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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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엄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이다. 엄마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등에는 동생을 업고 있었다. 동생은 나보다 2살이 어리니까 아마도 그 때 나의 나이는 5~6세 정도 됐던 것 같다.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빵인지 과자인지를 쥐고 먹으면서 기차길을 따라 걷다가 건널목도 건너서 한참을 걸었던 것 같은데, 엄마 손을 잡고 신나서 걷던 기억만 나지
그렇게 걸어서 어디에 갔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전에 엄마에게 그 기억을 얘기했는데, 그 때 우리가 갔던 곳은 ‘요리 강습 교실’이라고 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엄마는 남편과 두 아이 외에도 시아버지에 3명의 시동생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유일한 성인 여자였고, 집안 살림과 육아를 홀로 맡아
하셨다. 엄마는 고된 대가족 살림을 하던 중에도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은 즐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는 것 말고,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있었던 요리 교실을 찾아가셨다고 했다.
차가 없어서 그 먼 길을 걸어 가야했고,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서 두 아이를 업고 끌고 다녀야 했지만 그 시절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숨통을 틀 수 있는 시간이었던 터라,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엄마와 나 둘 다 기억을 못 하지만 정황상, 엄마의 뱃속 아니면 집에 갓 태어난 막내 동생도 있었을 거다.)
그렇게 엄마는 한식 조리도 배우고, 양식 조리도 배우고 나중에는 베이킹도 배워서 빵도 굽고 과자도 만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비롯한 성인 남자들의 입에는 양식 조리나 빵과 과자 등은 안 맞았기에 국이나 반찬만 만들 수 밖에 없었고 엄마의 재주는 그렇게 묻혔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와 동생들이 자라면서 간식으로 빵과 과자를 만들어 주셨고, 그제서야 엄마의 베이킹 재주는 빛을 발했었던 것 같다. 나와 동생들은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사브레, 버터 쿠키 등의 과자와 슈크림 빵 등, 동네 아이들과는 다르게 엄마표 핸드 메이드 간식을 먹으며 자랐다.
하이라이트는 어느 해 나의 생일, 엄마는 큰 딸을 위해서 손수 2층 케이크를 만드셨고, 동네 아이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어 주셨다. 그 때 동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이런저런 간식과 2층 케이크를 보며 부러워했는데, 정작 나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다소 투박한 케이크가 부끄러웠고, 제과점에서 파는 예쁜 케이크를 사줬으면 하고 바랐으니, 참으로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다.
그 때 한 번의 생일 파티 이후로는 케이크를 만들거나 과자를 구워 주셨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엄마는 베이킹에 취미를 잃으셨던 것 같다. 아니 대가족 살림에다 시아버지 병수발에 세 아이까지 키우느라 더 이상 빵을 구울 여유 따위는 없었다는 게 맞을 거다. 그렇게 엄마표 빵과 과자는 기억속에서 점점 희미해졌고, 나는 바라던 대로 제과점에서 사온 빵과 수퍼마켓에서 산 과자를 먹으며 컸다.
성장하면서 나는 더 이상 다를 수 없다 싶을 만큼 성격, 재능, 취향, 지향점, 외모 등 모든 것이 엄마와 달라졌다. 간혹 친 엄마 맞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고, 엄마도 어떻게 너 같은 애가 나한테서 나왔냐며 다름을 인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미련하고 답답하게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엄마를 닮지 않음이 전혀 아쉽지 않았고, 오히려 안심이 되고 다행이라 여겼다.
엄마와는 달리 나는 베이킹은 커녕 요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먹을 줄만 알았었다. 하지만 재주는 ‘바지 속에 넣으면 뾰족한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밖에 없는 송곳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어느 날 나에게도 바지속에 넣어 둔 송곳이 느껴지는 일이 생겼다.
직장을 그만 두고 쉬고 있을 때, 친구가 심심할 때 보라며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 DVD를 빌려줬다. 일본 여자가 핀란드에 가서 일본식 가정 식당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인데, 식당에 손님이 한 명도 안 오자, 핀란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시나몬롤을 구워서 그 냄새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시나몬롤이 너무도 먹고 싶어졌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식은 시나몬롤이 아니라 방금 오븐에서 구워 낸 계피향이 폴폴 나는 뜨거운 시나몬롤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동네에는 시나몬롤 전문점이 없었기에,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시판 호떡 믹스로도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 오븐을 구입하고 호떡 믹스를 사서 시나몬롤을 만들어 봤다. 모양은 어설펐지만 딱 내가 생각했던 계피향 폴폴 나는 따뜻한 시나몬롤의 맛이었다. DVD를 빌려준 친구에게도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그동안 먹어본 시나몬롤 중 가장 맛있다는 칭찬을 해서 나를 춤추게 했고, 결국 나는 베이킹의 세계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렇게 난이도 “하”의 머핀, 쿠키 종류부터 시작해서 이제 타르트, 롤케이크까지 웬만한 빵이나 과자는 모두 만들고 있다. 작년 말에는 30여년 전의 엄마처럼 나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베이킹 수업을 들었고, ‘베이킹은 반이 장식’이라는 강사의 지론에 따라 ‘맛있게’는 기본이고 ‘예쁘게’ 꾸미는 방법도 배웠다.
이제는 프리 믹스처럼 미리 준비된 재료가 아니라 밀가루와 다른 재료들을 계량하고 직접 발효하는 귀찮고 까다로운 작업까지 모두 내 손으로 하고, 점점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매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1주일에 한가지 정도는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베이킹에 대해서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바위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바위벽을 타 넘어 한 단계 도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베이킹은 더 이상 파다가 만 조각이 아니라 멋진 조각 작품이 되는 과정에 있다.
올해 들어서는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의 생일에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하거나 함께 먹고 있다. 이제 말을 하지 않으면 제과점에서 산 걸로 알 정도로 모양도 그럴 듯 해졌다. 조카들은 이모가 만든 게 사 먹는 것 보다 더 맛있다며 최고의 칭찬을 해 준다.
빵과 과자를 만들어서 밥벌이를 못 할 수는 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돈을 못 번다고 해서 프로의 깊은 맛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빵을 굽는 시간이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지난번에 망쳤던 케이크를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 내며 한 단계 도약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의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행복해진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겠다”는 나의 사명을 실현하고 있는데,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프로의 맛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침 올해 엄마의 생신은 어버이날이다.
생신과 어버이날까지 두배의 감사를 담아 2단 케이크에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