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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 11시 27분 등록

#30. 배고픔의 미학

 

넌 먹고 싶은거 뭐 적었어?”

? 적다니 무슨 말이야?”

이번 편지가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잖아.”

그건 알지. 그치만 조교가 편지에 먹는거랑 관계되는 것 적지 말랬잖아.”

어휴~ 그래서 순진하게 그걸 안 적었어? 그냥 내가 시키는대로 해. 지금 빨리 적어!”

 

5주간의 가입교 훈련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부모님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낼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 편지를 보낸 적은 있었지만 이번 편지만큼 정성들여 적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입학식을 얼마 앞두고 적는 마지막 편지였기 때문이었다. 조교들은 편지내용에 절대 먹는 것을 적지 말라고 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것을 그대로 지키려 하고 있었는데 친절한 동기의 조언 덕분에 먹고 싶은 걸 적을 수 있었다. 초코파이, 초콜렛, 콜라, 김밥, 삼겹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20살 젊은 남자가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의 시간이었다.

사관학교 가입교 이전 3시절, 도시락 2개는 기본이었다. 2교시가 끝나고 하나를 까먹고, 점심시간에 하나를 마저 먹고, 오후에는 매점에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그리고 저녁을 집에서 먹었고, 야간자습을 마치고 야식을 먹으면서 공부를 했다. 거의 하루에 5끼를 먹으면서. 그런 생활에 익숙했던 내가 먹는 것에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 5주간의 훈련기간을 가졌으니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굳이 설명을 안해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5주간 계속되는 훈련에서 가장 기다려 지는 시간은 언제나 밥먹는 시간이었다. 고등동물인 사람이 이렇게 저차원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식사시간에 배식은 조리병 담당이다. 하지만 조리병 역시 사람인지라 항상 모든 식판에 똑같은 양으로 배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배식시 항상 다른 동기들의 식판에 있는 양과 나의 양을 비교하는 시간이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소시지가 1인당 5개가 나오는데, 조리병이 실수로 6~7개를 주면 그날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특히 사과와 같은 부식이 나올 때 가장 심했다. 사과는 당연히 크기가 똑같을 수가 없고 차이가 날수 밖에 없었다. 큰 사과를 배식받은 사람은 동기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어떠한 일로 인해 갑자기 자리를 한 칸 이동하게 되어 방금 전까지 작은 사과를 배식 받은 내가 더 큰 사과를 먹게 되는 기적도 발생한다.

 

우리 동기들 사이에 잊지못할 유명한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사건이었다. 밥 먹을 때 김이 자주 나왔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덤으로 나온 그 김을 동기생 몇 명이 챙겨서 건빵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었다.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김을 건빵주머니에 넣고 걸어다니면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기생들은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딘가를 이동할 때 항상 제식훈련 즉, 팔을 90도로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하면서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건빵주머니에 있던 김이 부딪치면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고, 조교들이 그 소리를 놓칠리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밥을 맛있게 먹고난 뒤 바로 단체기합을 받았다. 밥 먹은지 30분만에 소화가 되어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 동기는 김을 입에 물고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그 동기는 우리 사이에 별명이 양반 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뿐이다.

 

행동 하나하나 모든 것에 대해 통제를 받던 훈련소 시절. 돌이켜 보면 사소한 것 하나에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는지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특히 그렇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종교활동이 기다려지는 건 주님과 부처님을 만나는 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초코파이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계시는 그 분보다는 나의 배고픔을 직접 해결해주는 초코파이가 더 큰 존재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초코파이. 누가 줘도 살이 찔까봐, 너무 달아서 잘 먹지를 않는다. 어쩌다 과거 군대 생각이 나 한 입 베어물면 그때의 맛이 나질 않는다.

 

훈련소에서 자대에 배치를 받으면 병사들은 극도로 부족했던 생활에서 풍족한 생활로 급작스러은 변화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은 영내식당에서 배식된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강제로 먹어야 하니 자리만 지키고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끝나면 곧장 매점에 들러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냉동 음식으로 정식 식사를 한다. .(GOP 같은 전방은 제외) 병사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영내식당에 나오는 밥은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집에서 하는 밥과는 다를수 밖에는 없지만 그들이 얼마전 훈련소에서 있을 때는 그렇게 더 먹고 싶었던 짬밥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그런 통제와 구속이 없다 보니 먹는 것 자체보다는 더 맛있는 걸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 살면서 배고픔을 느낄 때는 많지만 누군가가 채워주거나 혹은 스스로 채우게 된다. 하지만 훈련소 시절의 배고픔은 채울 수가 없는 시간이다. 그런 배고픔을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쩌면 행운일 수 있다. 결핍과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주위에 있는 사소한 것에 소중함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우리는 결핍과 부족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내 자식 또한 그런 경험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결핍과 부족, 고통과 상실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당장은 우리 인생을 힘들고 비참하게 하지만 결국은 더 아릅답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배고픔 역시 가장 근본적인 욕구에서 느낄 수 있는 미학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젊은이들을 이렇게 얘기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법은 배울지 몰라도 그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화학에 대해서는 배우겠지만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를 것이고,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기계를 만드는 방법은 모를 것이며,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기 눈의 티끌은 보지 못하거나, 그 자신이 어떤 부랑자의 위성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이 그래도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진짜 삶은 아마 군대일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기를 허비해버리는 곳이지만, 월든 호수에서 2년을 보낸 소로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그의 인생에 소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IP *.106.20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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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22:18:21 *.18.222.45

양반김 사건 ㅋ 기상씨도 웃긴 글을 쓸 수 있구나아~  우리 남편도 화장실에서 '쵸코파이님' 허겁지겁 먹었던 이야기 종종 하더만.  요즘 시대에 군대는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싶네요.


군대와 월든, 교집합이 있네요. 기간도 얼추 비슷하고. 이렇게 군대와 인문학이 연결되는 흐름인가? 감을 잡은 거 같아서 부럽수~

2017년도 그랬지만 2018년도야말로 기상씨에게 특별한 해가 될 거 같은 느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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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18:37:43 *.129.240.30

갑자기 훈련소 생각나네 ㅋ  정말 자신의 밑바닥을 드려다 볼 수 있는 시간. 아 나란 인간이 이런 인간이었구나란 생각과 함께 인간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던 시간


근데 왜 사람은 그때가 지나가면 깨달은 바를 실천하지 못하고 변하게 될까? 그것 역시 아직까지 미스테리임 ^^

훈련소에서 깨달은 작은 행복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만 있다면 득도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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