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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2일 03시 51분 등록
그들은 기술자들이다. 분명 편안한 복장으로라고 공지했음에도 공항에 나타날 때는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정장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다. 현장에서 기름때 묻은 모습에 익숙한 나에게는 의외이다. 무언가 들뜨고 긴장한 그들의 얼굴은 나에게 이번 출장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음을 상기시킨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면서 나리타 공항에서 만난 23명은 늘상 하는 연수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나를 약간의 긴장으로 몰고 가며 이번 일주일의 출장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나리타에서 버스를 타고 약 세 시간을 걸려 도착한 공장. 그들에게 기숙사 이용요령과 내일 아침 집합장소를 어나운스하고 나만 따로 별도 예약된 호텔로 이동한다.

아침에 연수센터로 이동하여 전원 집합이 확인되면 이 쪽의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5번째 기술세미나 개회식을 알리곤 곧장 수업시작이다. 다섯 번 다 참석하는 이가 몇 명인가 있고 반 정도는 처음인데 그들 중에는 일본이 처음이며 게다가 해외출장이 처음인 이들이 반드시 몇 명인가가 있다. 젊은 나이에 주름을 가진 이들이 반짝거리며 빛나는 눈길로 강사를 쏘아보고 있다. 그런 눈길은 늘 신선함과 긴장감과 더불어 막중한 책임감마저 가져다 주곤 한다.

이런 세미나에선 대체적으로 내게 잠깐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15분간의 브레이크 타임에도 그들은 늘 바쁘고 나는 그들의 업무를 현지에서 같이 처리해야 한다. 풀 가동이란 말이 구구절절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특이한 것은 5 년 전에는 전원이 담배를 피웠다면 요즘은 금연가가 많이 늘어 한 오 분의 일 정도는 담배를 피우러 가지 않는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매번 시험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수료증을 수여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건 일부러 나의 수법으로 실기에 익숙한 그들에게 책을 보고 어디에 무엇이 기술되어 있는지를 알게 하려는 전략이다. 5시면 끝나는 연수라 저녁을 먹고 나면 늘 술 파티로 이어지는 것을 알지만 하루 정도는 공부를 해 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귀엽게 작용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들은 하루 정도는 진짜 공부를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연수에서는 시험을 치를 시간이 없었는지라 모처럼 그들이 공부했음에도 테스트 없이 수료증을 나누어 주었다. 이름이 불리워지고 기술 부장에게 증서를 받는 모습은 늘 그렇듯 감격 그 자체로 진지하며 그리고 이어질 파티로 인해 공부할 때와는 달리 슬슬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하곤 한다.

마지막 날의 파티에서는 완연히 얼굴이 밝아진다. 가라오케까지 준비된 파티장에서는 어느 덧 록커라는 젊은 친구가 마이크를 잡더니 분위기를 바꾼다. 끝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또 한 명의 가수가 나가 한층 더 분위기를 띄운다. 강사였던 일본 친구는 가발을 여러 개 준비해 와선 몇 몇 사람들을 그럴듯한 록커나 딱 어울리는 뮤지션으로 바꾸어 그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나는 적당히 테이블을 이동하며 그들과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을 갖는다.

자기들끼리는 가끔 술안주로 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허기사 이 동네에 여자는 정말 딱 나 한 명이고 그 여자가 싱글이니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놓고 묻는 이는 없다. 무언가 어려운 건지 내가 깐깐한 건지 그들은 그저 정중하게 나의 직함을 부르며 자기네 사장들이 안부전하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개중 자주 봤다는 이가 가벼운 농담을 거는 정도로 다들 나를 어려워한다. 그러면 안되지 하며 나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무너지는 시늉을 한다. 어느 정도 지나면서 건배를 몇 번하면 이번엔 젋은 친구부터 친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제서야 나는 기뻐지며 그들과 술이 깨면 다 잊어버릴 목소리 커지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번엔 처음으로 도쿄현장 견학을 넣었다. 우리회사의 기계가 설치된 곳을 안내하는 일이다. 말이 현장견학이지 이를 테면 도쿄관광 비슷한것일 것이다.
늘 일본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있다면 먹을 것은 풍족하게, 술은 원하는 만큼 이라고 요구를 한다. 다행이 이번 장소도 그런 요구에 부흡 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기세 좋게 건배를 나누고 일행 중에는 일 주일의 연수 동안 나름대로(?) 익숙해진 몇 몇 이가 그럴 듯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며 현장에서 해단식을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한국 남자가 상당히 인기가 있답니다. 욘사마처럼 상냥하고 따뜻할거 라고들 생각한답니다. 이 곳에서 만난 일본 여자들에게 상처주시 마시구요….” 남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오늘 밤에 일어날 일처럼 다들 긴장된 얼굴로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ㅋㅋ 그리고 끝날려고 하는데 우리의 일본 스텝이 내게 귓속말로 주의사항을 전달해 달라한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부탁하는지라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통역을 해 주었다. “저기요, 혹시 신죽쿠 같은데 가시면 삐키 같은 사람이 많다니까 바가지 쓰지지 말라네요, 어디든지 들어가기 전에 가격 흥정하고 들어가시라는데요” 남자들의 눈이 이토록 빛나는건 연수 중간에는 본 적이 없었던 처음 보는 무척 진지한 눈빛이었다. 이런…@#@$@#$…..

