그와 같이 오는 날은 채취날 정도겠지. 비행기를 타고 어찌들 다니는지. 동대구역에 내려 걸어왔단다. 바람이 몹시 차다. 털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오리털 코트를 입었어. 진찰권을 내고 기다리고 있지. 내 순서는 13번이구나. 이름 부르는 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데 앉아 있어. 마치 내 등과 뒷꼭지 전체가 귀가 된 느낌이란다. 간호사샘이 전화 돌리는 소리가 들리네. 방금 누구에겐가 냉동배아가 생성되었다는 전화를 하네. 그녀가 부럽다. 난 피검결과를 모두 4번 받았지만 임신수치가 나왔다는 통화는 한 번도 없었지. 너희가 찾아와 나에게 축하합니다전화를 해 목소리가 저 분인 듯 싶다. 난임병원에 와서 보통은 2시간쯤 기다리는 듯 해. 노트북을 싸짊어지고 와서 너희에게 편지를 쓰면서 기다린다. ‘엄마마음으로 나의 모드를 전환하기 위해 너희에게 편지를 쓴다. 가능하면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의 이런저런 일들을 여자나 인간인 내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치르기를 바란다. 편지쓰기는 그런 전화의 의식이다. 그럼 두렵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많이 가라앉는다. 두려움이 없어지진 않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딛게 해 준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긴다는 말의 뜻을 내가 조금씩 알아가면 좋겠구나.

 

떨리니까 오늘 진료에서 할 말을 시뮬레이션해본다. 워낙 환자가 많고 바쁘다보니 어버버버 하다가는 할 이야기를 다 못하고 궁금한 걸 듣지 못하곤 해. 집에 가서 짚어보면 이런 게 많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지난번에 자궁경하면서 반복착상실패검사 결과지 갖고 왔어요. 2과 선생님한테 냈어요. 그거 담당선생님이 안 보신 듯 해서요 오늘 보실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편의 검사지는 여기 있습니다.” 이건 간호사 샘한테 할 말이다. 이렇게 하라고 말해준 분이 있었어. 역시나 나처럼 KTX를 타고 서울서 대구로 다니는 분이다.

 

선생님께 할 말도 연습한다. 조목조목 미리 대사를 쓴다.

라헬에서 한 반복착상실패검사 결과지 지난번에 안 보셨어요.

1) 비타민D부족-하루 약 2000iu 먹으라고 해서 물약 먹었는데 꾸준히는 못했어요. 햇빛 보면서 운동 하라고 하셨는데요, 운동은 꾸준히 했는데 햇빛은 충분히 보지 못했어요. 비타민 D 주사 맞을 수 있다면 오늘 맞게 해주세요.

2) 갑상선기능항진 소인 -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 가서 갑상선기능항진 소인에 대한 검사했습니다. 기능항진 소인이 보이지만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고 추적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3) 엽산대사이상 있다고 고용량 엽산 처방받았어요. 10001개씩 먹으라셔요. 혹시 조절할 영양제가 있으신가요?

4) 자궁내 폴립은 지난번에 와서 2과선생님께 제거했습니다.

남편은 유전자검사에서 운동성, 기형정자 2.5%, 수정력이 낮다고 했어요. 아연, 셀레늄, 종합비타민, 엽산, 오메가3 같이 먹고 있어요. 이전 병원에서는 100% 미세수정했습니다. 질을 향상 시킬 방안이 있을까요?“

 

