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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8일 23시 51분 등록

    [5차 오프 모임 후기]

 

2017-08-26

티올(윤정욱)

 

  아침에 눈을 뜨니 기분이 묘하다. 간밤에는 꿈에 함께 인도를 다녀 온 형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찰나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늘 그런 식었다. 2008 12월 함께 인도를 다녀온 여든 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가 있었다. 185센티가 넘는 훤칠한 키에 세상 가득 소탈한 표정. 또 어떻게 보면 꽤 오랫동안 신림동 고시원에서 고생을 했을 법한 외모. 그의 이름은 권완수다. 인도 선재수련을 이끈 정토회라는 불교 단체, 그 안에 속한 청년정토회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은 했던 그는 선재 수련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스태프 가운데서도 리더 격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쉬지 않고 아재 개그를 보이며, 때로는 조원들의 찬사를, 또 때로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내가 그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 일화가 있다.

 

  한 조에 10명씩 8개조 여든 명이 인도에서의 한 달간의 수련을 앞두고 2 3일 간의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낯선 이국 땅에서 경험하게 될 어려움과 앞으로 지켜야 할 규율들을 몸에 익히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휴지를 사용할 수 없었고 음식을 남길 수가 없었다. 항상 식사가 끝나면 발우 그릇에 청수를 부어 물김치를 이용해 그릇을 싹싹 닦아내고는, 그 물을 마셔야 했다. 발우 공양 시간이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쭈뼛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완수 형은 그릇을 닦고 남은 물을 웃으며 마셨다.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주저하던 조원들 하나 둘씩 그를 따라 발우 그릇을 씻은 청숫물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완수 형은 항상 그랬다. 항상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생색내지 않았다. 완수 형의 매력은 인도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화합의 순간에는 누구보다 많이 망가지는 못난이였고, 갈등과 고민의 순간에서는 항상 누구 보다 먼저 행동했고 모범을 보였다. 인도를 다녀 오고 나서는 다른 조원들과 함께 완수 형을 두어 번 만났었나, 그 뒤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난 2012, 나는 우연히 완수 형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해 봄 국회의원총선거에 청년당 대표로 서울 마포을 지역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놀라는 한 편 그 사람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러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여러 군소후보들을 향한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을 모르는바 아니다. 혹 어떤 이는 그들의 행동에 숨은 목적이나 후보로 나왔다는 명목 그 자체를 위한 의미 없는 출마라고 비난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의 공략과 찬찬히 훑어보며 다른 지역구 전체를 대표하는 의원으로서의 부족한 자질도 분명 보였지만, 다른 상대 후보들에 비해 명확하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한 것들도 있었다. 선택은 지역구 주민들의 몫이다.

 

  완수 형과 그의 선거캠프가 수 개월 동안 준비하고, 한 달 남짓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그들의 젊음과 열정을 불태워 그들이 얻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번 오프 모임을 하면서 나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그 때 완수 형과 선거 캠프의 일부 사람들과 함께 입었던 녹색 티셔츠를 들고 갔다. 우리 모두가 인도에서 함께 했던 한 달의 추억을 녹색 티셔츠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억 만으로는 불안한지 잊지 않기 위해 곳곳에 지지 않는 묵은 때도 남겨 두었다. 연구원 동기들을 만나 오랜만에 생각난 옛날 추억에 들떠 그만 한 시간 반 가까이를 혼자 떠들었다. 다 마치고 나서야 그들의 피곤한 안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완수 형을 꿈에서 본 게 반가운 탓이었을까 쓸데 없이 인도에서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오프모임 때는 매번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실패다. 한 번 더 동기들과 선배들 앞에서 의뭉스레 막내 찬스를 쓰고 빠진다.

 

  완수 형과 그를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정성으로 세상이 얼마나 밝아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비추기 위해 그가 보여준 행동들이었다. 모든 행동하는 사람은 항상 옳다. 성과의 유무를 떠나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의 침묵하는 다수는 항상 저 혼자서 말이 많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각자의 인생을 미리 단정 짓고 끝끝내 행동하기를 거부한다. 마치 직접 살아본 것처럼 말이다. 말이 많으면 행동이 줄고, 행동이 줄면 삶의 힘의 사그라진다. 적게 말하고 더 많이 행동하는 그런 내가 되어야겠다.

 

  , 그런데 벌써 후기가 길다.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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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5:51:59 *.124.22.184

완수형. 모임 때 얘기가 없었던 인물이라 새롭네.

본인에게 쏟아졌던 많은 피드백, 질문이 불편하진 않았나 모르겠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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