일주일이 지나니 집 생각이 나는지 집이 그립다는 분위기 메이커 윤아저씨.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왜 이런 여행이 즐거울까요?....................... 침묵……………..여행의 즐거움은 돌아 갈 곳이 있어서랍니다…” 그들이 숙연해졌다. 아 갑자기 미안해져서 본인의 분위기에 안 맞는 퍼포먼스를 연출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갑자기 돌아갈 곳을 무작정 기억해 냈나 보다. 미안..

공항 가는 버스 시간에 나타난 이들의 손에는 이렇게 저렇게 크고 작은 보따리가 가득 들려있다. 고르고 골라 산 가족들의 선물들이다. 비싼 화장품도 있는가 하면 아이에게 줄 장난감들을 들고 있다. 나는 눈물이 핑 돈다. 늘 그들은 쇼핑시간이 주어지면 가족에게 줄 선물을 비싼 가격에도 그렇게 사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면 늘 나도 같이 뭉클하다. 모처럼 이렇게 해외여행을 핑계삼아 어쩌다가의 그들의 일상에 잠깐 전환점을 찍는 계기가 되는 찬스다. 잘 해 드려야지,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먹는다. 못 본 척 안 본 척 하면서 이런 거 사다 드리면 사모님들이 좋아할 거라고 슬쩍 말을 건네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샐러리맨이랍시고 일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은 여름과 겨울의 입구에서 몹시 바쁘다. 나의 일은 늘 그렇지만 이들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일이다.
이번 출장에서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칼의 노래 두 권을 다 가지고 갔지만 결국 다 읽을 시간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기부할 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그러나 언젠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리뷰할 것임을 약속한다. 진짜로 약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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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6.12 04:01:27 *.109.104.148
공연장의 열기속에서 짧게 귀국을 확인했는데, 기부하겠다는 글을 이 새벽에 올리는 성실함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잘 다녀오셨지요? 맨날 아프고, 남 흉보고, 술 마시고 헤롱대는 이순신에 똥침을 제대로 날려줄 사람은 은남누나 뿐이라 믿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겠군요. 그 약속! 함 믿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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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6.12 10:54:15 *.209.121.43
꿈벗모임에서 은남씨 못 보아서 서운했어요. 그 시간에 다녀온 출장스케치 올려주어서, 은남씨 일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연구원 3기의 두 커리어우먼인 은남씨와 민선씨가 수시로 공항에서 부딪친다는거죠? 백수 입장에서는 조금 부러운 풍경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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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12 14:28:35 *.48.34.49
종윤, 내가 이래뵈도 성실함 그 자체여..ㅋㅋ 말해놓고 쬐매 난감.
명석님, 즐거운 와중에서도 저를 기억해주시니..감격.
그러게 민선이랑은 참 여기저기서 자주 맞닥뜨리게 되네요.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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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2 22:33:33 *.142.242.201
그러게요....
언니 출장 잘 갔다오셨죠? 글 보니 그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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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6.13 10:16:28 *.152.82.31
아쉽게도 수금활동(?)에 지장이 생겼음을 어찌 하랴!
영이 말하기를 "내게도 네게 줄 무엇이 있으면 군영에 다 나누라." 하니 다시 완이 답하기를 "그대의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으니 나누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하였다.
이에 인이 이렇게 첨부하였다.
" ? " (숙제에 답하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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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6.13 12:02:53 *.218.205.7
누나가 경영자라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 것 같아.
그렇구나. 경영은 그런 것이구나. 약간 멀리서 지켜보며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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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3 16:11:02 *.114.56.245
부럽수다. 사실 나의 꿈(?)은 지난 해 까지는 '국제무역'
- 동업자와 사업계획서 그림가지 그렸는데 그 동업자 마음변했어요. 나보고 실무영어 통달해 놓으라고 해놓고선, 알고보면 그 동업자 눈치빨랐지. 은남씨 처럼 출장가서 본업은 부업이 되고 뒷골목 앞골목, 이 등성이 저 등성이 여행만 다닐게 뻔하니까. 반가워요. 은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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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14 12:57:59 *.48.34.49
노진님,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주시면 우짠디요? 그렇잖아도 안돌아가 애쓰고 있구먼. 나름대로 답: 내게 가져갈게 있다면 다 가져가시오, 그대의 인품을 아느니 용처는 묻지 않으리다.

호정아, 담에 또 만나면 그땐 맛있는거라도 먹자꾸나.
옹박아, 나 경영자 아녀, 월급쟁이.
최정희님, 저야말로 부럽답니다. 보라돌이님과의 알콩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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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귀
2007.06.14 13:30:37 *.47.187.34
자로, 더위 먹었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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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15 05:43:42 *.72.153.12
향인 언니, 언니 칼럼 이제야 봤네요. 정신 없이 보내다 보니...

언니 삶이 재미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 그 비법 전수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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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16 00:24:59 *.48.34.49
재미있어 보이게 하는 비법은 전수가능.
난 정화가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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