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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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몇 번인가 개를 키웠다. 하지만 모두 끝이 안 좋았었다.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은 개도 있었고, 큰 길 가까이에 살았던 탓에 풀어놨다가 차에 치여 죽은 개도 있었다. 그냥 사라졌던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꼭 동네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에 모여 수육 같이 생긴 고기에 술을 드시며 잔치를 했었다.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가 개고기를 무척 좋아하셨고, 엄마는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개고기 요리를 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곤혹스러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왜 내가 호랑이띠라서 개랑 상극이라 개들이 잘 못살고 죽어 나간다고 하셨던건지…
마지막으로 개를 키웠던 건 대학생 때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때였다. 친한 선배가 사정이 생겨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며 나에게 키워보라고 떠맡기다 싶이 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비글 종의 작은 강아지였는데, 훈련도 잘 되어있고 사람도 잘 따라서 금방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 다만 아침에 집에 혼자 두고 학교에 갈 때마다 어찌나 서럽게 울며 매달리는지, 아기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워킹맘의 심정을 너무 일찍 체험한 게 흠이었달까?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취업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사라지게 하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면서 강아지가 사라졌다. 같이 자취했던 친구와 울면서 온 동네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정말 호랑이띠의 저주인건지…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요즘 공원에서 운동할 때 반려견과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상처로만 끝났던 강아지와의 인연이 반복될까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반면에 고양이는 키웠던 적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까다롭고 키우기가 어렵다는 편견과 부정적인 미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처럼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20여년전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친구가 있다. 그때부터 친구는 사인 옆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고양이와 관련된 별명을 사용했다.
요즘에는 우리 나라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만해도 주변에서 고양이를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개만큼이나 쉽게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할퀼까봐 무섭기도 하고 나쁜 인식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예쁜 고양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친한 척을 하며 다가갔었다. 놀랍게도 고양이는 나를 할퀴려고 덤비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때로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예쁜 짓도 했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고양이를 신성시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한 곳에서는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길고양이가 어떤 곳에서는 가족, 친구와 다름없었다.
개와는 달리 아직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길고양이 학대니 감소 대책이니 등의 소식을 들을 때면 마법과도 같이 파란 나라의 행복한 고양이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