오늘은 4차 시험관, 신선 3차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번으로 채취하고 이식하는 차수로는 정부지원 마지막이란다. 장기로 하기 때문에 오늘 배란억제주사를 맞을거란다. 두 번 채취를 했는데 그 때는 늘 단기길항이었어. 단기와 장기의 차이가 있어. 단기는 생리 2~3일부터 자연배란 주기를 참조해서 진행해. 장기는 전달에 미리 배란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아 자연적인 배란을 안 시키고 오로지 약으로만 난자들을 키우게 된다. 다음 달에 생리를 하면 인제 본격적인 과배란에 들어가게 되겠지. 대구 마리아의 배양력과 선생님의 노하우는 한국에서 최고라고 봐. 대구마리아는 5일배양만 하고 나처럼 반복해서 착상이 되지 않고, 40대 이상인 경우는 2개씩이식한대. 다른 이들은 단일 배아 이식이 원칙이고. 장기가 질이 더 좋다니 냉동수정란이 생성되길 기대해 본다. 이번에 채취해서 쉬는 달까지 2~3달 동안 쓸 냉동수정란이 생성되는 게 우리의 꿈이란다. 그러니까 2개 이식하고 6개 정도 냉동이 나오는 거지. 물론 냉동이 안 나와도 이번에 성공하면 제일 좋다. 오늘은 생리 18~19일째라 배란억제주사를 맞고, 열흘 후에 생리가 시작될거야. 오늘부터 2주 후에 과배란에 들어가겠지. 과배란을 14~16일 한 후에 채취를 하게 될거야. 1월 말이나 2월 초가 될 것 같구나. 3일배양해서 이식을 하겠지. 어쩌면 4차인 이번 시험관의 결과는 설날 전에 나올 것 같구나. 작년 혼인하고 처음 맞는 설날은 1월에 인공수정을 하고서 맞았지. 추석에는 2차 채취를 하느라고 과배란 중이었지. 시댁에서 보내는 두번째 설날, 우린 올해도 떡국을 끓이고 조상님께 너희의 도착을 빌겠지.

 

올해는 청양의 해란다. 푸른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다. 나는 푸른 불꽃이 되고 싶다. 성실한 열정을 가진 사람 말이야. 나는 우리학교 전공과 학생들이 만든 천연비누 양비누를 휴직했던 거실 잘 보이는 자리에 1년간 간직했어.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 직업훈련을 받아. 천연비누도 만들고 바리스타 교육도 받아. 장애학생 교육의 꽃은 직업재활이라고 나는 생각해. 우리 학생들이 만든 어여쁜 양비누 2개를 바라보며 그게 개똥이와 산이라고 생각하며 설레어했었다. 청양의 해인 올해 너희가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구나.

 

할머니는 허리를 다치셔서 집에 입원중이시다. 2번 척추가 살짝 골절 소견을 보이는데 골다공증 때문이라는구나. 병원에서 보름 입원하라고 했는데 답답하고, 병실비가 비싼 2인실만 있다고 해서 집에서 꼼짝도 안하겠다고 약속을 하고서 돌아오셨어. 허리 보호대를 한 채 누워서 지내셨어. 모든 집안일도 금지되고, 일은 당연히 못 가셨지. 급한 데는 삼촌이 대신 가서 했어. 가족 모두 편치 않은 연말연시를 보냈단다. 일단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듯 해. 이 기회에 우리는 설 쇠면 70살이 되시는 할머니가 노후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 건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고 있구나. 두 아들 중에 누가 모시면 좋을지, 집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이야. 며느리라는 입장이 쉽지가 않구나. 언젠가 너희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외할아버지가 너는 한군이랑 결혼할 거면 혼자 되신 시어머니를 책임지겠다 싶으면 해라.” 그때는 대답을 그냥 했었어. 이번에 막상 할머니가 아프셔서 앞으로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본다. 내 직장에서 더 멀어지는데 어쩌나? 지금도 전철에서 1시간 20분인데 더 멀어져서 1시간 40분 걸리는 데를 다니자면 쉽지 않겠어. 이것이 커다란 이슈가 되리라는 예견을 한 외할아버지의 선견지명에 놀라면서도 약이 오른다. 내 아버지가 내 편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편을 들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만약 너희가 찾아왔다면 어땠을까? 지금 아직 존재하지 않은 아이들이 아니라 존재하는 아이들의 할머니, 나와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희와 피를 나눈 조상이 되신 할머니에 대해서 좀 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냥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의 어머니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만 생각할 뿐이란다. 그래서 우린 나, 아빠, 삼촌 3명이서 가족세우기 웍샾을 가기로 했단다. 지혜롭게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하나 요즘 나의 관심사는 만혼으로 출산이 늦어져서 은퇴시점에 겨우 중학생일 너희를 어떻게 공부시키고 부양할까의 문제란다. 우리가 자기관리를 잘 해서 60, 61세까지 일을 한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 5년 동안 우린 무엇으로 월급을 받을 건지 고민이란다. 2015년에 너희가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44, 아빠는 45살이거든. 우리가 61, 60세에 퇴직을 하면 너희는 15살이나 16살 아직 중학생이란다. 가장 교육비가 많이 드는 고등학생, 대학생일 때를 아직 보내지 못한 때야. 그 때 우리가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면 너희를 낳는다는 건 욕심일 뿐이겠지. 물론 우리는 너희를 20살이 되면 독립할 수 있도록 강하게 기르겠지. 나에게 15년이 남아서 다행이야. 그동안 우리는 일단 우리가 은퇴했을 때의 생활, 노후는 물론이고 너희의 본격적인 교육비를 어떻게 감당할 건지를 대비를 해야겠지. 그 생각이 많다.

