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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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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4일 02시 46분 등록

무엇에 물렸는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새끼 손톱 크기 만한 자국이 생겼다. 아무래도 벌레에 물린 듯 하다. 더운 여름 밤 창문을 열어두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방충망과 창틀 아래 틈 사이로 작은 벌레들이 자꾸 들어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범인은 나의 작은 방 안에 있는 듯 한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토요일 낮부터였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조금씩 가렵던 것이 이제는 참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크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데 주말 내도록 신경이 쓰였다. 자꾸 긁으면 부스럼이 생길까 급한 대로 침도 발라보고, 손톱으로 십자가도 만들어보았다. 신경을 안 쓰려고 애를 써보지만, 여전히 자꾸만 손이 간다.

 

결혼이 넉 달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들어 부모님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횟수로는 일주일에 한 통 많으면 두 통 정도다. 결혼을 앞두고 횟수가 늘어 그나마 일주일에 한 두 통이다. 그전에는 한 달에 전화 한 두 통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내가 먼저 전화를 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늘 아쉬운 쪽은 부모님이었다. 내가 해야지 해야지 하는 다짐 끝에 결국 전화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부모님은 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끝에 결국 전화를 하게 되는 식이었다. 늘 그랬다. 죄송한 마음은 잠시 나는 또 일상의 파도에 파묻혀 그냥 저냥 두 분을 마음 한 구석에 두고 지낸다.

 

어쩌면 두 분께 나는 지금 나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벌레 물린 상처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신경을 덜 쓰고 지내야지 하면서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 딱히 쓸 일도 없고 크게 아프거나 하지도 않은데, 주말 내도록 신경이 쓰이는 그런 존재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두 분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받는 것일까. 흔히 자식이 부모로부터 과한 도움을 받는 것을 '부모의 등골을 파낸다'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웃 나라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부모의 정강이뼈를 긁는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의 등골을 파내고 정강이뼈를 긁어 만든 부스럼으로 키워 낸 당신들의 아들딸이 내보인 무심함과 심드렁함 앞에 그들은 대체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을까.

 

간밤에는 희한한 꿈을 꾸었다. 나에게 아이가 생기는 꿈이었다. 딸인지 아들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의 가슴 벅찬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품 속의 아이가 갑자기 배밀이를 하는 순간 내가 그만 아이를 선 채로 떨어트려 버렸다. 쿵 하고 아이의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이었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소리도 없이 눈물이 났다. 너무 가슴 아프고 황망한 경험이었다. 그 후로 아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도 없이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후로도 한 동안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누군가 아이들은 원래 다치면서 크는 거라고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넘어져 코도 깨고, 친구가 실수로 던진 돌에 맞아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번지기도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마다 부모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다. 간 밤의 꿈을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 가슴이 철렁하는데 진짜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할까.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그린 만화 한 편이 기억난다. 까마득히 높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주인공은 그 나무에 못을 박으며, 그것을 발판 삼아 까마득한 나무 기둥을 평생 기어 올랐다. 꼭대기에 다다라서야 주인공은 그곳에서 희미하게 웃으며 올라오느라 힘들지는 않았니?”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한다. 자식들은 늘 그렇게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자란다. 못 하나가 박힐 때 마다 저 나무 기둥 꼭대기에서는 끙끙하는 한숨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다만 모를 뿐이다.

 

선조 시대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곧잘 지었던 이안눌(李安訥)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가 함경도 북평사로 가 있을 때 쓴 <집에 편지를 부치며 (奇家書)> 라는 시가 있다. 고향 집으로 편지를 부치며, 변방에 자식을 보내놓고 근심에 쌓여 계실 늙으신 부모가 생각이 나, ‘어머님! 이번 겨울은 마치 봄처럼 따뜻합니다라고 거짓말로 편지에 적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欲作家書/設苦辛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恐敎愁殺/白頭親 흰머리의 어버이 근심할까 저어하여,

陰山積雪/深千丈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 장인데

却報今冬/暖似春 올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적었다네

 

얼마 전부터 부모님께 가끔씩 안부 전화를 드리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 당신의 말과 말 사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식에 대한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새어 나오 듯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으신 듯도 하다. 자식이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아직 멀었다. 간밤의 꿈만으로는 부모님의 마음을 십 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안눌의 시에서 작은 힌트나마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조금이나마 당신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다. 좀 더 자주 전화 드리고 안부를 여쭙는 것이다. 하려고 마음 먹으면 크게 어렵지도 않다. 의지의 문제다. 가볍게 시작하자. 그렇게 내가 지금껏 두 분의 가슴에 박은 대못들 가운데 작은 것부터라도 하나씩 빼드려야겠다.

 

IP *.62.17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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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22:13:14 *.124.22.184

"올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적었다네." 한시의 이 부분은 모든 자식을 반성하게 만들죠?

이상하게 전화 자주 드리는 게 뭐라고 잘 안되는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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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8:10:44 *.106.204.231

벌써부터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다니 뭐든지 빠르네. 나는 10분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도 잘 안가는데. 날 부끄럽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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