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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일 11시 32분 등록

워킹맘의 무기력

2015.2.2
10
기 찰나 연구원

 

 ‘만약 당신이 어떤 일을 곧장 착수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태도를 버릴 수 없다면 강압적인 부모에게 소극적으로 반항하던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적고 있으면서도 그 일들을 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나 직장 상사처럼 권력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강압적으로 아이나 조직원을 대하면 당사자들은 이처럼 소극적으로 반항하며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미실다인이 얘기한 것이다.

-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군가 나에게 강압적으로 시키거나 윽박지르면 나는 싫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해도 부모나 상사에게 듣는 얘기는 “그냥 해”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모와 상사가 강압적으로 시키면 겉으로는 하는 척 해도 속으로는 반항을 하고 있어서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이 가까워져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일의 발동이 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 강압적으로 시키지 않은 일조차도 시간이 있어도 일을 하지 않다가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늘 바쁜 부모님이었고, 내가 마음잡고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힘들게 얘기를 하면 지지를 해주기보다는 다그치고 소리 지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강압적인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다가 결과물이 나올 때쯤에 부모님에게 ‘짠~’하고 보여드렸다. 역시나 반응은 시큰둥하셨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셋째로 태어났고, 막내가 아들이다 보니 셋째인 내가 하는 것은 별로 눈에 띌만한 것이 없었다. 공부 잘하는 큰 언니,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의 관심을 주목받던 둘째언니, 아들이자 막내였던 남동생. 그 와중에 특출할 것도 별로 없고 모든 것이 무난했던 나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남동생인 아들 때문에 남녀 차별에 대한 불만을 쌓아가고 있었다. 다른 집에 비해서 남녀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어느 순간 ‘여성 최초’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외모나 성격도 남성적인 면이 많았는데 집안 환경이 더욱 이런 나를 가속화 시켰다. 부모님이든 주변 환경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생각의 중심은 ‘나’였고 내가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야 했고, 하지 못하게 하면 혼자 안날이 나서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렸다. ‘포기의 순간’은 내가 못하겠다고 주저앉기 전까지는 포기 하지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하던 1997. 본사에서 신입사원의 열정으로 열심히 일하다 1998년 사업부에 배치를 받았다. 사업부에서 일을 새롭게 시작했지만 경기가 안 좋다보니 사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IMF를 맞이하여 사람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달 송별회가 이어졌다. 회사나 사람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닥치게 되면 회사나 인간은 밑바닥에 있는 본연의 모습을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회사는 이익을 내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고, 회사일을 열심히 하면 종신(終身)을 보장받으리라는것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회사나 개인에게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회사를 들어온 이상 어느 순간은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스스로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어느 순간에는 맞닥뜨려야 할 일이기에. 나와 호흡이 잘맞는 상사와는 신명나게 일을 했지만 그렇지 않고 강압적이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 상사와는 혼자 ‘마음앓이’를 하며 일을 하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하나 둘 낳게 되면서 아이들이 어릴때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화는 일이 많았고, 아무리 계획을 세워봤자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울고, 보채고, . 또한 평소에는 아이들 봐주시는 분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아이들을 봐주는 분들에게 변화가 생기면 하루아침에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어느 순간 ‘계획’과 ‘선택’을 포기했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니 퇴근 후 집에 와서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회사나 집 어디든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일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선택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그 일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보다는 어차피 할 일인데 하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 했고, 협의를 많이 하고 있으면 답답해서 못 견뎌 했다. 속으로는 ‘어차피 할 일인데 뭘 저렇게 오래 얘기하지. 그 시간이면 벌써 일은 다 끝냈겠다.’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 거리면서 불평하고 있었다. 일은 늘 끝나지 않았고, 불평은 높아지고 나는 스스로 무기력에 빠지는지도 모른 채 서서히 그렇게 빠져들고 있었다. 일은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내 영혼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직급이 올라갈수록 주변 환경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주변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상사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러니 일이 제대로 되겠어’ 하면서 상사를 탓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업은 장밋빛 비전을 약속했던 해에 정리가 되었고, 같이 일하던 팀은 뿔뿔이 다른 사업부로 배치를 받았다. 다른 사업부로 가서 일은 시작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집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엄마로서 무얼 했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을 보살펴야 할까?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문제가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회사든 집이든 마음이 답답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지도 얼마안되었기에 인간은 정말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나 고민도 많았다. 복잡한 생각으로 마음도 복잡해지니 길을 가다 발을 삐끗했는데 가볍게 다쳤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한번 다쳤던 다리라 인대 손상으로 기브스를 하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목발을 하고 차로 출퇴근을 했다. 목발을 하게 되니 이동과 활동에는 제약이 생겼고, 점심먹는데도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쉽지 않았다. 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불편한 상황으로 회사를 다녔지만 그래도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부서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승진을 하면서 잠시 이런 상황을 잊고 있었다가 또다시 무기력이 나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차로 하면서 원래 운전하기를 싫어하는데 짜증도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접촉사고도 몇번 났다. 하루는 추석을 앞두고 출근하다 과일 냉장 운송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차량 손상은 많이 되었는데 속도가 늦은 상황에서 이루어졌기에 둘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병원에 잠시 들러 진단을 받고 다시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위해 회사 업무 버스를 탔는데, 업무 버스가 가다 또 사고가 났다. 어떻게 하루에 두번 교통사고가 날 수 있지. 업무 버스를 15년 넘게 탔지만 교통사고를 맞은지는 처음이었다. 봉고차가 갑자기 와서 버스와 부딪쳐서 사고가 났는데 봉고차의 여자 운전사는 피를 흘리고 정신없어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겉은 멀쩡했지만 마음은 여러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알지 못한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장생활도, 아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큰 벽앞에 탁 막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유도 알수 없고 원인도 알 수 없기에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와 나에 대해서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어렸을 때부터 배운 학습된 무기력이 오랫동안 나를 누르고 있었고 그것이 막판에는 나를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무기력이란 것이 이런것일까? 마치 늪처럼 점점 빠져들어서 나오려하면 할 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는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발성을 회복하여 천천히 그 상황을 나와야 하리라.