 

우린 일단 월세수입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교통이 좋은 시내중심지에 집을 사서 그걸로 월세수입을 확보하는 거야. 월세를 받을 용도라는 구입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에 맞는 평수를 사겠지. 전철역에서 가까운 24평 이하의 집이 2채 필요해. 한 채에서 월 100만원 정도의 월세수입이 있었으면 좋겠어. 또 하나는 나의 필살기를 기반으로 해서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을 만드는 거야. 그건 남은 직장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야할 숙제야. 나는 지금 작가가 되고 싶어해. 과연 인세를 받아서 생활비로 쓸 수 있을까? 또는 그것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전을 갖고 준비할까? 나도 나무의 삶을 살고 싶다. 회사가 나를 부양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고용해서 먹고 살 수 있는 나무같은 삶 말이다. 60세 이후가 진정한 삶의 3번째 단계인데 그 때를 가난하게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문사 은행나무처럼 보내고 싶다.

 

개똥아, 산아, 오늘 시작하는 장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내가 3번째 진료 차례다. 방 앞에 대기하라고 내 이름을 부른다. 인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개똥아, 산아. 잘 있거라. 2015.1.2.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대구 마리아에서 편지를 한 통 쓰고 나니 어느새 저 차례였어요. 선생님과의 만남은 짧아요. 선생님이 다른 환자의 차트를 정리할 동안 나는 초음파를 보는 곳에 들어가 치마를 입고 진료 의자에 앉아요. 선생님이 들어와 질초음파를 봐요. 그리고 상담을 했어요. 반복착상실패검사 결과지를 지난번에 안 보셨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다시 봐주셨어요. 비타민 D는 주사는 여기는 안쓰니까 약으로 먹으라 하고, 엽산은 2000으로 올리고, 먹던 영양제 열심히 먹고 2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정자를 냉동할거냐 물으면서 아니라고 했고, 지금 영양제를 먹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수정문제는 알아서 하겠다고 하셨고요. 그 말이 믿음직했어요. 주사실에서 장기배란억제주사를 1대 맞았어요. 주사실 커튼 뒤 침대에 달랑 올라앉으니 간호사가 배꼽 아래 두툼한 살에 놓아주었어요. 따끔하대요. 난임관련 주사는 보험이 되지 않아요.

