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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7일 11시 49분 등록

부탄, 방부제가 뿌려진 히말라야 산자락의 꽃피는 산동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의 문명은 발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에덴동산은 태초에 있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이 사는 사회는 에덴동산에서 점점 멀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좀 더 자연이 보존되어 있을 때 몽골, 티벳 등을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부탄 역시 같은 이유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하루 200-250 달러라는 체류비-체류비라 하지만 속내는 환경오염비가 아닐까 생각한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 갈 수 없는, 아쉬운 마음 속 여행지로만 남아 있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환경오염비가 일종의 자연을 보존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하여 부탄의 옛 모습 그대로 지켜주는 것이라 여겼기에 수긍은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올 해가 부탄과의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라 6-8월에 한해 체류비가 대폭 감면된다는 기사를 접하고 즉석에서 부탄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히말라야 동쪽에 있는 동화 속에나 있을 것 같은 부탄왕국에 발을 딛게 되었다.

 

신호등이 없는 도시, 슬레이트 지붕의 정부종합청사, 나무 울타리의 왕궁

첫 날은 부탄의 수도, ‘팀푸로 가서 여정을 풀었다. 사실 하루가 끝나갈 때까지 그 곳이 수도인줄 몰랐을 정도로 소박한 도시였다. 무엇보다 거리에 신호등이 없다. 교통경찰 여러 명이 거리에서 수신호로 교통 흐름을 통제한다. 우리 눈으로 보면 잉여인력또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할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산 중턱에는 새로 심은 듯한 나무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작년에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사연인즉 앨비스 프래슬리를 담은 80년 생 부탄국왕(정말 잘생겼다!) 2016년 아들을 보게 되었고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108,000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불교국가이니 108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둔 듯 한데 탄생축하로 나무를 심는다는 발상 자체가 아름답다. 현재 국왕은 5대 국왕으로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국왕 스스로바꿨으며 그의 아버지 4대 국왕은 GNH(General National Happiness, 국민행복지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행복 우선의 정책을 펼친 장본인이다. 후진국일수록 빈부 차이가 크고 왕궁이나 정부기관 등은 으리으리한 법이다. 그런데 부탄의 정부종합청사 건물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부종합청사 옆에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울타리 너머 왕궁이 있고 그 곳에 현재 국왕이 살고 있다고 한다. 왕궁인데 높고 견고한 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울타리라니. 게다가 규모도 작다. 건축에서 지도자들의 소박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들이 천수를 누리는 나라

보통 시골에서는 아침 닭 우는 소리에 깨야 하는데, 부탄에서는 밤에 개 짖는 소리로 잠을 못 이루었다. 낮에는 그늘진 차 밑에서 늘어지게 자던 개들이 서늘한 밤이면 깨어나 그렇게 짖어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놀아야 할 놀이터에는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놀이터야말로 잔디밭과 풀밭으로 소들에게는 먹을 것 천지인 셈이다. 식사 도중 고기로 만든 음식이 제공이 되길래 불교국가인 부탄에서 가축 도축도 하냐고 했더니 모든 고기는 인도에서 수입되는 것이라 한다. 인도의 거리에서 마주친 그 많은 병든 소들이 떠오르며 수저를 놓았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 하여 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이렇게 소고기 수출 1-4위를 다툰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부탄에서는 소도 닭도 돼지도 도축 당하지 않는다. 소는 소젖을 짜기 위해서 키우고 닭은 계란을 얻기 위해서 키운다고 한다. 모두 하늘이 내린 수명을 다 누린 후 생을 마감하지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닭도 그럼 그냥 그대로 두나?’하며 다소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나를 보며 나 역시 얼마나 동물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보지 않고 실용성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 젖어 있나 하는 생각에 반성이 되었다. 동물복지가 구현되는 곳, 동물들이 천수를 누리며 사는 곳, 동물들의 천국 바로 부탄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 생명을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부탄이 인간이라는 존재, 인간이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외국인도 누리는 무상 의료 서비스