 

IP *.94.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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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5:46:46 *.196.54.42

무기력이 무섭군요.

나도 요즘 새벽기상을 못해서리... 이게 무기력인지 아니면 게으름인지 덫에 걸린것 같아요 ㅜㅜ


"아이들을 봐주는 분들에게 변화가 생기면 하루아침에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어느 순간 ‘계획’과 ‘선택’을 포기했다"

우리 회사의 워킹맘 과장이 이같은 일을 당해 1년 육아휴가를 신청해 왔답니다. 만연되어 있는 워킹맘의 고충이군요!


찰나의 경험은 많은 워킹맘에게 도움이 될듯^^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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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22:22:58 *.235.136.238

대부분 큰 맘먹고 비장한 마음으로 육아휴직 신청하는거여서 잘 다독여서 고충을 많이 이해해주세요 ^^

무기력 이책 보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요 ~~구달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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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19:02:14 *.143.156.74

찰라님, 이제 책쓰기 단계에 진입했으니 꼭지글의 완성도에 조금 더 욕심을 내보면 어떨까요?

워킹맘을 위한 실용서니까 찰라님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워킹맘들에게 작지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워킹맘의 무기력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려면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팁을 제공하면 어때요?

지난주 칼럼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며>에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워킹맘이 궁금할 만한 것,  예를 들면, 아동학대 징후 체크 리스트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2/01/20150201001917.html?OutUrl=naver를 내용에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워킹맘의 입장에서 무엇이 궁금하고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 더 고민해면 좋을 것 같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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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 22:21:15 *.235.136.238

네 ~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번 <문제는 무기력이다> 라는 책을 보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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