 

동대구에서 올라오는 KTX를 발권한 후에 국밥을 한 그릇 먹었어요. 시간이 밭아 역 안의 식당에서 부어넣다시피했어요. 짰어요. 뜨건 물을 정수기에서 담아와서 부어서 희석해 마셨어요. 저녁에 서울역에 도착하니 어두워져 있었어요. 쓸쓸했어요. 롯데마트에 갔어요. 나를 위로하려고 좋아하는 요구르트와 치즈를 샀어요.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3개를 먹었어요. 와인을 한 잔 할까? 싶었어요. 왜 쓸쓸할까요? 시댁이 아니라 우리집에서 나를 남편이 기다려주었으면 덜 쓸쓸했을까요? 내가 나서서 남편더러 "내가 저녁에 늦게 오니까 퇴근하고 시댁으로 가서 어머님께 맛난 거 사드리세요." 말했어요. 그는 해물찜을 사가지고 갔다더군요. "잘하셨어요." 내가 말했어요. 그건 진심이었어요그래도 나는 쓸쓸합니다. 나에게 좀 더 다른 선물을 주어야 할까요? 남편을 어머니에게 보내서 어머니가 기뻤을 겁니다. 아내는 쓸쓸하네요. 먼 병원에서 배주사를 맞고온 날은 내가 그를 더 필요로 하는 듯 합니다. 다음엔 난임병원 다녀온 아내가 쓸쓸하지 않도록 남편 배치를 요청해 볼까 봅니다. "병원다녀온 날 특히 쓸쓸하니 내게 마중을 오든 전화를 여러 통 해주세요."라고 힌트를 주어야겠어요. 알아서는 못 해주겠지만 알려주면 그리 해 줄 겁니다. 근데 그는 동네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한다고 늦게 왔어요. 나는 짜증을 냈어요.  

 

12월 들어서요 저는 남편에게 뽀루퉁해 있었어요. 처음엔 전세금 때문이었고 다음에는 시어머님의 병환으로 야기된 거처 때문이었어요. 올려주는 전세금의 절반은 나의 적금으로 내고 절반은 그가 나와 의논없이 어머님께 빌려왔더군요. 우리가 살 집의 전세금을 의논할 첫 번째 상대가 내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는 게 저로서는 대단히 놀랍고 기분 나쁜 일이었어요. 내 아버지와 그가 공유하고 있는 사항, 부모를 장남이 모셔야 한다는 것, 장남인 그들에게는 자연스럽지만 내 준비나 마음 상관없이 의무로 주어지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우리는 한 달간 좀 밍숭맹숭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또는 아이가 없더라도 같이 사는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편안하고 화목한 사이일 겁니다. 그걸 가꾸지 못하면서 아이만을 간절히 바라는 게 좀 그래요. 하지만 이 모든 껀수가 우리가 서로를 튜닝하는 과정이겠지요. 저희가 지혜롭게 길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서로를 잘 알고 잘 연주하여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부는 부모 봉양을 비롯해서 '늦게 낳아 아이를 어떻게 기르려고요?' 라는 질문에 삶으로 답해야 합니다. 결혼이 늦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그만큼 연로해지셨고요 우리가 둘이서만 아이를 낳아 기를 때까지 기다릴 수 없거든요. 이것 역시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일단 제가 그걸 받아들이게 되길 바랍니다. 저희 가족과 함께 하여 주세요. 의료진들과도 함께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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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9 00:16:44 *.169.218.58

언니. 오랜만이예요. ^^

늘 올라오는 언니의 글이지만,

제 게으름 때문에 부지런히 만나지 못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원고 마무리 하면,

언니 만나러 가고 싶어요~

글로가 아니라 밥과 차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 하고 싶어요.

여러 자리에 함께 하면서 단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드물었잖아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여럿 있어요. ^^

연락드릴께요 언니. ^^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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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9 06:41:05 *.153.179.185

뎀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출간기획안이 올라올 때 나타나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뎀뵤 빨간펜 등장한 걸 보니 벌써 연구원 막바지인가봅니다.

원고 잘 쓰시구요. 밥 먹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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