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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6일 00시 04분 등록

그 모습 그대로에 행복했습니다.

 

 

텔레비전. 스마트폰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 시대에도 TV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가전제품 중 하나다. 처음 자취를 하면서 장만하는 것도, 신혼집을 꾸밀 때도 TV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TV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TV는 사람에게 희로애락을 준다. 갖가지 웃음을 장착한 예능으로, 사회의 어두면을 고발하고 밝은 면을 전하는 뉴스로, 사랑과 배신, 가족의 사랑 등 다양한 주제의 드라마로, 축구와 야구, 바둑과 낚시 등 다양한 취미채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TV가 없었다면 얼마나 심심하게 살았을까?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그 암담함은 덜하겠지만, 세상 이야깃거리의 반은 줄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TV는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질까? 제조업 회사에 몸담은 얕은 지식으로 공정을 설명해 보자면, 우선 아주 얇은 유리기판이 필요하다. 그 유리기판을 아주 깨끗이 세정하는 것이 첫번째 공정이다. 그 다음 공정이 화학물질을 증착하는 단계다. 세번째 공정은 유리기판에 색상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컬러필터 단계다. 네번째 공정은 처음 증착한 기판과 칼러필터 작업을 한 기판 사이에 액체물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셀 공정이다. 이렇게 하면 액정 LCD화면이 만들어진다. 아직 TV가 되려면 멀었다. 마지막으로 모듈공정으로 넘어간다. 빛이 잘 나올 수 있는 각종 회로와 갖가지 부속품들을 조립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TV의 모습으로 포장되게 된다. (全 과정에 있어 전문적인 공정이 빠져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아주 얕은 지식임)

 

각 공정의 작업 및 이동은 모두 로봇이 한다. 중간에 소위 불량이 잡히면 과정 중에 폐기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각 과정마다 불량품들이 꽤 많이 발생한다. 각 단계마다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TV로 만들어 질 수 없다. TV로 만들어졌다 해도 똑같은 TV는 아니다. ‘기준을 통과한 것이지 모두가 100프로 완벽한 제품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등급이 매겨진다. 최상품은 어디로, 그 다음은 어디로. 각 등급별로 판매되는 장소가 정해진다. 이것이 우리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한 TV의 운명이다. ‘TV에도 등급이 있다고? 모두가 다 똑같은 TV아닌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가정에서 우리와 만나고 있는 TV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이 받는 전파와 컨텐츠를 통해 동일한 희로애락을 주고 있지 않은가. 등급은 생각할 필요없이 고유의 특성만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글을 언제 배웠을까? 셈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한글은 초등학교 가기 전에 깨친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때 한글을 몰라 받아쓰기 빵점을 맞았던 친구도 기억이 난다. 당연히 혼이 났다. 2학년 때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기초 지식을 배운다. 한글, 구구단, 기초적인 역사지식을 말이다. 만약 6년동안 배워야 하는 기초지식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중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다. 뒤쳐지고, 헤매며, 갈피를 못 잡는다. 우리의 다음 공정은 고등학교다. 물론 중학교 3년간의 공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마지막 검사에 합격해야 고등학교 공정으로 넘어간다. 습득해야 할 기준지식에 못 미친다면 진로의 방향이 갈라진다. 고등학교 공정은 어떤가? 대학을 가기 위한 마지막 공정인 만큼 지금까지의 불량을 잡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물론 학생마다 그 의 양은 다르다. 각자마다 다른 양의 노력으로 최종검사인 수능을 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약속한 듯 수험생에게 등급을 매긴다. 등급이 높은 양품은 하늘(SKY)로 간다. 그 다음 등급은 어디로’, 그 다음 등급은 ‘In 서울로’, 그 다음은 또 어디로.

 

이제 열흘 뒤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다. 성적에 따라 수능의 등급이 정해지는 것은 현 제도상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등급에 맞춰 대학의 간판이 정해지는 것도 어쩌면 진리 아닌 진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 자체에 등급을 매기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첫걸음마를 뗄 때 우리는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사진 속에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고, 중학교 입학에 기뻐했다. 앞니가 빠진 모습을 기억하고, 반대항 축구 우승에 기뻐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아이들의 기쁨에 감사했고, 아이들의 아픔에 더 슬퍼했다. 우리 아이들은 각자가 그 가정의 희로애락이었다.

 

TV에 등급이 있다고 해서 TV가 지금까지 주었던 모든 감정에 등급이 매겨지지 않듯 우리 아이들의 수능등급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우리 아이들이 비교 우위를 성공으로 착각하게 해서도 안되며, 비교 열등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불행의 낙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19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선물이었고,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누구를 부러워할 것 없이 그냥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너희들로 인해 심심하지 않았다고, 우리 삶의 이야깃거리였다고 말해줘야 한다.

 

 


*이 글을 수능을 열흘 앞둔 사랑하는 나의 조카 영민이에게 바칩니다.

IP *.140.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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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11:40:19 *.223.2.87
큰아들 고3.
뚱냥연구원처럼 마음을 써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네요. ㅜㅜ
프로필 이미지
2017.11.07 15:59:36 *.18.187.152

(성장)과정은 (제조)공정이 아니다. 너희들은 우리 희로애락의 뿌리라는 거네. 이야기 좋은데?! TV 이야기가 약간 긴 느낌이 있지만. ^^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가 복제인간과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인 거 같은데 그도 뚱냥이같은 생각에서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어. 공정과 과정, 지능과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책에 나오는 일부를 카페에 올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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