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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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화 만들기
5월에 이어 두번째 오프
모임. 이번에는 경주에서 1박 2일이다.
이번 수업 과제의 주제는 ‘나의
신화 창조하기’. 변경연을 시작하면서부터 선배들에게 이런 과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두번째 달에
벌써 하는구나. 그런데 신화를 만드는 방법이 ‘나의 원형을
반영한 신’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신화’를 골라서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나의 신화” 창조하기다. 나의 원형 찾기라면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골랐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신화란다. 사실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점점 신들에게 짜증이 났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신들이
이렇게 찌질하고 속이 좁아서 여신들은 질투에 저주에 복수만 하고 있고 남신들은 바람에 납치에 강간까지… 그렇게
속 터지는 느낌으로 읽다가 유일하게 공감이 되고 맘에 드는 신이 물의 신 ‘아켈로스’였다. 정말 시원한 물 한잔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하고 청량감이 드는
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신화의 주제로 아켈로스를 선택했고 나의 원형인 아르테미스와 아테나의 축복을
받고 헤라의 저주를 받은 ‘알로하’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창조하는 작업은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의식’이었다. 물의 신이니 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었는데, 도무지 물로 뭘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모임 당일
아침까지 생각이 안 나는 바람에 경주 가는 차안에서 머리를 쥐어짜서 겨우 ‘의식’을 완성했다.
경주의 모임 장소는 “소소가”라는 이름의 한옥 펜션. 목공을 하는 남편과 요리를 잘하는 아내가
같이 운영하는 작지만 너무도 예쁜 펜션이다. 장소 구하느라 고생했을 기상씨에게 고마웠다. 짐을 풀자 마자 바로 과제 발표를 진행했다. 신기하게도 2명만 헤르메스로 겹치고 모두 다른 신을 골랐다. 형식이 비슷하고
각자의 개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는 교육팀과 선배들의 평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비슷한 형식
안에서도 각각의 독특한 개성이 보였고, 또 평소에 알던 모습과는 다른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3명의 신화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내가
아직 많은 부분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신화보다는 의식에서 정성과 개성이 돋보이는 동기들도 있었다. 개개인에게
맞춤형 스티커를 부착한 공진단을 준비해 온 보따리아. 그 전날 동기들에게 나눠줄 선물 보따리를 싸며 보따리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했든 즐거웠을 것 같은데... 나만의 착각일까? 그리고 10명이 넘는 사람의 성대모사를 준비해 온 뚱오공과 이야기와 딱 맞는 화면에 멋진 사운드도 준비해 온 아더왕, 모닝까지. 부족한 시간 중에도
성의 있게 준비하고 연습했을 모습이 떠올라 감동적이었다. 반면에 경주오는 차 안에서 급조한 나의 의식은
다행히도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전날 만든 파운드 케잌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연습을 안 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미리
한번 해 봤더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을 견딜 수 없어서 안 했을 수도…
모두의 발표가 끝나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과제 발표 때는 미처 못했던 얘기들, 그냥 요즘 지내는 얘기들, 예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도 못 풀어서 힘든 이야기. 술의 힘을 살짝 빌린 솔직한 뒷담화까지. 어쩌면 모두가 공감하지는 못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를 믿고 용기내서 자신의 “못난” 이야기를 나눠준 분들이 고맙고 좋았다. 이야기를 들을 때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때를 ‘그분의 못난 모습’이 아니라, 승호 선배 말처럼 ‘누군가의 속살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갔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7월에는 우리의 속살을 조금 더 공개하길 기대하며 벌서부터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