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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0일 11시 07분 등록


몇 달 전 인공지능과 인간의 번역 대결이 있었다. 바로 1년 전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참패를 당한 수모를 다시 겪는 건가 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인간이 완승했다고 한다. 대결 방식과 평가 기준에 불공정성의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맥을 파악하여 이해하고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를 선택한 자연스러운 번역은, 아직은 기계가 사람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번 대결을 지켜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아직은 인간이 조금 낫다고 하지만 조만간 기계가 따라 잡는 날이 올거라며, 이제 드디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이제 우리는 정말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공부를 그만둬도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걸까? 최근에 나에게도 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40대를 넘긴 성인의 경우에는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특히 그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인터넷 상에서 단순 정보 획득이거나, 1년에 한 두번 정도의 해외 여행 때문이라면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휴대용 통역기를 사용하는 것이 제한된 리소스(돈과 시간)를 훨씬 더 유용하게 소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휴대용 통역기를 사용해 현지인과 대화를 시도하는 아직은 다소 우스꽝스럽지만얼리 어댑터(Early Adapter)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성인은 그렇다치고 아이들은 어떨까? 사실 자녀를 둔 성인들이 궁금한 건 본인의 영어 공부보다는 자녀의 영어 공부일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갈 세상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인공지능이 적용된 번역기와 통역기를 사용하게 될 거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실시간으로 통역되는 통역기를 앞에 두고, 각자의 자국어로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는 모습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유쾌한 상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30대 이하)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한다.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직.간접 경험 때문이다.

 

첫째,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언어 습득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를 배우는 것이고 사람을 사귀게 되는 것이며, 학습법을 익히는 것이다. 현재 가장 정확도가 높은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 번역기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마이크 슈스터는 외국어 공부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언어를 배우면 다른 분야를 학습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언어 환경에서 다양성을 배웠지요. 그리고 그것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언어 학습은 계속돼야 합니다

 

둘째, 앞으로의 세상은 인공지능의 세상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시대, 지구촌 아니 지구홈의 시대가 될 것이다. 1년에 몇 번 해외여행을 가냐의 차원이 아니다. 고급 정보 획득에서 교육, 오락, 휴먼 네트워크, 비즈니스까지 이제는 한국에서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내 수공업으로 시작한 작은 비즈니스가 전세계적 브랜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더 뛰어난 우리 나라 제품은 그냥 국내 최고 수준에서 머물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아예 해외 시장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만이 아니라 지식 상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다지 특별한 내용이 아닌데도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한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다뤘기 때문인데, 우리 나라 작가, 지식인 중에도 그 정도의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작가, 지식인 중에는 전세계적으로 읽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없을까? 현재 국내 도서 시장은 1 2,000부만 찍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이래서는 책을 써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능의 낭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독자까지 겨냥한 컨텐츠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서 정확하게 저자의 의도를 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안 통했다는 핑계를 댈 것 없이 처음부터 영어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면 된다. 말도 안 된다고? 현재 우리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10~20년 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사람이 열매를 거둘거라고 본다.

 

셋째,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더 넓은 세상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배우고 국제적인 환경을 접하며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더 큰 꿈을 갖게 된다. 공공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국내 공무원뿐만 아니라 UN 등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는 꿈을 가질 수도 있다. 국내에서 이미 인정받고 국제적으로도 통할 컨텐츠 및 능력을 갖고도, 영어를 못해서 해외 진출이 좌절됐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비슷한 재능과 노력을 하고도 한국에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국내용이 아니라 전세계용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세상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꿈과 사고에 한계를 갖지 않게 하는 것.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젊은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데 왜 성인들은 안 배워도 괜찮다고 한 걸까? 앞서 성인에게 한 대답은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성인들이 물어보는 경우다. 마흔을 훌쩍 넘은 성인이라도 내가 아끼는, 좋아하는 성인들이 물어볼 때는 어떨까? 나는 갈릴레이에 빙의되어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영어는 배워야한다.”



IP *.222.2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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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14:58:51 *.226.22.184

나이 먹어서 영어배우기가 쉽지 않아서 영어잘하는 수정씨에게 물어본걸 거에요.

간단한 회화는 이제 파파고(네이버번역기)가 잘 해주고 있어요. 또 개선되겠죠.

수정씨 이야기 대로 문화를 알고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본래의 언어가 좋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편이 점령하기보다는 병행하는 시대가 앞으로도 제법될 거 같긴 합니다. 

몇일전 영어공부를 할까하고 꺼내본 것이 있었는데, 저의 행동이 도촬된 듯 합니다. 그래요. 영어는 배워야 할 거 같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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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16:02:28 *.18.218.234

이 칼럼 좋네요~~ 수정씨의 경력과도 어울리고!

해외저자 연구할 때엔 내가 영어가 좀 더 편했으면 좋았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구요.

꼭 성공의 조건으로서만이 아니라 지평을 넓히는데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공부는 여전히 의미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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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1 11:35:19 *.106.204.231

영어 진짜 좋아하는 과목인데 실제는 잘 못하죠.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변경연처럼 이런 과정으로 영어공부하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제 아들 영어점수 가져왔는데 말을 못하겠네요. ㅋ.

영어로 된 누나의 책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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