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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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먹기 위한 말 한마디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하세요.
이 한마디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백성의 어려움에 대해 알지 못하며 오만하고 사치스러운 한 나라의 왕비로. 철없고 무지한 이 말은 백성들에게 각인되어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실제로는 마리앙트와네트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의 처음 쓰임도 왕비의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현재에도 가진 자들의 오만함과 무지함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일반 백성들의 실제 생활에 대한 무심함을 넘어선 몰이해, 불통의 극치가 종국엔 혁명이란 이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다.
마리앙트와네트 이후의 시대에도 저러한 말들은 통치자의 생각에서 입으로 많이 내뱉어 진 다. 우리나라만 해도 대통령이나 당대표, 국회의원, 장관, 총리들의 입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구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복지과잉’의 진단시대에는 더더욱 난무하며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리앙트와네트는 하지도 않은 말들이 불씨가 되어 오랜 시간 동안 불통과 무지함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불행히도 정보기술의 발달로 ‘누구의 말씀’인지 잘 알게 되는 오늘날에 저러한 말들을 부지기수로 듣고 있는 우리네는 왜 이렇게 잠잠할까.
다시금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마리앙트와네트는 ‘빵대신 케익’을 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충분한 빵을 세상에 내놓는 것으로 말이다. 아, 물론 세심하게 커피까지도 잊지 않고 말이다.
나는 간혹 길치가 되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더욱 길을 잘못 찾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가도 가도 거리가 같기 때문이었다. 랜드마크를 찾아, 중간 지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길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여기도 저기도 아까 본 편의점과 커피숍과 빵집이 즐비한 것이다. 현재 위치에서 좀 비껴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도 저 건너편에도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와 까페베네의 홍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달로와요’ ‘아티제’ ‘오젠’ ‘베키아 에 누보’ ‘블리스’가 연이어 등장하다고 다시 사라졌다.
무슨 말들의 전쟁이냐고? 빵대신 케익을 먹으란 말을 외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차려놓은 빵과 커피점들이 즐비했다는 말이다. 한때 ‘재벌 딸들의 빵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재벌가의 베이커리 사업 진출이 활발했다. 이들이 딸들이라는 우연에 더해 ‘재벌딸의 빵전쟁’이 되었는데 이들의 베이커리 사업 진출은 그들의 안정된 자산-거대한 건물과 유통구조-로 손쉽게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재산 분배에서 계열사를 받지 못한 딸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다. 어쨌든 프랜차이즈 업체에 밀리고 이런 재벌딸들의 빵전쟁에 밀려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그들의 빵집을 접어야 했다. 여전히 프랜차이즈 빵집과 커피숍이 증가하고 동네빵집이 되돌아오진 않았으나 그녀들의 빵전쟁이 막을 내린 것은 ‘말 한마디’1)다.
물론 끊임없이 재벌들의 골목상권에 대한 원성이 높기도 했으니 그 때가 선거의 해라는 과도한 해석으로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겠다. 유력 대선 후보도 동일한 행보도 그 때 더해졌다 해도 ‘선거의 해’가 가지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결과는 받아들이겠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녀들의 ‘빵드세요’는 마감을 했으니까.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이거다. 어느 드라마 제목이었던가, ‘따뜻한 말 한마디’. 아니, 우리가 빵을 먹기 위한 ‘그 말 한마디 말’ 말이다. 생각할수록 말의 힘은 강하지 않은가. 변하지 않을 이 자본주의의 시대에 자본의 위력은 더욱 강하고 틈이 없다. 이 사회에서 자본에 의해 스러지지만, 그렇기에 또한 서민들 역시도 자본을 얻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에 대항하는 힘없는 빵들은 부풀기도 전에, 부풀 시간도 공간도 없이 쉬이 사라져버린다. 그런 자본이 (잠시) ‘멈칫’하도록 만든 말. 권력이 더해진 말이다. 자본과 권력은 본디 결탁하여 위력을 더하고 그들간의 끊임없는 결탁과 반목이 이뤄진다. 그들의 관계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맞물려 있으니까. 그러나 표면적으로 자본을 누를 수 있는 권력의 말을 만나면 우리는 열광한다. 그 말의 힘이 힘없는 빵들을 부풀게 해줄 이스트인 것마냥 기대하는 까닭이다. 말이 권력이 아니라 진정한 말이 되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경제사회를 떠나 민주사회, 시민사회라고 강조하는데, 시민사회의 권력은 시민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정말 권력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몰라서 그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매번 선거 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시민에게 ‘권력’은 없는가. 있지만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우선 활용되어야, 그것의 쓰임을 알 것이다.
우리들이 내밀어야 하는 말 한마디는 무엇일까. 세상에 소리쳐야 할 말 한마디, 아니 소리치지 않고 덤덤히 해야 할 말.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듣고, 싶다.
1) 2012년 대통령은 재벌들의 빵집 사업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었다. 물론 그전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로 재벌딸들은 잇달아 빵 사업에서 철수하기는 했다. 그것이 완전히 빵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말이다(한겨레신문, 201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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