식사를 하던 중 큰 아이가 갑자기 이가 아프다고 하여 근처 -라고 하지만 한참을 차로 달려- 병원에 갔다. 부탄 국민들에게 무상의 의료가 제공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외국인 여행객에도 적용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충치로 치아에 구멍이 난 것이니 땜질을 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사후 통증관리가 걱정되어 약만 처방 받기로 했다. 여하튼 아이의 치료를 하면서 과정을 보아하니 접수를 할 때 현지인도 주민등록번호 등의 신상정보를 적지 않고 외국인 역시 여권번호 등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처방전도 그대로 환자에게 주고 의사는 따로 보관을 하지 않는다. 국가에 청구도 하지 않는지 차트도 없다. 말 그대로 야전병원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실 간단한 진료와 처방은 각종 등록절차와 검사가 꼭 필요한 건 아니긴 하다.

 

전 국민에게 의료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나 잠깐 체험한 분위기로는 의료의 수준은 높지 않을 것 같았다. 암환자의 경우나 큰 수술의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인도, 태국, 싱가폴 등의 외국으로 환자를 보내되 항공비를 포함한 제반비용이 역시 국가에서 지원된다고 한다. 사회주의가 이상적으로 구현된 케이스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과연 이 나라 사람들이 암에 걸릴 일이 많을까? 당뇨나 고혈압, 불면, 소화불량 등으로 매일 그리고 평생 약을 먹을까? 선진화된 의료기술을 가진 나라에서의 환자들의 삶의 질과 비록 의료수준과 시스템은 후진적일지라도 스트레스가 적고 생활습관이 건강한 이 나라에서의 환자들의 삶의 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아원이 없는 나라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고아원을 방문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불행하고 따라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아무래도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탄에 와서는 비록 GDP 기준으로야 우리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한 사람들의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이 나라에 무슨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오히려 주제 넘어 보였다. 오히려 우리가 행복’, ‘정신적 풍요에 대해 수혈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후원의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원조를 받아야 하는 나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여도 여기 아이들은 결핍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 거 같았다. 영어와 종카어가 공용어인 까닭에 부탄 아이들은 영어를 잘한다. 한국의 아이들과 편지 교류를 통해 행복이 교류되면 어떨까 하는 부탄-한국 행복소통 프로젝트를 머리 속에서 즉흥적으로 떠올렸다. 생각난 김에 얼른 방문하자 싶어 가이드를 비롯한 현지 사람들에게 고아원에 대해 물었으나 이들은 고아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듯 했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해서 구글 검색을 들어갔고 구글에서 SIMTOKHA 고아원이라는 곳이 있다고 하여 그 동네를 가보니 마을에서 나이가 지긋한 분부터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글에서 유일하게 나왔던 그 사이트는 후원금을 받으려는 사기 사이트였던 셈이다. 그렇다, 부탄에는 고아원이 없다. 고아가 생길 경우 마을의 사찰에서 아이들을 키운다고 한다. 또는 조부모나 외조부모가 키우고 아이의 교육비를 포함한 추가의 비용이 지원된다고 한다. ‘끈 떨어진 연으로 표현되는 고아들의 삶은 여기에서는 다소 다른 것이다. 이웃이라는 끈, 연민과 보살핌이라는 끈으로 만들어진 안전망이 있다. 시간 내어 찾아본 고아원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고아원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나에게는 더 큰 기쁨이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꽃 피는 산골 같은 아름답고 온화한 나라, 부탄. 동물들도 한가롭고 사람들도 느린 곳. 대를 이어 내려오는 국왕의 노력과 불교라는 종교의 힘으로 불국토가 실현되는 나라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불어오게 될 변화의 바람을 히말라야 산맥도 막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변화를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구현하는 젊은 부탄인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한국에서 5년 유학을 해서 한국어가 유창한 25세의 부탄 청년 리첸의 말로 부탄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다.  

 

부탄도 언젠가는 변화하게 되겠지만 변화보다는 여전히 지킬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발전된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 보니 그들이 잃어버린 가치가 우리 나라(부탄)가 지켜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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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23:55:14 *.226.22.184

부탄 내가 가고 싶어하는 나라인데...^^

이 글을 읽으면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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