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7년 10월 28일 22시 21분 등록

9년 전 2008 9월의 어느 날. 키 크고 얼굴은 주먹만한 분이 한의원으로 내원한다.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하던 안영학 선수였다. 운동선수라면 우락부락한 인상일 거 같은데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한 인상과 순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저녁을 같이 먹던 어느 날, 고기 몇 인분이 한 자리에서 증발하는 것을 보고 운동선수는 운동선수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2009 12월까지 수원 삼성에서 활약하던 그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예선에 북한대표로 출전한다. 북한대표라는 그가 어떻게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그의 국적이 북한이 아니라 조선적(朝鮮籍)’이라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안영학 선수를 알기 전까지 조선적의 존재도 개념도 몰랐다. ‘조선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잠깐 시간여행을 하자.

 

광복 전 일본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재일 조선인의 국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조선 국적, 즉 조선적(朝鮮籍)을 발급받는다. 당시만 해도 임시국적이었던 셈이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19488월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재일 조선인들은 조선적이라는 임시 국적, 아니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로 생활한다. ‘임시로그어진 휴전선이 2017년 현재까지도 존재하듯, 당시만 해도 그 임시 국적이 지금까지 존재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개인적 이유로 해방 후에도 재일(在日)’을 선택해야 했던 적지 않은 동포들이 지금도 조선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안영학 선수도 그러한 재일동포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재일 조선인 3인 안영학 선수는 어릴 때부터 그저 축구가 좋았다고 한다. 월드컵 무대에서 뛰고 싶은 꿈을 품은 그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한국이나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거나 조선적(혹은 북한 국적으로)으로 북한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예선에 북한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었다.


남아공에 다녀온 그가 뜻밖의 선물을 들고 한의원으로 왔다. 정대세 선수를 포함한 북한국가대표들의 사인을 전부 받아온 것이었다. 북한국가대표들의 사인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그리고 뜻 깊은 선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수원삼성과의 계약이 끝나 한국을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출국하기 바로 전날 그는 본인이 입던 유니폼을 선물하고자 한의원을 찾아왔다. 선물에 담긴 그의 섬세함에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5 4월 중순, 달라이 라마가 일본에 온다고 하여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듣기 위해 도쿄로 갔다. 당시 세월호 1주기였기에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라는 책에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를 담아 유가족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도쿄로 간 김에 요코하마로 가서 안영학 선수를 만났다. 그는 2010년 한국을 떠난 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의 한국 정부는 조선적 보유자의 한국 방문 시 필요한 여행 증명서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한, 단순한 여행, 관광으로도 한국 입국은 힘든 상태였다.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하죠. 한국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축구를 통해 남북한 관계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뿐일 거 같아요. 조선적을 가지고 북한대표이면서 한국에서도 뛰었으니까요. 남북한 친선경기라든가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정치적 지식은 제가 별로 없지만, (축구공)(경계를)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엄격히 말하면 무국적자인 그가 국경을 넘어가는 일은 굉장히 번거롭고 어렵다. 조선, 일본, 한국 등의 여권 3개와 여행증명서, 재입국허가서 등 챙겨야 할 서류가 많은데다가 이러한 상황이 매우 낯설을 공항 관계자들의 눈초리를 감내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과 번거로움과 억울함을 모두 감내하고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무국적자’, ‘경계인인 그는 국경을 넘지 못하지만 은 그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그의 굳은 확신과 ’만큼은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그의 꿈 때문이다. 

 

제스처를 섞어 가며 말한 그의 바람은 진심이 담긴 말이었기에 굉장히 뜨겁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1주기에도 대통령은 남미로 도망간 때였기에 축구선수로서 경계를 넘는 을 이야기하는 그의 발언이 어떤 정치인보다도 더욱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 저 사람은 축구선수로서 저런 비전과 소명을 갖고 있구나.

 

78년 생으로 당시 38세였던 그는 현역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같은 팀에 67년 생(미우라 가즈요시) 선수가 있어서 힘이 된다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뛰고 있다고 하였다. 짧고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그에게 러시아산 분골녹용이 들어간 공진단을 선물했더니 러시아 월드컵을 상징하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렇게 다음 만남은 2018년 러시아로 기약하고 헤어졌다.

 

내년이면 벌써 2018년인데? 우리 러시아 가서 안영학 선수 만나기로 했잖아.”

