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뚱냥이
  • 조회 수 943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7년 8월 14일 11시 18분 등록

바람을 심다

 

 

나무 그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으로 이마를 닦아 본다.

 

흠뻑 젖은 바람을

다시 허공에 놓아본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미안하다 말한다.

 

그래, 나무 옆에 바람을 심어보자.

바람도 먼 길 떠나지 않아 좋다 말한다.

 

이제는 내가 이따금 찾아가도

바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푸르다.

 

나무그늘에 앉아

바람 한 점 따다가 이마를 닦아 본다.

 

 

뚱냥이의 <바람을 심다>란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 홀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한 사람.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화자의 땀을 증발시켜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준다. 그리고 바람은 정처없이 불어오던 그 길을 따라 다시 불어간다. 마치 허공에 손수건을 날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3절에서는 화자의 소망이 투영된다. ‘바람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화자는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선풍기처럼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그래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오히려 미안한 감정을 품었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숨긴다.

 

4절에서는 화자의 적극성이 드러난다. 자연의 바람은 흘러가는 것이 당연한 법. 화자는 나무 옆에 바람을 심어 언제든 바람을 맞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먼 길 떠나지 않아 좋다는 바람의 마음은 화자의 마음이다. 바람을 잡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제 화자가 가끔씩 찾아가도 바람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바람에 대한 서운함이나 아쉬움이 없다. 화자가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바람이 화자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입장의 전환이다. 화자는 나무그늘 아래 다시 앉는다. 이제 바람은 바람나무의 잎이요, 열매다. 언제든지 바람 한 점을 손으로 따서 이마의 땀을 닦을 수 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즐겁구나

 

여보세요

우는구나

 

여보세요

술 마셨구나

 

여보세요

무슨 일 있구나

 

여보세요

자장 자장

내 새끼 잠 못 드는구나

 

 

뚱냥이의 <여보세요>란 작품이다. 시의 내용과 구조는 단순하다. 부연 설명도 굳이 필요 없다. 화자는 누군가와 매번 통화를 한다. ‘여보세요란 말로도 화자의 감정을 단 번에 알아차린다. 한 마디 말만 들어도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는 존재는 누구 일까? 그렇다. 바로 어머니다.

 

여보세요는 통화를 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큰 감정이나 느낌이 전달되기 힘들다. 하지만 그 미세한 감정까지도 느끼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단순반복 구조로, 있는 그대로 들어냈다. 분명 통화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터. 하지만 많은 여백과 비움으로 대화하는 두 사람 모두의 감정을 전달한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을까?  내 속으로 낳는데 왜 그걸 몰라~~”

IP *.140.65.74

프로필 이미지
2017.08.14 22:23:12 *.124.22.184

두 번째 시는 뭉클하다.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한 편과 비슷하네.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라고 묻는 손자에게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라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프로필 이미지
2017.08.14 22:37:09 *.18.218.234

그대 이제 필명을 이인화로.

아 이미 이인화가 이인화(二人化)를 필명으로 했으니 아니될 말인가.

시인과 평론가를 겸한 글, 1인 2역이 가능한 재주를 탐내며.


이번 책 읽으며 성한씨 생각 많이 났어요(으잉???).

이젠 관찰=뚱냥으로 등식화 될 듯.

그렇쟎아도 관찰쟁이라 생각했는데 시, 희곡 등이 어울릴 거 같아.

프로필 이미지
2017.08.15 08:40:24 *.106.204.231

시가 참 좋아. 이 좋은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시 해석이 너무 좋네.

프로필 이미지
2017.08.17 13:06:59 *.75.253.245

여보세요.. 에서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


시 잘 봤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32 칼럼 #16 왜 나는 페미니즘이 싫을까 (정승훈) [7] 정승훈 2017.08.20 1055
4731 (보따리아 칼럼) 약명시(藥名詩)와 함께 하는 탕전실 일기 [7] 보따리아 2017.08.20 954
4730 #15. 일상으로의 복귀 [2] ggumdream 2017.08.14 921
4729 우리에게는 해독이 필요합니다 [6] 송의섭 2017.08.14 942
» <뚱냥이칼럼 #15> 뚱냥이 시미학 산보① [4] 뚱냥이 2017.08.14 943
4727 #15. 반칙왕을 꿈꾸다_이수정 [3] 알로하 2017.08.14 923
4726 #15 - 목적지만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가는 길이 목적인 여행 [5] 모닝 2017.08.14 912
4725 칼럼 #15 보은(報恩)_윤정욱 [2] 윤정욱 2017.08.14 962
4724 칼럼 #15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정승훈) [6] 정승훈 2017.08.12 1064
4723 (보따리아 칼럼) 고인을 기리며 남은 효를 다짐하다 file [3] 보따리아 2017.08.11 969
4722 쑥스러움을 딛고 스스로를 표현하기 [4] 송의섭 2017.08.07 913
4721 (보따리아 칼럼) 부탄, 방부제가 뿌려진 히말라야 산자락의 꽃 피는 산동네 [1] 보따리아 2017.08.07 1038
4720 #14. 40대의 재롱잔치_이수정 [3] 알로하 2017.08.07 910
4719 <뚱냥이칼럼 #14> 뚱익스피어의 '뚱냥이의 하루' [1] 뚱냥이 2017.08.07 936
4718 #14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정학) [2] 모닝 2017.08.07 910
4717 #14. 여름산행 file [1] ggumdream 2017.08.07 915
4716 칼럼 #14 시계 도둑은 말이 없다 [2] 윤정욱 2017.08.07 925
4715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913
4714 <뚱냥이칼럼 #13> 일상으로의 초대_2 [1] 뚱냥이 2017.07.31 921
4713 삼국유사속 역사기행은 어떠신지요? [1] 송의섭 2017.07.31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