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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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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2일 01시 47분 등록

얼마 전 양산 남부시장을 걷다가 한 무리의 외국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단체로 시장 안을 다니며 구석구석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듯도 보였다. 그들이 입은 옷 위로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은 양산이 아니지만, 현재 양산에서 일을 하고 양산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양산 시민입니다

 

그들은 양산에서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아 양산시나 어느 복지센터에서 주최한 이주 노동자들의 정착을 위한 일종의 캠페인으로 보였다. 잠시 스쳐간 그들 이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생활에 정착을 하는 것과 그들이 시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 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들에게 대체 어떠한 구체적인 혜택이 있을까? 낯선 환경에서 소수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다수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일까? 너무 꼬인 시선으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엇이 되었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 다만 그들 역시 정당하게 이 곳에서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있다면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의 하나임이 분명한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캠페인에 나서게 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다문화 사회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일까?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등록된 외국인은 약 174만 명이며 미등록 인원을 포함할 경우 약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 대비 약 4%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최근 10년 간 약 3.2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이 가운데 약 64%에 해당하는 130만 명은 수도권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고,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거주 비율이 5%가 넘는 도시도 전국에 약 12곳이 넘는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 스무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외국인인 것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54%), 베트남(12%) 그리고 미국, 필리핀, 캄보디아 순으로 구성원이 많다. 특히 새롭게 결혼하는 부부 열 쌍 가운데 한 쌍이 국제 결혼이라는 통계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 결혼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다문화 가정 자녀의 증가로 이어지고, 전체 다문화 학생의 비율은 2014년 기준 1.1% (7 1천명)를 넘어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다문화 사회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다문화 사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가운데 용광로(Melting Pot) 정책샐러드 볼(Salad Ball) 정책이라는 것이 있다. 용광로 정책이라는 것은 여러 민족의 고유한 문화들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수십 개의 소수민족을 품으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표방하는 중국을 들 수 있다. 반대로 샐러드 볼 정책이라는 것은 개별 문화의 독자성을 존중하며 다양한 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샐러드 볼 안에 담긴 다양한 야채들 각각의 고유한 맛을 살리는 것과 같으며 대표적인 예로 미국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동화(同化)를 강조한 용광로 사회일까? 아니면 조화(調和)를 강조한 샐러드볼 사회일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다문화 사회를 향한 우리 개인의 시선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교육은 물론 나아가 취업을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인재상으로 국제적 교류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유학도 가고, 영어는 물론 제 2외국어 공부에도 혈안이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이 내 고향, 내 옆집에 와서 사는 것은 불편해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 문화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지역에 강력한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국익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뉴스를 보면 흐뭇해 하다가도,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이 한류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도 하고, 나아가 직장을 구해 종래에는 이민을 결정하는 것이 왠지 꺼림칙해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인의 다문화 수용성(37%)은 유럽 선진국의 절반(75%)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 한다.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우리 앞에 다가 왔다. 백의민족, 단일민족 이라는 말은 현실과 동 떨어진 말이 되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수 많은 이 땅의 젊은 이들을 독일로, 미국으로 보냈다. 더러는 자진해서 떠나기도 했고, 더러는 외화벌이의 목적으로 나라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들이 벌어다 준 외화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 가운데 상당수가 주류 문화의 수고로 이룬 경제적 여유를 이주민 문화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여유가 정말 순전히 우리의 힘만으로 이룬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후 전 세계 최빈국에서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일으키기 까지 얼마나 많은 나라의 지원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다문화 사회 문제를 부채와 보상의 차원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 어느 나라도 자국의 힘 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같은 땅에서 자라는 산물(産物)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던 바나나와 오렌지를 지금은 직접 키워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도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구성원이 변화함에 따라 그에 따른 기존 주류 문화 구성원의 인식과 정부의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다문화 사회는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은 도태되어 왔음을 역사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증명해오지 않았던가. 변화를 이해하고 준비해 갈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부정하고 변화된 사회 속에서 점차 도태 될 것인지.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하고, 또 찾을 것이다.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IP *.87.10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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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1:09:36 *.124.22.184

우리 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호혜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저 역시 다문화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 입장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의 교육이었어요. 우리의 전통을 알려주고, 문화를 알려주는 내용이 주였죠. 우리도 잘 모르는 우리 전통과 문화를 그들에게 알려줘야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ㅎㅎㅎ

그래서 전 '엄마'라는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아이들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엄마역할로 했었어요. 


다문화 사회에 대한 준비는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가 없는 것과 비슷해요. 이미 도래했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거죠.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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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2:37:04 *.226.2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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