 

농담 삼아 남편에게 안영학 선수 만나러 러시아 가자고 하던 중, 공교롭게도 시사IN에서 안영학 선수의 은퇴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를 읽으며 공을 차던 소년 십대 소년 안영학, 2002년 홍명보 선수의 유니품을 입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25세의 안영학, 2010년 북한 대표로 남아공 예선에 출전한 32세의 안영학, 그리고 이제 은퇴 후 축구교실을 꿈꾸는 마흔의 안영학 선수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서 휘리릭 펼쳐졌다.


현역에 대한 열정과 통일에 대한 꿈을 꿨던 그. 비록 그는 경계인이지만 은 경계를 넘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그의 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나의 조선을 꿈꾸며 후학을 양성하는 안영학 선수의 축구교실은 그 어떤 단체보다도 통일에의 꿈을 앞당겨 줄 것이다.

 

조선의 아름다운 청년 안영학, 그의 경계를 넘는 소망을 응원하며, 그가 키울 유망주들의 경계를 넘는 공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끝)


국가대표사인.jpg 안영학.jpg 안영학 세월호.jpg 안영학 티.jpg

IP *.18.218.234

프로필 이미지
2017.10.30 14:56:37 *.75.253.245

대체 이야기 보따리가 몇 개인건가요.. ㅎㅎ 


그 신화 수업 할 때 '헤르메스' 선택한 것 처럼 옛날 이야기나 과거에 있던 사람들을 현재로 불러오고, 다시 넘어가고 하는 전개가 진짜 헤르메스를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경계를 허문다는 주제가 소재 뿐만 아니라 글의 표현 방법에도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사진도 잘 봤어요~ ㅎ


프로필 이미지
2017.10.30 16:38:42 *.18.187.152

재미는 좀 없져? 얼마 전 이 분 생일이기도 했고 10.26 탕탕절에 '임시정부'가 생각나믄서 임시국적 조선적으로 연상작용이 ㅋ  '경계인'이 공으로 '경계'를 넘는다..로 풀고 싶었는데..매끈하진 않네요 ㅡ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12 칼럼 #24) 직장 생활에서 지치지 않는 TIP – 직장 상사 편 (윤정욱) [1] 윤정욱 2017.11.06 930
4811 <뚱냥이칼럼 #23> 그 모습 그대로에 행복했습니다 [2] 뚱냥이 2017.11.06 929
4810 (보따리아 열전/전성수) 나는 상속녀 file [4] 보따리아 2017.11.05 2591
4809 칼럼#24 학교폭력 사주? (정승훈) [2] 정승훈 2017.11.05 951
4808 # 24 -대동강 맥주보다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이정학) file [2] 모닝 2017.11.04 914
4807 #23. 군대에서 책 읽기는 가능할까? [2] ggumdream 2017.10.30 1601
4806 #23 정해진 미래, 그리고 그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_이수정 [2] 알로하 2017.10.30 968
4805 #23 - 모르고 지나가는 선택의 기회(이정학) [2] 모닝 2017.10.30 921
4804 여행과 책을 지나오면서 전문가에 관한 생각정리 file [1] 송의섭 2017.10.30 953
4803 칼럼 #23) 7년 차 직장인, 나는 아직도 월요일이 설렌다_윤정욱 [1] 윤정욱 2017.10.29 923
4802 칼럼 #23 또다시 학교폭력위원회 [1] 정승훈 2017.10.29 907
» (보따리아 열전/안영학) 조선적(朝鮮籍) 안영학, 그의 경계를 넘는 소망을 응원하며 file [2] 보따리아 2017.10.28 941
4800 #22. 군대에서 건강하게 제대하기 [2] ggumdream 2017.10.16 953
4799 #22 다시 홍콩에서…_이수정 [2] 알로하 2017.10.16 946
4798 벼룩으로 가는 3가지 방향에 관하여 [1] 송의섭 2017.10.16 907
4797 #22 - 치료약이 없는 바이러스 file [2] 모닝 2017.10.16 914
4796 <뚱냥이칼럼 #22> 뚱냥이 에세이_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외 1편 [3] 뚱냥이 2017.10.16 910
4795 칼럼 #22 레이스 달린 덧신_윤정욱 [3] 윤정욱 2017.10.16 909
4794 (보따리아 칼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마눌님 말씀의 비밀 [6] 보따리아 2017.10.15 1516
4793 칼럼 #22 나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다 마지막편 (정승훈) [1] 정승훈 2017.10.14 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